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내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주안이와 후회 없는 시간을 더욱더 많이 함께하자는 것. 특히 아내는 주안이가 우리에게 놀아달라고 말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초등학교 때까지 엄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대공원에도 놀러 가던 내가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점점 엄마보다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과 누나와도 사이가 매우 좋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혹은 명절 연휴가 고작이었다. 주안이가 우리 부부의 품을 떠나 새 가정을 이루기까지, 그러니까 주안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독립하기까지 주안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안이가 우리 품을 벗어날 때 아쉬움이나 슬픔이 남지 않도록 하루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주안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는 사실 주안이의 기억보다 우리 부부가 주안이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훨씬 많다. 태아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양수가 줄어 위험하다는 말에 갑자기 입원하고 다음 날 출산했던 기억, 2시간마다 수유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군분투하던 아내의 모습, 조리원에 가지 않고 둘이서 하루하루 해냈던 산후조리 기간, 기저귀를 갈아주다 똥을 뒤집어쓴 사건,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닌 여행, 그리고 SBS <토요일이 좋다-오! 마이 베이비>에 출연하며 남긴 수많은 에피소드까지. 주안이는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 우리 부부는 아들 덕분에 많이 울고, 웃고 또 행복했다.
며칠 전에는 그 소중한 순간의 의미를 더욱 뼈저리게 깨달은 일이 있었다. 공연 연습이 막바지로 치달아 집에 일거리를 잔뜩 가지고 들어온 날이었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던 주안이가 그날 배운 농구를 자랑하고 싶어 목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주안이는 농구 기술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이미 정신없었던 나와 아내는 주안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래? 잘했네! 멋졌겠다!"라며 영혼 없는 리액션을 했을 뿐, 주안이에게 얼마나 행복한 경험이었는지, 얼마나 신기하고 낯선 시간이었는지 녀석과 눈을 맞추고 들어주지 못한 것이다. 곁에서 그걸 보고 속상했던 아버지가 다음 날 슬그머니 전날의 이야기를 내게 건네셨다. 주안이가 나에게 농구 이야길 들려주기 위해 얼마나 설레며 기다렸는지, 얼마나 신나게 할 말을 준비했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가슴이 다 아프셨다고.
인생엔 중요한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우선시하는 것은 소중한 나의 가족 그리고 그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다. 오늘도 다짐해본다. 주안이가 우리 품을 떠날 때 후회 없이 웃으며 보내줄 수 있도록 지금 더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겠다. 사랑해, 손주안!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