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의 김연경, 골프의 박인비, 암벽등반의 김자인, 배드민턴의 이용대 등 스포츠계엔 유독 1988년생 용띠 스타가 많다. 농구 코트 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유난히 길고 굵직한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88년생' 김선형 선수가 있기 때문. 서울 SK 나이츠의 포인트 가드이자 주장, 그리고 국가대표인 그와 대적할 동갑내기 선수는 찾기 어려울 정도다.
김선형은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1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로 프로에 입단했다. 뛰어난 실력과 훤칠한 피지컬, 게다가 말끔한 외모와 정직한 플레이까지. 그의 스타성은 일찌감치 싹수를 드러냈다. 매년 올스타전에 이름을 올리고,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한 프로구단의 주장이자 스타팅 선수로 10년째 활약 중인 김선형 선수. <우먼센스>와 동갑내기인 그의 32년에 대해 묻고 싶은 점이 많았다.
'국가대표 가드'를 마주하기 위해 마련한 촬영장은 '신혼 4년 차' 깨가 쏟아지는 한 남자의 러브 스토리로 달아올랐다. "전 1,000ml 우유고 와이프는 그 옆에 달린 200ml 우유예요"라는 그의 말처럼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두 사람 덕분에 촬영장은 질투 어린 야유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좋은 남편, 좋은 선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무심한 듯 꺼내놓은 그의 대답에 그가 살아온 32년이, 그가 살아갈 인생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전문 모델 못지않은데요.
걱정을 많이 했어요.(웃음) 사진 촬영이 익숙하지 않아 잡지에 누가 되진 않을지 촬영날이 다가올수록 점점 초조하더라고요. 어떻게 농구처럼 연습이라도 해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도 없고. 다행히 농구공도 손에 쥐여주시고 분위기도 즐겁게 만들어주셔서 별 탈 없이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합니다. 요즘 '지옥의 주'라고 불리는 8주짜리 훈련의 7주 차에 접어들었어요. 1년 동안 쓸 몸을 만들기 위해 8주 동안 지옥만큼 힘들게 몸을 만드는 기간이죠. 그래서인지 사진에 턱선이 날렵하게 나와 다행이에요.(웃음)
'슈퍼 루키'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2살이에요.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뿌듯함이 더 커요. 후회가 남는 순간들 역시 그런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요. 멋모르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시기가 있었기에 성숙한 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몸을 쓰는 운동 선수다 보니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죠. 하지만 그런 두려움 역시 성숙함과 비례해요. 두려움이 커질수록 더 성숙해지거든요. 언제까지 내가 국가대표로, 주장으로, 스타팅 멤버로 자리할 수 있을까 두렵다가도 또 그만큼 업그레이드되는 노련함과 연륜을 느낄 수 있어 좋아요.
긍정적이네요.
맞아요. 수많은 관중 앞에서 슛을 할 때 긴장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럼 전 오히려 그런 긴장감을 즐긴다고 대답하죠. 실제로 전 그런 분위기와 압박감이 힘들다기보다 즐겁거든요. 그래서 코치님이나 동료 선수들에게도 더 압박해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 자극이 절 더 열심히 뛰게 만드니까요.
긍정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처음 농구를 시작했을 때 경기를 많이 못 뛰었거든요. 4쿼터 막바지에 잠시 나와 뛰는 정도였어요. 실망감과 좌절감에 힘들 때 아버지께선 제게 늘 "넌 세계에서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니 걱정 마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아빠는 널 믿는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으셨고요. 그러한 긍정이 지금의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해주셨지 않았나 싶어요. 결혼 후에는 아내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부모님의 교육 방식으로 긍정적이긴 했지만 전 늘 한계를 두는 편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미국에 훈련을 간 적이 있는데 NBA 선수들의 피지컬이 너무 좋은 거예요. '노력해도 내가 이길 수 없는 부분이구나' 생각했는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그런 생각이 다 산산조각 났어요. 노력한다면 저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누구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착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정말요?(웃음) 제 플레이를 보고 느끼는 이미지일까요? 실제로 정직하게 플레이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있어요. 냉정한 승부의 세계지만 넘어지면 일으켜주려고 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음… 그리고 또 아마 팬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좋게 봐주는 분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전 팬들이 없으면 저희 팀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를 경험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어요. 재미도 없고, 도대체 뭘 위해 뛰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무의미하더라고요. 경기가 끝나면 기다려주신 팬들을 위해 한 명 한 명 최선을 다해 사인을 하고 사진을 찍어드리려고 해요. 100명이든, 다른 팀 팬이든 상관없이요. 가장 늦게 버스에 올라도 싫은 내색을 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어요. 팬들을 향한 애정이니 선수들 모두 이해하는 거죠.
