지난 2020년 1월 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뒤를 이어,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했다. 장관 임명 전부터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견제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던 추미애 장관은 취임 후부터 본격적으로 윤석열 총장 견제를 시작했고, 1년여 만인 지난 12월 15일에는 징계위원회를 통해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곧바로 16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장관. 하지만 둘의 갈등이 이렇게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추미애 장관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총장의 다툼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가게 됐을 뿐이다.
# 2020년 1~3월
인사로 윤석열을 견제하라
2020년 1월 3일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임명 후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人事)를 통해 검찰 장악을 시도했다. 법무부는 5일 만인 1월 8일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고위 간부 32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의 실질적인 목적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잘라내기였다. 한동훈 검사장 등 대검 간부 라인에 포진해 있던 윤 총장 측근들이 대거 지방으로 좌천성 인사를 받았고, 이성윤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그리고 1월 31일,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쏘아 올려졌다. 시작은 MBC의 '채널A 기자와 검찰 간 유착 의혹' 보도였다. 2월 초,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성윤 지검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에 채널A 취재 윤리 위반 및 검언 유착 의혹을 고발했다. 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기자가 유착한 의혹을 수사해달라는 것.
윤 총장 역시 채널A 사건 대검찰청 인권부에 진상 조사를 지시하고 대검은 '큰 문제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4~7월
'채널A 사건' 수사 본격화 후 추미애 장관의 전선 확장
채널A 자체 진상 조사 결과까지 기다렸던 서울중앙지검. 하지만 6월로 넘어가면서 수사의 속도를 올렸다. 그사이, 한동훈 검사장이 윤석열 총장의 측근이라는 게 문제가 되면서 윤 총장은 6월 4일, 공문을 통해 채널A 사건 관련 지시를 대검찰청 부장회의에 일임했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은 전선을 확장했다. 6월 18일, 추 장관은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사건과 관련해 앞선 검찰의 수사가 문제 있다며 이에 대해 진정사건 참고인 조사를 직접 대검 감찰부에 지시한다. 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법무부 장관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었다. 25일에는 채널A 사건 관련 한동훈 검사장을 부산고검 차장검사에서 법무연수원으로 전보하고 직접 감찰에 착수했다.
7월엔 추 장관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성윤 지검장이 이끄는 서울중앙지검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7월 2일, 추 장관이 채널A 사건 전문수사자문단 심의 중단 및 수사팀에 대한 윤 총장 지휘 중단을 지시하는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좌고우면하지 말고 지휘 문언대로 신속 이행"하라고 압박했고, 결국 17일 채널A 이동재 기자는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은 내·외부에 일절 불만을 표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도 "검찰총장직은 임기대로 마칠 것"이라는 입장을 주변에 알렸다.
# 9~10월
윤석열 버티자 '라임' 사건 압박 시작
잇따른 수사지휘권으로 장악력이 흔들렸던 윤석열 총장. 하지만 그럼에도 '직'을 포기하지 않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꺼내 들었다. 10월 초,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현직 검사에게 술 접대를 했다"는 내용의 자필 입장문을 공개하자, 현직 검사에 대한 로비 및 윤갑근 전 고검장(현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에 대한 수사 필요성을 언급한 것.
이에 윤석열 총장은 현직 검사에 대한 로비와 야당 정치인 수사 은폐 의혹에 대해 신속 수사를 지시했지만, 추 장관은 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10월 18일, 추미애 장관은 대변인실을 통해 라임 사태 관련 "윤석열 총장이 철저히 수사하도록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확인했다"고 지적하자, 윤석열 총장은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으로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다음 날, 추미애 장관은 또다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 그러자 22일, 윤석열 총장은 전 국민이 보는 국정감사에서 작심하고 발언을 쏟아냈다. 그동안 침묵했던 윤 총장은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추미애 장관 수사지휘권 발동은 위법 부당하다"고 비난했다.
