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계에서 김완선의 의미를 묻는다면 '최고' '최초' '원톱' '원조' 등 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1986년 '오늘밤'으로 데뷔한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아이돌 댄스 가수로, 1990년대 초반 대중가요계는 말 그대로 '김완선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마돈나'라고도 불린 김완선은 '리듬 속의 그 춤을'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 등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전무후무한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52세가 된 그녀. 여전히 우리는 '김완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매력적인 눈매와 비음 섞인 음색, 화려한 패션 센스와 감각적인 댄스 실력까지 그녀의 전성기는 35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우먼센스> 카메라 앞에서 인위적인 포즈 대신 음악에 몸을 맡긴 뮤지션 김완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몸짓에 집중한 때문일까. 수십 명의 스태프가 모인 촬영장에 오직 셔터 소리만 가득 울렸다.
여전한 '댄싱 퀸'입니다.
최근 두 곡의 신곡을 발표했어요. 한 곡은 클럽에서 들으면 좋을 섹시한 곡이고, 한 곡은 화창한 날 드라이브를 하면서 들으면 좋을 곡이죠. 10년 동안 꾸준히 싱글을 발매해왔지만 겹치는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얼마 전 발표곡들을 쭉 들어봤는데 신기하리만치 모두 다른 장르의 곡이더라고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만큼 제가 추구하는 음악과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많은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도 많고요.
유튜버로도 활약 중이고요.
요즘 유튜브 채널 '김완선 오피셜(KIMWANSUN official)'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실제로 제 스스로 재미있게 하다 보니 시청하는 분들도 재미있어 해주시고요. 유튜브는 TV 방송과 달리 자유롭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개인 방송이잖아요. 바로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또래 가수들은 모두 느낄 거예요. 이 나이쯤 되면 무대에서 노래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출연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대중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은 더더욱 부족하죠. 그래서 또래 가수들이 유튜브를 많이 활용했으면 좋겠어요. 유튜브를 통해 음악 활동도 할 수 있고, 기회가 없어 보여주지 못했던 부분까지 모두 보여줄 수 있잖아요.
특히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나요?
(강)수지 언니 채널을 즐겨 봐요. 언니의 소소한 일상이나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또 개인적으로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관련 콘텐츠를 즐겨 찾아보는 편이죠. 요즘은 뒤늦게 JTBC <비정상회담>에 푹 빠졌어요. 방송 당시엔 못 보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보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얼마나 즐겨 보는지 최근 유세윤 씨를 만난 일이 있어요. <비정상회담> 때문에 맨날 본 사람처럼 친근한 느낌이 나는 거예요. 예전에 시트콤을 같이해서 어느정도 친분이 있긴 했지만 어제 만난 동료를 또 만난 듯 너무 반가웠어요. 잘 챙겨 보고 있다고 응원을 건넸더니, 세윤 씨가 이미 3년 전 일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저는 싱글이잖아요. 라이프스타일이 늘 비슷한 패턴이고, 혼자라서 자유와 재미를 추구하기가 한결 편하고 가벼운 것 같아요. 딸린 식구가 있었다면 그들을 신경 쓰느라 이렇게 절 위해 살긴 어려웠을 테니까요. 다행히 저는 돌볼 사람이 저밖에 없기 때문에 저 자신을 사랑할 시간과 기회를 많이 가졌어요. 운동도 하고, 좋은 것도 먹고, 스스로 가꾸면서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더 젊어 보이는 것 아닐까요? 의식적으로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영한 감각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완벽한 몸매도 여전하고요.
30년 내내 같은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온 사람이 크게 바뀔 일이 뭐가 있겠어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면 모르지만 저는 늘 노래하고 춤추는 김완선으로만 살았잖아요. 가끔은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잘 못 느낄 정도예요. 몸무게도 그래요. 2~3kg 정도 쪘다 빠졌다를 반복할 뿐 그 폭이 더 벌어지진 않아요. 맛있는 걸 먹는 건 좋아하지만 과식하진 않고요. 운동은 억지로 억지로 하는 거예요. 저도 정말 하기 싫어요. 가끔은 너무 하기 싫어 미치고 팔딱 뛸 정도예요.(웃음) 근데 그냥 꾸역꾸역 하는 거죠. 안 하면 안 되니까. 이게 내 직업이니까. 최소한의 관리는 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너무 아름다운걸요.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고 해요. 외면이 아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그 능력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 그런 눈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근데 나이 든 제 모습을 보는 일은 왜 적응이 안 될까요. 자글자글한 주름이나 예전 같지 않은 체력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아요. 남들에게 보이는 직업이라 더 스트레스를 받고요. 이렇게 늙어가는 일조차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인드를 갖추는 일이 참 어렵네요.
