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기증받아 자발적 비혼모가 됐다
사유리(41세. 본명 후지타 사유리)는 지난 11월 16일 개인 SNS를 통해 “2020년 11월 4일 한 아들의 엄마가 됐다. 모든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왔던 내가 앞으로 아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밝혔다.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거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 그가 자발적 비혼모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해 10월 생리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난소 나이가 48살로 나온 것이다. 이 수치라면 자연임신이 어렵고, 지금 당장 시험관 시술을 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진짜 눈앞이 깜깜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엄마한테 울면서 일본에 들어가겠다고 전화했다. 모든 게 싫었다. 너무 우울했다”고 당시 심경을 털어놓았다.
사실 사유리는 36살부터 아기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몸 상태가 1~2년 사이에 확 나빠진 것.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급하게 결혼해 시험관아기를 갖느냐, 아니면 혼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자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정자은행을 통해 결혼 없이 임신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을 방법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비혼 여성도 본인의 선택에 따라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유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임신중독증에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예정일보다 아이를 좀 빨리 낳았다. 몇 년 동안 계속 아기를 갖고 싶었다. 지금 진짜 행복해서 이게 꿈이면 어떡하나 자는 게 무서울 정도다. 너무 행복하다”고 현재 심경을 밝혔다.
주변 친구들은 정자를 기증받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했단다. 너무 특별하니까 사람들이 차별할 거라고 걱정했던 것. 하지만 자신과 아이를 위해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사실을 밝혔다. 아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싶은데 본인이 거짓말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유리는 자신에게 정자를 기증한 이를 ‘기프트(선물)’ 씨라고 부른다. 이름도 모르고 만난 적도 없는데 애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엄마와 함께 만든 이름이다. 선물 같은 아이를 준 사람이니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이 있을까? 아이한테도 “아빠가 정말 착한 사람이다. 너를 태어나도록 도와줬다. 엄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좋은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해줄 생각이다.
하루아침에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 하루하루 엄마가 돼가는 과정인 것 같아 그게 너무 감사하다는 사유리는 아이가 태어난 것 자체가 효도라고 했다. 공부는 못해도 괜찮단다. “비겁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다른 이를 배려하고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태어난 사유리는 젊은 외국인 여성이 한국에 관해 이야기하는 예능 프로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하며 국내 방송가에 데뷔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에서 먹어본 순대 맛에 반해 한국에 왔다고 한다. 엽기적일 정도로 엉뚱하고 자유롭지만, 소신 발언을 하는 방송인으로도 유명하다. ‘나눔의 집’을 방문해 “나는 일본인이지만 할머니들과 같은 여성으로서 마음이 아프다”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게 3,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
사유리의 선택에 많은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인 장성규는 “제 결혼식의 축가를 불러주신 누나이기에 더 기쁘다”며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기저귀를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사유리 본인도 ‘물건’이지만 책을 읽어보니 그의 부모님도 장난 아니다. 가족 전체가 예술”이라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이 외에도 송은이, 장영란, 이지혜, 이상민, 샘 해밍턴 등 동료 연예인들의 댓글과 축하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누리꾼들 또한 “출산을 가부장제, 정상 가족에 종속시키지 않는 의미 있는 선택이다” “선택을 존중한다” 등 지지의 댓글을 남겼다. 이러한 반응에 사유리는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이 응원해줘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치권에서도 사유리에 대한 응원을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회 원장은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사유리 씨가 정자 기증으로 분만했다. 자발적 비혼모가 된 것. 아이가 자라게 될 대한민국이 더 열린 사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국회가 그렇게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SNS에 사유리의 비혼 출산 소식을 전한 뉴스를 공유하며 “과연 사유리가 한국 여성이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 것인지,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12년 전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서 출산을 한 방송인이 있다. 바로 MC와 라디오 DJ로 유명한 방송인 허수경(53세)으로 2008년 1월 정자 기증으로 시험관아기를 출산했다. 한국에서는 불법인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의 느슨한 법 규정 덕분이었다.
실제로 2007년에는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에 대해 엄격하게 제한하지 않았다. 그러다 모자보건법과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등이 강화되면서 정자·난자의 채취 및 기증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허수경은 방송에서 “아무리 나를 인정해줘도 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자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인데, 가장 가치 있는 일을 못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비혼 출산을 선택한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사유리는 아빠가 있는 게 가장 좋겠지만, 엄마가 혼자여도 열심히 살면 아이가 이해해준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보다는 본인이 진짜로 원하면 나처럼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일본과 한국은 세계에서 저출산 1·2위인데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면 법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마가 된 사유리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 ‘비혼 출산’. 한국에서도 자발적 비혼모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배우자인 남편 동의가 있어야 한다. 비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없다.
일본은 일부 대형 병원에서 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비혼 여성에게 정자를 기증하고 있다. 영국, 스웨덴, 미국 일부 주에서는 배우자 없는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여성의 고유 권한인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만큼 결혼으로만 맺어지는 가족의 개념을 깨고 각자의 결정권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비혼 출산, 어떻게 생각하나요?
(독자 133명 대상으로 지난 11월 17~19일 진행)
1 사유리의 비혼 출산 소식, 어떻게 생각하나요?
59.4% 긍정
32.3% 부정
8.3% 기타
기타 의견
‘장단점이 있다.’ ‘중립.’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면 긍정적.’ ‘놀랍다.’
2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51.7% 행복을 위한 자기 결정권이다
35.3%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서
6.5% 경제적인 문제
5% 경력 단절
1.5% 기타
3 우리 사회에서 미혼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44.4% 부정
28.6% 긍정
12.7% 모르겠다
14.3% 기타
기타 의견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힘든 일도 있겠지만 부정적이진 않다.’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4 ‘비혼모’로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0.3% 주변 시선
27.7% 경제적인 이유
20.6% 육아에 대한 부담감
19.3%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 같아서
2.1% 기타
5 인공 시술이 가능하다면 비혼으로 출산할 의향이 있나요?
46.2% 없다
32.6% 있다
20.5% 고민될 거 같다
0.7% 기타
기타 의견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한다면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