또 "퇴임 후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천천히 생각해보겠다"며 정치 참여 가능성도 시사했다. 추미애 장관은 대노했다. 대검찰청 국정감사가 이뤄지던 22일 밤, 곧바로 SNS 등을 통해 "장관은 총장의 지휘감독권자"라고 반박했고, '국민 봉사' 발언 등을 문제 삼아 징계할 것을 시사했다.
# 11월
지지도 올라가는 윤석열에 추미애 징계 강행
그리고 11월 초, 윤 총장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라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을 합쳤을 경우에는 비하지 못하지만, 야당으로 분류되는 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것이었다.
추미애 장관은 본격적인 징계 카드를 꺼내 들었다. 11월 16일과 17일, 법무부 감찰관실은 윤석열 총장 비서관에게 방문 조사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대검이 이를 거부하고 반송하자 법무부는 24일, 극강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추미애 장관은 24일 오후 6시, 서울고검 기자실을 직접 방문해 윤석열 총장 징계 청구 및 직무집행 정지 명령을 발표했다. 판사 불법 사찰, 한명숙 사건 감찰 유출, 채널A 검언 유착 및 정치 중립 위반(국감 발언 등) 등 6개 의혹이 중대하기에 직무를 배제해야 한다는 결정이었다. 이에 윤 총장은 즉각 반발했다. 다음 날인 25일, 법원에 "직무를 배제하라는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사이 그동안 침묵하던 검사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검은 물론, 전국 18개 지검 및 41개 지청에 소속된 검사들이 추미애 장관의 결정에 '철회해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선 고검장 7명과 지검장 7명 등, 몇몇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을 제외한 전체가 나선 것이었다. 징계위원회에 참여해야 하는 고기영 법무부 차관은 30일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옷을 스스로 벗기도 했다.
# 운명의 12월
스스로 사의한 추미애 '2라운드 예고'
하지만 추미애 장관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12월 2일, 청와대는 곧바로 이용구 신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고, 징계위원회를 열기 위한 자리를 채웠다. 당초 3일 예정됐던 징계위원회는 신임 차관 임명 과정에서 10일로 미뤄졌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지시한 것도 주효했다.
윤석열 총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원에서 "추미애 장관의 직무 배제 결정은 문제가 있다"며 직무 복귀 결정을 받은 지 하루 만인 3일,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관련 산업부 공무원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이 중 상급자인 2명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원전 폐쇄 과정에 대해 '위법하다'는 수사에 박차를 가한 것.
그다음 날인 4일에는 윤 총장을 징계하기 위한 법 조항인 '검사징계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및 가처분을 제기했다. 그리고 운명의 10일, 법무부는 1차 징계위를 열어 일정을 진행했고 15일에는 2차 징계위를 열고 윤 총장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일부 문제가 있다'는 결론과 함께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 이완구 변호사를 특별 변호인으로 내세운 윤 총장은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는데, 곧바로 "불복한다"며 법원에 소송을 낼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은 1년여를 끌어온 갈등의 끝을 보기 전, 먼저 아수라장이 된 싸움터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16일, 윤석열 총장 징계 재가를 받기 위해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사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결단을 높게 평가한다"며 추 장관을 지지했다. 추미애 장관의 징계 청구를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하면서, 본인의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에게 반발하는 모양새가 된 윤 총장 측은 "소송으로 다투겠다는 결정은 변함이 없다"며 강행할 태세다. 이에 문 대통령도 추 장관의 사의 표명에 대해 "남은 소임을 다해달라"고 해둔 상태. 1년여를 끈 갈등이 아직은 조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은 앞선 직무 배제 결정에서는 윤석열 총장 편을 들어줬으니 소송전은 2~3개월은 계속되지 않겠냐"며 "엄격하게 삼권으로 나뉜 입법(국회)과 행정(정부), 사법(법원) 영역에서 정치인이 주도하는 입법과 행정이 사법을 흔들었고, 그 1년 동안 법조계가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