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지난 9월 14일 “기안84가 오늘 스튜디오 녹화에 참여했다.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찾아뵐 예정이니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기안84는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복학왕>에서 무능한 여성이 남자 상사와의 성관계로 정직원 채용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암시해 질타를 받고 지난 8월 13일 사과문을 게재한 바 있다.
기안84는 <복학왕> 303~304화 ‘광어인간’ 편에서 여주인공 ‘봉지은’이 인턴 마지막 날 회식 자리에서 조개를 깨부수고 정직원에 최종 합격한 모습을 그렸다. 극 중 40대 팀장은 회식 이후에 봉지은과 스킨십을 계기로 교제하게 됐다고 말해 성관계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일부 독자들은 <복학왕> 전개에 여성 혐오적 사고가 담겼다고 지적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기안84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그동안 여성 혐오(30대 여성은 늙어서 맛이 없다고 표현), 장애인 비하(청각장애인의 말투를 과장해 어눌하게 묘사), 외국인 노동자 비하(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의 더러운 숙소를 보고 감탄하는 것으로 표현) 등으로 <복학왕> 연재 중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논란이 쉽게 종식되지 않았다.
결국 기안84는 논란 나흘째이던 지난 8월 17일 <나 혼자 산다> 녹화에 불참했다. 당시 제작진은 논란에 대한 언급 없이 “기안84가 개인적인 사유로 녹화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이후 4주간 기안84는 별도의 공식입장 없이 <나 혼자 산다>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차설이 불거졌으나 제작진은 최대한 말을 아껴왔다.
기안84의 빈자리는 컸다. 2016년부터 프로그램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때로는 기행에 가까운 일들을 벌이면서 독특한 예능 캐릭터로 사랑받았고 ‘3얼(이시언, 성훈, 기안84)’의 주축 멤버로 큰 웃음을 줬다. 지금의 <나 혼자 산다>를 만들기까지 그의 지분을 간과할 수 없다.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가운데도 그의 팬층이 여전히 굳건한 이유다.
박나래, 한혜진, 화사를 주축으로 한 <나 혼자 산다>의 스핀오프 ‘여은파(여자들의 은밀한 파티)’가 고군분투했지만 기안84의 몫을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시청률 하락이라는 악재까지 겹쳤다. 기안84가 잠정 하차한 후 <나 혼자 산다>는 4개월 만에 최저 시청률(7.1%, 9월 4일 방송)을 기록했다. 상황이 역전돼 기안84를 복귀시켜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안팎의 ‘눈치를 보던’ 제작진은 결국 기안84를 복귀시켰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
기안84는 지금의 웹툰 시장을 이끈 1세대 스타 웹툰 작가다. 전·의경의 암울한 군 생활을 다룬 웹툰 <노병가>로 2008년 데뷔했으나 처음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당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기안84는 웹툰 작가 ‘이말년’과 오랜 동거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무명이었던 그를 단숨에 스타 작가로 만들어준 웹툰은 2011년 작 <패션왕>이었다.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안84는 2014년 <패션왕>의 후속작인 <복학왕>을 발표한 뒤 더욱 승승장구했다. 그 사이 웹툰 시장 규모가 커지고 웹툰 작가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방송가는 기안84를 주목했다.
그는 2016년 2월 <나 혼자 산다> 게스트로 출연하며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인기 웹툰 작가가 귀찮다는 이유로 집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기안84는 당시 작업실에서 쪽잠을 자고 공용 화장실에서 세안을 해결하는 모습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강력한 예능 캐릭터가 생긴 것도 이 때부터였다.
방송가의 러브콜이 잇따랐고 바쁜 와중에도 기안84는 본업에 대해 늘 진지한 태도를 이어갔다. 전문화·세분화된 웹툰 작업을 위해 2018년에는 ‘주식회사 기안84’를 설립했다. 그는 경기도 과천에 사무실을 얻고 이를 <나 혼자 산다> 에피소드로 공개했다. 당시 기안84는 엄격함과 온화함을 오가는 두 얼굴의 사장님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송파구 석촌동 소재의 상가 건물을 46억원에 매입했다. ‘주식회사 기안84’ 사옥과 임대 수입이 목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네이버 웹툰 소속의 대표 작가로 활동하는 기안84는 본업과 방송을 효과적으로 병행하기 위해 지난해 ‘미스틱스토리’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어딜 가나 핫 이슈!
사상 초유 시상식 패딩 룩
2016년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파란색 패딩 점퍼에 운동화를 신고 등장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당시 <해피투게더>에 함께 출연 중이던 배우 엄현경이 신인상을 받자, 무대 앞으로 나와 “현경이 잘 좀 해주세요”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때 그의 전신 샷이 카메라에 잡혀 시상식에 맞지 않는 캐주얼 의상이 더욱 부각됐다. 연말 시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라는 질타가 쏟아지자 이후 기안84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꾸미고 나가는 것이 조금 그랬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가상이야, 현실이야? 박나래와의 썸
한때 박나래와 핑크빛 분위기를 연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7년 당시 두 사람은 <나 혼자 산다> 촬영 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낸 뒤 미묘한 기류를 형성했다. 기안84의 지인인 김충재가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 흥미진진한 삼각관계가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기안84는 2017년 MBC 연예대상에서 박나래에게 기습 이마 키스를 감행하기도. 실제 커플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자 박나래는 “기안84와의 열애설을 즐기고 있다”고 쿨하게 해명했다.
“제주도의 수도는?” 외줄 타기 발언들
2017년 MBC 연예대상에서 이시언에게 “제주도의 수도는?”이라는 돌발 질문을 했다. 이시언마저 그에게 “제주도에 수도가 어디 있느냐”고 면박을 줄 정도였다. 2018년 MBC 연예대상 때도 헨리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뒤 “헨리는 죽이고 싶을 때도 있고 예쁠 때도 있다. 싸우면서 정이 들어가는 것 같다”며 “사내 연애는 하지 마라. 하긴 할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에는 한혜진과 결별한 지 얼마 안된 전현무가 MC를 맡고 있던 터라 크게 질타를 받았다.
웹툰계까지 들썩, 기안84가 쏘아 올린 공
웹툰협회는 지난 8월 24일 기안84의 작가 퇴출과 연재 중단 요구가 ‘파시즘’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회적 소수자 비하에 대한 독자들의 문제 제기와 비판은 무겁게 받아들이지만, 이를 명분으로 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상상을 제약하는 것을 우려한 입장이었다. 이에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만화계성폭력대책위원회 등 단체들이 네이버 웹툰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안84의 작품 연재 중단을 요구하며 맞서기도 했다. 최근 웹툰 작가 ‘삭’의 <헬퍼2: 킬베로스>가 강간, 성 착취, 노인 여성 고문 등을 그렸다는 것이 재조명받으며 표현 제재에 대한 찬반 논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차별·혐오 표현의 기준은 무엇인지, 작가 고유의 창작 표현은 어디까지인지 법적 규제에 대한 업계의 고민도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