경기를 하다 보면 욱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땐 소심하게 복수해요. 몰래요.(웃음) 실제로도 화를 잘 내는 성격은 아니에요. 아내도 제가 머리끝까지 화난 모습은 본 적이 없을 거예요. 물론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릴 때는 있죠. 그런데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하다 보니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은 드문 것 같아요.
다음 생에는 던지면 들어가는 스테판 커리 같은 슈터로 살아보고 싶어요.(웃음) 손끝에 불 붙으면 뜨거울 정도로 다 들어가는 그런 선수요. 지금보다 더 후회 없이 농구를 해보고 싶어요.
20대의 김선형은 어땠나요?
그땐 모든 게 다 제 위주였어요. 모든 계획을 제가 짜고, 돈도 마음대로 쓰고,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전부 제가 결정하고 행동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전 사실 이러한 변화가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 인생에 가장 큰 변화는 결혼이죠. 결혼 전과 후로 나뉘거든요. 30대가 되고 결혼을 한 후 부양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 됐다는 점이 제게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가치관 자체가 송두리째 변했으니까요. 아마 아내가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 어쩌면 이기적일 수도 있는 제 옆에서 이러한 변화를 기다려주고 함께해줬거든요. 마냥 고마워요.
30대, 되고 보니 어떤가요?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지금의 성장과 여유가 행복해요. 그리고 혼자 살 때와는 다르게 평생을 함께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하고요. 아내와는 서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지니지 못한 부분을 아내가, 아내가 지니지 못한 부분을 제가 채워줄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서로가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어 더욱 보람찬 30대를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여요.
결혼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결혼하고 나니 느끼는 점이 정말 많거든요. 예전에는 멋모르고 했던 행동들도 이젠 한 번 더 생각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돼요. 예전엔 저 혼자만 감당하면 됐던 일들이 이제 내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조심하게 되고요.
2세 계획은 없나요?
올해로 결혼 4년 차인데, 아직도 이제 막 결혼한 것처럼 풋풋한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하루 종일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 농구 외의 제 유일한 일상이거든요. 아내와 건설적인 이야길 나누는 그 시간이 좋아요. 주제가 농구가 될 수도 있고,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죠. 자식 같은 강아지까지 키우고 있다 보니 2세 계획이 더 늦어지는 것 같아요. 아직은 서로 너무 좋아서 서두르고 싶은 생각도 없고요. 만약 절 닮은 아들을 낳게 된다면 농구를 시키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가장 잘 가르쳐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일이 농구니까요. 아마 혹독한 지옥 훈련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봐야죠.(웃음)
'잘생긴 농구 선수'로 늘 거론됩니다.
제가요?(웃음) 저는 제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끔씩 거울을 보고 '오늘 좀 괜찮네'라고 느낀 적은 있지만 사실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잖아요.(웃음) 저는 강병현 선수나 지금은 은퇴한 이승준 선수를 보면 '와, 정말 잘생겼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남자가 봐도 훈훈한 선수들이에요.
32년, 제일 후회되는 순간을 꼽자면요?
아내를 빨리 만나지 못한 거요.(웃음) 사랑꾼이냐고요? 이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됐어요. 저는 정말 아내를 만나고 많은 것이 변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제 전성기는 24세부터 28세까지라고 생각해요. 그때 팬이 가장 많기도 했고 경기력도 한창 좋았으니까요. 그 시기에 아내를 만났다면 전 지금 더 멋진 선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아내에게 이런 이야길 하면 아내는 늘 "내가 그때 오빠를 만났다면 무조건 NBA에 진출시켰을 거야"라고 말하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아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첫눈이 오는 날 서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게 됐어요. 이후 몇 달 뒤 어떤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보니 둘 다 이 사람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빌었더라고요.