싱글 라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스스로 압박하기보다 '그 정도면 잘한 거야'라고 위로해주는 것. 살아보니 그런 마인드가 중요하더라고요. 주변에 응원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적으니 자존감을 스스로 채워야 해요.
요즘 추구하는 '멋'이 궁금해요.
나이 드니 전형적인 '멋'보다는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게 됐어요. 음악도, 인테리어도, 패션도 위트 있고 재치 있는 아이템에 눈길이 많이 가더라고요. 이번에 준비한 음악들도 그래요. 제가 하면서도 너무 재미있어서 신곡만 생각하면 설레고 기분이 좋아져요.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었나 싶어 웃음도 나고요. 나이를 먹으니 이렇게 취향도 변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심오하고 진지한 영화를 즐겨 봤다면 요즘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영화를 찾게 되는 것처럼요. 사실 저는 유행을 잘 몰라요. 유행을 좇는 스타일도 아니고, 제 개성과 색깔이 돋보이는 게 더 좋거든요. 모두 좋아하는 스타일보다 '김완선' 스타일이고 싶어요.
본인만의 시그너처 심벌을 꼽자면요?
사자 머리죠. 이게 '김완선'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머릿결이 안 좋아져 깔끔하게 펴고 다니는데 저답지 않은 느낌이에요. 부스스하고 곱슬거리는 사자 머리. 이게 바로 저인데 말이죠.
예쁘게 꾸민 집 인테리어도 화제가 됐어요.
어릴 때는 인테리어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외국에서도 살아보고 이사도 몇 번 다니다 보니 우연히 관심을 갖게 됐죠. 아마 하와이에서 살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지금 집은… 글쎄요. 온통 사방을 하얗게 해놔서 그렇지 실제로 보면 별것 없어요. 짐이 없어 심플하고 깔끔해 보일 뿐 대단히 감각 있는 인테리어는 전혀 아니에요. 인테리어 팁을 굳이 꼽자면 제가 집순이라 여행 온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휴양지에 놀러 온 것처럼요. 여백도 많이 두고 꼭 필요한 짐과 가구만 두려고 하죠. 색깔이 너무 많은 것도 싫어요.
그림 실력도 수준급이던데요.
이런저런 재능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저희 외가는 음악에 재능이 많고, 친가는 그림에 재능이 많거든요. 저는 그 능력들을 골고루 물려받은 것 같아요. 덕분에 제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여러 취미를 갖게 됐고요. 그런데 제가 할 줄 아는 건 그 두 가지뿐이에요. 음악과 미술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부족한 사람이죠.
싱글 라이프가 외롭지 않아 보여요.
외로움을 잘 안 타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직업적으로 매번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해요. 수많은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제게 안정감과 휴식을 선사하더라고요. 그렇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다시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반갑고 즐겁게 느껴져요. 덕분에 외롭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못하고 살았어요. 행복한 거죠.
행복하게 사는 팁이 있나요?
싱글 라이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스스로 압박하기보다 "그 정도면 잘한 거야"라고 위로해주는 것. 살아보니 그런 마인드가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주변에 "잘했다, 잘했다" 응원하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으니 그 부분을 스스로 채워야 해요. 자기 자신을 예뻐해주고,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벌써 50대네요.
50대가 되고 보니 좋은 점이 한 가지 있어요. 때를 기다릴 줄 알게 됐다는 점이에요. 초조하거나 불안해하는 순간보다 무덤덤하게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성격이 굉장히 급한 편이었거든요. 지금은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느긋해졌어요. 그런 건 나이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또 사는 게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이 좋아요. 굴곡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감사히 받아들이며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요. 그리고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게 됐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충실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어렸을 땐 갱년기에 대해 잘 공감하지 못했어요. 그게 뭐 그리 힘든 일일까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여자는 참 가여운 존재인 것 같아요. 저와 같은 순간을 겪고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취미 생활을 즐긴다는 게 정말 큰 힘이 되거든요. 또 자신한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해요.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지켜보면서 자신을 사랑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를 안 보고 자꾸 다른 사람만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게 바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인데 말예요. 좁은 데서 복닥복닥 살다 보니 옆을 안 보려야 안 볼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럴수록 의식하고 시선을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해요.
김완선의 꿈이 궁금해요.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멋진 시간을 보내는 것.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꿈이 없어요. 하루하루가 제겐 꿈 같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