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리를 처음 만난 건 2016년이었다. 30시간 진통 끝에 수중 분만으로 힘겹게 낳은 큰아들 도윤 군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하는 날이었다. 젖을 어떻게 물리는지도, 젖병을 어떻게 삶아야 하는지도 몰랐던 초보맘이 4년 만에 세 아들의 엄마가 됐다. 큰아들 도윤(6세) 군, 둘째 아들 도원(4세) 군, 막내아들 도하(2세) 군….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베테랑이다.
정주리의 가족을 <우먼센스> 카메라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녀는 촬영을 핑계로 곱게 단장했다. 남편 김종부 씨는 카메라가 어색한지 연신 머리를 긁적인다. 오랜만의 촬영으로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엄마 아빠와는 달리 도윤 군과 도원 군은 신이 났다. 촬영장이 신기한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모험심을 잔뜩 발휘한다. 도윤 군이 "엄마! 이거 뭐야~?" 물으면 저쪽에서 도원 군이 "엄마~!" 하고 부르는 식이다. 아직 걷지 못하는 도하 군을 안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정주리. '정길동'이나 다름없다. 남편 역시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 속에서 정신없다. 이 가족, 안 봐도 불 보듯 뻔하다. 매일이 미션이고 전쟁이지 않을까.
오랜만이에요.
간간이 방송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화보 촬영은 거의 4년 만인 것 같아요. 도윤이만 낳았을 땐 그래도 활동하는 게 수월했는데, 아들이 셋이나 되고 보니 외출 한번 하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방송 출연은 더더욱 엄두가 안 나고요. 오늘도 남편에게 "촬영하자"고 졸랐어요. 제가 세 명의 아이랑 남편이랑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촬영은 정신없긴 해도 재미있었어요.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세 아들 키우기 힘들죠?
말해 뭐 해요.(웃음) 요즘처럼 집에만 있어야할 때는 더 힘들어요. 에너지가 넘쳐나는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뛰어놀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짜증을 많이 내죠. 사랑을 골고루 나눠주지 못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가장 힘들어요. 도윤이는 맏형이라서 동생들을 잘 챙겨야 하고, 도원이는 둘째라서 늘 양보해야 하고, 도하는 막내라서 늘 형들에게 치이죠. 어린데도 벌써부터 각자 짊어져야 하는 것이 있는 거예요. 그래도 아주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형과 아우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죠. 되레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아셋맘(아들 셋의 엄마)'의 하루 스케줄은 어떤가요?
별거 없어요. 오전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씻기고 먹이고 준비해 어린이집에 등원시켜요.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돌아오는데 그 사이에 밀린 집안일이며 살림을 하죠. 가끔 외출을 하기는 하지만 멀리 간다거나 시간을 오래 보내지는 못해요.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유튜브를 안 보여주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보여주게 돼요. 출장이 잦은 남편이 집에 오는 날엔 그래도 조금 수월해요. 아이들과 놀아주니까요.
SNS에 올라오는 '독박 육아' 사진들이 재미있어요.
세 아이를 혼자 키우다 보면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생겨요. 청소도 제대로 하지 못해 발에 무언가가 막 밟히는데, 막내가 기어 다니면서 그런 걸 먹고 그러죠.(웃음) 그러면서 생기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SNS에 올렸어요. 며칠 동안 씻지 못한 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엄마들이 공감해주더군요. 막내를 등에 업은 채 맥주를 마시는 사진을 보면서 함께 울어주기도 하고요. 얼마 전엔 세 아이에 둘러싸인 채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올렸는데 그게 화제가 됐죠. 하루는 (김)미려 언니 둘째 아이 돌잔치에서 나도 모르게 흥에 겨워 춤을 추는 장면을 올렸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그동안 분출하지 못했던 '흥'을 쏟아부었거든요.(웃음) 평범한 제 모습을 엄마들이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아요.
가까운 육아 메이트는 누구인가요?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건 정말 힘들어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무너지기 쉽거든요. 친정이 멀리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친한 친구들을 집으로 부릅니다.(웃음) (이)경분 언니랑 미려 언니랑 대화를 많이 해요. 아이 키우면서 힘든 걸 서로 털어놓다 보면 기분이 풀려요. 개그맨 김태환 씨는 남편보다 저희 집에 오래 머무는 사람이에요. 아이들을 친조카처럼 여기면서 온몸을 다해 놀아주죠. 어떤 땐 너무 과격해 걱정도 되지만 그래도 좋아요. 종종 집으로 아이들 간식을 보내주는 (이)국주, 힘내라고 응원 문자를 보내주는 미려 언니, 그 외에도 감사한 분이 너무 많아요.
'아셋맘'의 힐링 포인트는 뭘까요?
