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대본에 반해 선택했다"
김희애가 아니면 이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짙은 여운을 남기며 종영한 <부부의 세계>는 '김희애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선우(김희애 분)'의 심리를 따라간다. 김희애는 예민하게 감정의 본질을 꿰뚫으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인생 캐릭터'를 갱신했다. 원작인 BBC <닥터 포스터>는 압도적인 시청률은 물론, 복수의 통쾌함을 넘어선 관계의 본질을 파고드는 이야기로 방영 내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던 작품이다. 김희애는 이 드라마로 4년 만에 안방극장에 컴백했다. <아내의 자격>에 이어 <밀회>까지 JTBC 드라마와 유독 궁합이 좋았던 그녀의 6년 만의 JTBC로의 귀환이기도 하다. 김희애는 자신의 SNS에 "함께 해주셔서 아름다운 순간들이었고, 많은 분들의 응원은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요! 늘 건강하세요" 라며 종영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배역을 소개해달라.
한 남자를 너무 사랑해서 사랑의 끝까지 가보는 역할이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셌다. 여성스럽고 연약한데 어느 순간엔 무서운 역할이다. 여러 가지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 감정 연기를 하다 보면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게 느껴졌다.(웃음)
다중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건 힘들지 않나?
지선우가 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왔다. 배우로서 이런 역할을 죽을 때까지 또 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힘들면서도 동시에 도전하는 재미와 보람이 있다. 그동안 연기한 배역의 스펙트럼이 다 섞여 있는 것 같다. <밀회> 때와는 또 다르다.
<밀회> 이후 6년 만에 JTBC 드라마를 하게 됐다.
일단 감독님에 대한 믿음이 컸다. 주위에 여쭤봤더니 감독님만 믿고 하면 된다고 하더라.(웃음) <미스티>라는 작품을 이번에 찾아봤는데 마디마디를 훑는 느낌이었다. 한번 보니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작품이더라. 원작인 <닥터 포스터>를 보고 과연 한국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어떨까 궁금했다. 대본을 읽어보니 인간이 느끼는 감성이나 본성은 비슷하다고 하지만 원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화해 편안하게 읽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몰아쳤다. 할 수밖에 없는 대본이었다.
폭풍 같은 감정선의 연속이다. 힘들지는 않나?
6회에 기억에 남는 감정 신이 있었다. 사실 난 감정 신을 여러 번 하기 어렵다. 감정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또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감정이 마른다. 이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연기하니 감정이 멈추질 않더라. 첫 테이크에서 70%만 해야지 했는데 100%를 다해버렸다. 다음 장면에서는 120%가 됐다. 내게도 드문 경험이다. 배우로서 귀하고 값진 경험이다.
스태프들과의 호흡은 어떤가?
감정 신은 배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조합이 맞아야 잘 나온다. 우리 드라마는 감정 신이 많으니 상대역도 그렇고 스태프 등 모든 분이 상황을 좋게 해준다. 그래서 짜릿한 경험을 맛보며 행복했다.
상대역인 박해준과의 호흡은 어떤가?
박해준 씨와 처음 연기해보는데 이렇게 잘하는 배우인 줄 몰랐다. 박해준 씨가 출연한 영화 <독전>을 다시 찾아봤다. 어마어마하더라. 앞으로도 같이 연기하고 싶을 정도로 상대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준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대충 하는 느낌이다. 보통 컷한 순간에도 감정이 멈추지 않는데, 편하게 장난칠 정도로 전환이 빠르더라.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 괴물 같은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역할에 빠져서 하는 게 존경스럽다. 배우의 눈으로 봐주고 사심 없이 연기해줬기 때문에 상대역인 나도 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관전 포인트는?
엔딩 장면만 쫄깃한 게 아니라 어느 장면에서도 감정선을 쫄깃하게 만든다. 최고의 배우들과 최고의 스태프들이 만난 작품이다. 어디서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깜짝 놀라며 촬영했다.
한편, <부부의 세계>는 6회까지 19금 편성이 되며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연출을 맡은 모완일 감독은 "폭력성이나 선정성 때문이 아니라 리얼해서 더 자극적으로 보이고 긴장감 있고 심각해 보여 19금이 됐다"며 "6회까지는 피하지 말고, 걸러내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혀 보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의 제목에 관한 생각도 전했다. 모 PD는 "드라마를 한국화하면서 여주인공 자체 캐릭터의 대단함도 있었지만 여주인공과 주변 모든 사람들이 휘몰아치는 느낌이 좋았다. 인물 한 사람만이 아니라 사랑·결혼·부부에 포커싱을 둬 <부부의 세계>라고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