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살던 그녀, 남양주로 온 까닭
1986년 MBC 18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배우 윤예희. 40년 세월을 한결같이 배우 생활을 이어오는 그녀는 5년 전 경기 남양주 천마산군립공원 인근에 위치한 고즈넉한 동네로 이사했다. 태어나 줄곧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살던 그녀에게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복닥복닥한 서울을 벗어나기로 마음먹고 일산, 김포, 분당 등 외곽을 둘러보던 중 딱 마음에 들어온 동네였다.
“분위기가 좋고 느낌이 왔어요. 나와 맞는 동네, 나에게 어울리는 집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런 곳이었거든요. 지금은 이사 갔지만 남양주에서 먼저 살던 친한 동생의 추천도 있었고, 잠실, 강남 등에서도 접근성이 좋았죠.”
그렇게 5년이 흘렀고 이제는 남양주 라이프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처음에는 병원, 마트 등도 반포 지역을 이용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남양주에서만 머무른다. 무엇보다 좋은 건 고요한 동네라는 점이다.
“강남에서도 고속터미널역 바로 앞 동네인 반포에 살았어요.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곳이었죠. 낮밤 할 것 없이 자동차, 오토바이 소음에 노출돼 있었지만 줄곧 그곳에서만 살아서 당연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처음 이사 와 냉장고 소리가 크게 들려 고장 났다고 생각할 정도의 조용함에 놀랐죠. 실제로 AS를 불렀다니까요.(웃음)”
그녀는 이제 일을 마치고 아름드리나무가 많은 남양주로 접어드는 길목에 들어서면 도심과 다른 공기에 안도한다. 최근에는 남양주로 이사 온 친한 지인들과 곧잘 당일치기 강원도 여행을 하고 신선한 해산물을 사서 돌아온다. 남양주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2시간이면 닿기에 그녀가 뿌리내린 남양주 사랑은 나날이 진해지고 정은 깊어가는 중이다.
적게 소유하면 오히려 풍요롭다
인생 희로애락,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머무는 곳, 집. 집이 건강해야 그곳에 머무는 사람이 건강하다. 집을 대하는 그녀의 가치관도 이와 같다. 그녀는 삶 전체에 심플 라이프를 적용해 단순한 삶을 꾸린다. 남양주로 이사 오면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을 버렸고, 요즘도 집에 새 물건을 들이는 일에 인색하다.
“무엇이든 쌓아두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반포에서 이사 올 때 옷, 신발, 모자 어느 것 할 것 없이 몇 년 동안 손길 닿지 않던 많은 걸 버렸고,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왔어요. 당시 반성도 많이 했어요. ‘작은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가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비워내는 단계를 지나왔죠.”
집은 심리 건강과 직결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바꿀 때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자신에게 어떤 상태가 익숙한지 익힌 후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 컨디션을 찾아야 하는데, 그녀는 비워낸 공간, 물건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 공간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바쁜 일상 탓에 불편한 부분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기 쉽지만 이런 틈에 잠깐 쌓아둔 물건은 결국 그대로 자리를 잡잖아요. 마음 편하게 쉬고 싶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편한 공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신경 쓸 일이 없도록 늘 비움을 실천해요.”
그녀는 심플 라이프에서 가장 좋은 건 ‘온전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오롯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며 오히려 풍요롭고 감사한 삶, 그녀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엔 쇼핑도 많이 하고 소유의 삶을 꾸렸죠. 나이 들수록 물질이 소용없더라고요. 다 해보고 나니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죠. 명품이 좋아서 샀다고 해요. 내 손에 들어온 순간 간절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가치를 상실하잖아요. 그런데 신기한 건 나이 들고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는 거예요.”
건강한 중년을 만드는 건강한 습관
그녀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바른생활을 하는 바른 어른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난다.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챙기고 몸에 해로운 건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청소와 정리는 게을리하는 법이 없다. 10살 된 ‘바로’와 9살 된 ‘빈’이라는 반려견 두 마리와 살기도 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성격이기도 하다.
촬영장에는 무조건 촬영 시작 30분 전에 도착하고, 평소 운동은 성실하게 한다. 바로, 빈과 하는 아파트 단지 산책은 물론 천마산 산책로를 한 시간 정도 걷고, 골프를 즐기고, 13층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곧잘 오르내린다. 데뷔 후 35년간 몸무게 45kg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오래전 입던 옷을 그대로 입어요.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는 힘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인내’의 힘이죠.”
주변에서 건네는 좋은 정보나 조언은 새겨듣고 실천하려고 한다. 좋은 이야기는 잘 들어서 손해 볼 것이 없어서다. 무엇보다 지금 할 일은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것도 그녀의 건강한 습관 중 하나다. “무언가 할 일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는 불편함보다 빨리하고 편하게 쉬는 게 좋아요. 쉬더라도 하고 쉬어야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아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멀리하려고 해요. 누가 해주는 일이 아니라 결국 내 일이잖아요. 몸이 아플 때도 끙끙 청소한 후 앓아누워요.(웃음)”
할머니 커피집의 할머니 바리스타
그녀의 집에서는 어느 방향에서도 ‘숲’이 보인다. 집이 여러 방향으로 난 구조이기에 하루 종일 햇살이 노닐며 집에 온기를 더한다. 손님들이 찾으면 내주는 ‘손님방’에서는 얼마 전 안타까운 화재로 이슈가 된 수진사라는 절과 산령각, 석탑이 또렷하게 보인다.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평안해지는 풍경이다. 그녀는 이른 아침 일어나 음악을 들으며 모닝커피를 내려 마시는 순간, 해 질 녘 붉게 물드는 노을을 감상하는 시간이 좋다. 한겨울 함박눈이 내린 날의 적막한 고요가 좋다. 겨울이면 인근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벽난로에 장작을 때는 모양인지 그녀의 집까지 냄새가 흘러오는데 그것 역시 그녀를 기분 좋게 만든다.
“과거 집은 단순히 몸을 누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던 공간이었다면, 요즘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집은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에 마땅한 공간이어야 하잖아요. 오래 머무는 곳인 만큼 집에서 조금 더 편한 시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에 우리 집은 제게 최적의 공간이죠.”
그녀는 먼 훗날, 아니 짧게는 5년 후 포근한 장면 하나를 그려본다. 노후에는 붉은 벽돌집을 조그맣게 짓고 그 안에 벽난로를 두고 싶다. 벽난로 앞 흔들의자에는 그녀가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커피를 즐겨 마셔서 배워둔 터라 ‘할머니 커피집’의 할머니 바리스타가 되어 쉬는 듯 노는 듯 지내는 모습도 그녀의 머릿속에 있다.
“10년 전 가족이 된 바로, 빈과 오래도록 살을 비비며 지내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과 모여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면서 큰 욕심 없이 살고 싶어요.”
사람들은 도시적인 외모 때문에 그녀를 곧잘 오해하지만 정작 그녀의 꿈은 이토록 소박하고 소탈하며 매력적이다. 법정 스님은 일찍이 ‘무소유’의 가치를 인정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 다른 의미일 것이다. 갤러리가 우아하고 품격 높은 공간인 까닭은 깨끗한 공간에 그림 몇 점만 걸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갖지 못한 결핍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미 가진 ‘소유’를 정중하게 대하는 배우 윤예희의 삶은 그 자체로 근사하다. 비우고 버리는 것이 어렵다면 지금 당장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비우는 법을 배우고, 소중한 것에 집중하도록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