'육퇴(육아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이 그렇게 큰 힘이 됩니다.(웃음)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겨요. 오늘 하루를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들인데 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화를 냈다니…. '내일은 안 혼내고 많이 웃어줘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막상 다음 날이 되면 도돌이표예요.
그래도 밝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할 것 같아요.
요즘 도윤이랑 도원이가 하는 행동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엄마, 힘내세요!" "엄마, 사랑해요!" 이런 말을 속삭여주는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어요. 이런 게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자 보람 아닐까요.
넷째 계획은 없나요?
얼마 전에 친정엄마가 태몽을 꾸셨다면서 "넷째 아니냐"고 전화를 했어요. (안)영미 언니도 제 태몽을 꾸었대요.(웃음) 아들만 셋이다 보니 주변에서 딸을 낳으라고 권해요. 자연스럽게 생기면 어쩔 수 없지만, 계획에 의해 임신을 하지는 않을 거예요.(웃음)
'육퇴(육아 퇴근)'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이 그렇게 큰 힘이 됩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겨요. 오늘 하루를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요. '내일은 안 혼내고 많이 웃어줘야지' 하고 다짐하는데 막상 다음 날이 되면 도돌이표예요.
엄마가 되고 난 후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개그우먼이라서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언제 어디에서든 사람들을 웃길 수 있어야 하고요.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그런 제 감정 리듬이 살짝 다운되더라고요.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고 해야 할까요. 갑작스럽게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스스로 흠칫 놀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갑자기 어른 대우를 해주더라고요. "아이 엄마니까 안 돼" "도윤이 엄마니까 이렇게 해야 해" 하는 가르침들이 있었어요. 아이를 낳았지만 나는 여전히 정주리인데 사람들이 갑자기 어른으로 대우해주니까 당황스러웠죠.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소원해지고요. 그런 면에선 조금 혼란스러워요.
남편에겐 어떤 아내예요?
친구 같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해요. 남편이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옆에서 말없이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는 아내가 되고 싶죠. 우리는 철없을 때 만나 별일을 다 겪었어요. 2005년에 만나 정확히 15년을 함께했네요. 20대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남편이죠. 방 한 칸짜리 원룸에서 시작해 점점 방 사이즈를 늘려가는 저를 보면서 기꺼이 응원해준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에요. 남편을 보면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해요. 제 좁은 원룸에 놀러 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결혼해 세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렸네요. 저희도 서로 신기해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죠. 제 인성을 만든 사람이기도 해요.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아요.
물론 사랑이 밑바탕이 돼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건 서로에 대한 의리인 것 같아요. 저와 남편은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요. 20대를 함께 보내며 함께 성장한 사람인데 어떻게 배신하겠어요. 물론 싸우기도 하고, 위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헤쳐나갔어요. 아이가 하나일 때와 셋일 때는 싸우는 빈도가 달라요. 웬만한 건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요즘엔 어떤 고민을 하나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고 밝게 키울 수 있을지 생각이 많은데 그러려면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부터 밝아야 하는데 가끔 심정적으로 가라앉다 보니까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나는 누구의 엄마가 아닌 정주리인데…' '아셋맘인데 다시 개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우울해지기도 하죠. 어떻게 하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그래서 더더욱 제 삶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서 오는 행복과는 또 다른 지점에서의 고민이죠.
방송 복귀 계획은 어떤가요?
도윤이를 낳았을 때는 일을 쉬어 불안하긴 했지만 미친 듯이 일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땐 아이와 떨어져 있는 연습이 되지 않았거든요. 출장을 다녀오면서 엉엉 우는 저 자신을 보며 '아직은 아들 곁에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해 점차적으로 일을 줄여왔죠. 지금은 다시 일하고 싶어요. 동료 개그맨들이나 평소 알고 지내던 배우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막 꿈틀거려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할 수만 있다면 개그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요. 한편, 아이들을 두고 나가서 일에 몰두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녹화가 조금만 길어져도 아이들 걱정에 마음 졸일 것 같거든요.
육아 프로그램이나 부부 예능 프로그램 섭외가 꽤 있었을 것 같은데요?
몇몇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행여 아이들과 남편이 받을 상처가 걱정이었고, 남편도 긍정적이지 않았고요. 지금은 남편과 아이들이 예쁘게 나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직 보여주지 못한 또 다른 모습이 있나요?
'사람 정주리'의 모습요. 저는 아주 평범한 여자이자 아내이자 엄마거든요. 사람들이 우는 장면에서 울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꾸미지 않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데…. 엄마의 모습과 여자로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편도 제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밀어줄 거래요. 제가 일하러 간 사이에 육아를 맡아서 하겠다고 하더군요. 든든해요.
촬영 후 정주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문자메시지였다. '풀 메이컵'을 한 오랜만의 외출이라 들뜬 기분이 느껴졌다. 해방감이랄까. 오늘만큼은 그녀에게 '엄마'가 아닌 '정주리'를 허락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