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 자리 있어요?” 요즘 필자가 레스토랑 자리를 예약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코로나19 확산 위기 이후, 유일하게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순간이면서 만나는 사람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하루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워낙 프랑스인이 테라스를 좋아하다 보니 가끔은 테라스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파리 사람들의 습관이다. 그런 전통은 벨에포크라 불리는 20세기 초입부터 시작됐다. 경제적 부흥으로, 건축물과 가로등 같은 현대 기술이 어우러진 파리는 도시 자체만으로도 무대가 되고 그 거리를 거니는 댄디 보이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바로 무대의 배우가 되는 도시였다. 그때부터 사르트르, 헤밍웨이 같은 파리 사람들은 테라스에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삶이라는 무대를 관찰하곤 했다. 이런 전통은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필자가 처음 파리에 와서 당황했던 것 중 하나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테라스에 앉아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긴 프랑스인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파리 사람들이 날씨만 좋으면 열심히 테라스를 찾는 것이다. 사진을 찍거나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아무 할 일 없이’ 앉아 있다.
테라스는 혼자만의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화와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계나 출판업계 사람들은 테라스 한쪽에 온종일 자리 잡고 앉아 무수한 미팅을 이어간다. 비즈니스가 끝난 저녁 시간이 되면 젊은이들과 연인들이 테라스를 찾는다.
테라스의 인기는 끊이지 않고, 코로나19 사태로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파리 시청은 지난 6월 2일부터 차도나 인도에 테라스를 설치하는 것을 무료로 허용한다고 밝혔다. 두 달 가까운 격리 기간에 큰 타격을 입은 요식업계를 살리기 위한 파격적인 조치였다. 이 방침이 발표되자 파리 시청에는 총 2,500건의 테라스 확장 신고와 40건의 도로 인도화 신청이 접수됐다고 한다. 사실 이 방침은 9월 30일까지 임시로 정해진 것이지만,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파리 시청에서는 장기화하거나 관례화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다.
물론 테라스가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아무리 외부 공간이라고 해도 워낙 협소한 파리에서는 옆 테이블 손님과 어깨를 부딪치며 식사를 해야 하기도 하고, 특정 거리는 테라스가 도로 전면을 거의 차지해 걸어 다닐 공간이 부족할 정도다. 갑작스럽게 아래층에 테라스가 늘어나 소음으로 고생하는 주민의 불평도 늘어났다. 더불어 앞으로 비 많이 내리는 파리의 겨울이 찾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도 남아 있다. 외부 난로가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2021년부터 전면적으로 금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긴 겨울 동안 어떻게 할지 고민되기는 하지만 당장의 파리지앵들은 인디언 서머를 즐기며 테라스를 만끽하는 중이다.
글쓴이 송민주
4년째 파리에 거주하는 문화 애호가로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수의 책을 번역했으며, 다큐멘터리와 르포르타주 등을 제작하고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