이쯤 되니 러브 스토리가 궁금해지네요.
우연히 길을 걷다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다짜고짜 다가가 연락처를 묻고 적극적으로 구애했죠. 이후 자연스레 교제를 하게 됐고 처음 데이트를 하는 날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제가 그때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어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는데 이 사람이 갑자기 펑펑 울면서 아빠, 지금의 장인어른한테 전화를 하는 거예요. 막 엉엉 울면서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라면서요.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제게는 그 모습이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정말 예쁨받고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구나 느끼게 된 계기도 됐고요. 그 후로 만난 지 한 달쯤 됐을까요? 첫눈이 오는 날 서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게 됐어요. 이후 몇 달 뒤 어떤 소원을 빌었냐고 물어보니 둘 다 이 사람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빌었더라고요. 우린 운명이다 싶었죠. 그날 첫눈에 빌었던 소원을 이루고, 또 이루게 해줄 수 있어 행복했어요.
부딪힐 때는 없나요?
전 사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제가 고집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웃음)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런 게 있더라고요. 내가 20년 가까이 농구를 한 사람이니 전문가인 내 말이 아내의 피드백보다 더 옳다는 생각요. 그래서 처음엔 아내의 조언도 '이 사람이 몰라서 하는 소리 아닌가?'란 생각으로 고집을 좀 부렸어요. 그런 고집을 굽히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웃음) 이젠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틀린 말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요즘 최대의 고민이 있다면요?
우선 농구 선수로서는 부상에 대한 압박감이 가장 크죠. 심리적인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연봉이 깎이고 경기력이 감소하는 실질적인 결과도 무섭게 다가오고요. 덕분에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게 되니까 몸이 더 완벽하게 관리되는 것 같고요.
30대 또래들과 비슷한 고민도 있나요?
직업 특성상 수명이 짧잖아요. 남들이 60~70대까지 돈을 벌 때 저희는 40대에 은퇴를 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노후에 대한 고민이 있죠. 지금 어떤 재테크를 해야 할지, 또 어떻게 대비를 해야 노후에 걱정 없이 살 수 있을지 또래들처럼 고민하고 또 공부하는 편이에요. 농구 선수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은 욕심이 있어 찬찬히 준비하고 있지만 워낙 능력 있고 뛰어난 선수가 많으니 저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하고 있어요.
김선형의 40대도 궁금해지네요.
농구 선수로서 은퇴하기 전까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요. 지나고 후회하긴 정말 싫거든요. 코앞에 다른 세계가 닥쳐오기 전까진 농구만 생각하고 올인하고 싶어요. 농구 선수 김선형으로 커리어를 쌓고 레전드로 남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농구 외에 좋아하는 것은요?
액티비티한 건 다 좋아해요. 아내는 집순이 스타일인데 저는 반대로 외출하는 걸 좋아하죠. 집 안에서는 제가 '여자'를 담당하고 있어요. 예쁘게 꾸미고 나가 쇼핑할 때가 정말 좋거든요.(웃음) 최근에는 게임기가 생겨 농구 게임을 즐겨 해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아내와 수다를 떠는 시간이에요. 예전엔 아버지께서 그 역할을 해주셨거든요. 경기를 끝내고 집에 오면 항상 1쿼터부터 4쿼터까지 제 브리핑을 듣고 이런저런 피드백을 해주셨어요. 그걸 결혼해서도 할 수 있으니 전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선택할까요?
아마도요. 지금보다 더 후회 없이 농구를 해보고 싶어요. 제 스타일과는 다른 스타일의 농구를 해보고 싶기도 하네요. 지금은 스피드한 슬래셔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다음 생에는 던지면 들어가는 스테판 커리 같은 슈터로 살아보고 싶어요.(웃음) 손끝에 불 붙으면 뜨거울 정도로 다 들어가는 그런 선수요.
최종 꿈이 궁금해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농구 선수로,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들로 전부 다요.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살았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아내와 한날한시에 죽고 싶어요. 서로 이런 이야길 한 적이 있는데 서로가 이 세상에 없다는 슬픔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겠더라고요. 아내와 함께 아름답게 늙어서 마지막까지 손 꼭 붙잡고 갈 수 있는 후회 없는 사랑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