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 김소현 씨는 코로나19로 침체된 국민들을 응원하기 위해 KBS2TV 예능 <불후의 명곡> 특집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우리 부부는 편곡 아이디어 회의를 하던 중 노래 속에 주안이의 목소리를 담기로 했다. 주안이가 그린 그림일기를 통해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생활을 노래에 담고, 다 같이 힘을 내서 이겨내자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주안이에게 방송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학교생활은 어떤지,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지, 친구들과 지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는지 등을 물어보고 학교생활을 그림일기로 표현해달라고 했다. 종종 그림일기를 써왔던 주안이는 어렵지 않게 그림일기를 완성했다.
이제 주안이 목소리만 녹음하면 완성인데, 자연스럽게 부탁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내와 한참 고민을 하다가 결국 “주안아, 예쁜 목소리로 오늘 쓴 일기를 읽는 거 녹음해주면 안 될까?”라고 물어봤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주안이에게 “오늘 주안이가 <오! 마이 베이비>에 나왔을 때 영상을 봤는데, 그때 주안이 목소리가 정말 귀여운 거야. 그래서 지금 목소리도 녹음해놓고, 나중에 듣고 싶어”라고 말했다(맥락은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자 주안이도 흔쾌히 좋다고 했고 컴퓨터 앞에서 녹음이 시작됐다.
“까르르르~.” “아, 아~.” 녹음 초반 20여 분 정도는 주안이의 웃음소리와 목을 가다듬는 목소리, 중간중간 우리 부부의 “아잇, 지금!” “아니” 등의 추임새로 가득 찼다. 녹음 결과물만 보면 실패였지만 과정만큼은 성공이었다.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웃으며 서로에게 집중했고 마음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함께 녹음본을 듣는데 주안이가 “아빠! 나중에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라고 물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계획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렸고, 훗날 되돌아봤을 때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안이의 도움으로 방송도 잘 마무리했다. 사실 방송이 될 때까지 주안이에게 비밀로 하려 했지만 우리 부부가 가이드 녹음을 하고 연습하는 것을 듣고는 주안이가 자신의 목소리가 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주안이는 쑥스러워하며 “사실을 알았다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말을 안 해줬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곤 거울을 쓱 보며 “<불후의 명곡>에 내 모습도 나오는 거야?”라며, 그림일기를 훑어보고, 우리 부부가 연습할 때 흘러나오는 자신의 음성을 가만히 듣기도 했다. 순수한 주안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문득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해맑게 뛰어놀고 배우던 아이들이 이제는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의 접촉도 제한된 상태에서 생활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아이들이 이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지내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도 밝고 순수한 아이들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이 어려움을 조금 더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아들을 보며 또 배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