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1월 3일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의 본격적인 레이스가 개막됐다. 지난 2월 아이오와주 당원 대회와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를 시작으로, 지난 3월 3일에는 ‘슈퍼 화요일’이라 불리는 대의원 선출이 진행됐다. 민주당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에서 1위를 거머쥔 후보는 ‘백인 오바마’로 불리는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이기도 한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 중도 성향의 공약, 남편을 둔 동성애자라는 점을 내세워 트럼프를 이길 ‘패기 있는 후보’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소수자에게 거부감이 큰 흑인을 비롯해 민주당 기성 당원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며 아이오와주 이후 지지율이 10% 안팎에 머무른 것. 이후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의 승리를 거머쥐며 부티지지에 0.1% 뒤졌던 아이오와주 당원 대회의 굴욕을 만회했다. 언론은 일제히 버니 샌더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78세 노장의 선전에 ‘버니 대세론’이 2016년 대선 이후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뉴햄프셔주 예비선거는 정식 당원만 참여하는 당원 대회와 달리 일반 유권자도 투표가 가능해 대권 민심을 더욱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버니 샌더스 역시 상승세를 오래 유지하긴 역부족이었다. 그는 미국 14개 주에서 열린 대선 후보 경선, 일명 ‘슈퍼 화요일’에서 10개 주를 조 바이든(이하 ‘바이든’)에게 내주며 참패의 고배를 마셨다. 경선 초반에만 해도 4, 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보이던 바이든이 트럼프의 독주를 막을 최대 대항마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조 바이든, 그는 누구인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를 압도적으로 꺾은 바이든은 우리에게 그리 친숙한 인물은 아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 대선 후보를 놓고 경합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에 비하면 이름조차 낯선 인물. 하지만 미국 내에서 바이든은 꽤 굵직한 입지를 가진 정치인으로 손꼽힌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미국 부통령을 지냈으며 40년간 공직 생활에 몸담으며 외교·안보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올해로 77세가 된 그가 오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 초짜’ 트럼프와 상대한다면 꽤 승산이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바이든이 이토록 ‘대세’로 떠오른 것은 비단 개인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중도 성향의 후보들과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속속 바이든으로 결집해 그에게 ‘든든한 지원자’ 노릇을 해준 결과다. 3월 들어서만 민주당 의원 최소 26명의 지지를 얻어냈고 부티지지를 비롯해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등 민주당 내 경쟁 후보들은 대다수가 사퇴 후 단 몇 시간 만에 바이든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인들이 바이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상되는 3가지 수식어가 있다. 미국 역사상 6번째 최연소 상원의원, 6선의 상원의원 그리고 오바마의 부통령이다. 바이든은 29세의 나이에 1972년 델라웨어주에서 치른 미국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출마 이유는 다소 황당하게도 “민주당 내에 출마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서”였다. 베트남전쟁이라는 변수를 만난 그는 기적처럼 50.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시 거물로 손꼽히던 공화당 상원의원 칼렙 보거스를 1% 차이로 눌렀다. 이로써 바이든은 30세에 미국 역사상 6번째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이후 그는 델라웨어주를 선거구로 6년 임기의 미 연방 상원의원을 6선이나 성공했다. 1988년과 2008년, 두 차례나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중도 사퇴했고, 올해 마지막일 수 있는 출마이자 ‘삼수’에 도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그는 오바마 정권 아래서 8년 동안 부통령을 역임했다. 이로 인해 그는 백인 정치인임에도 흑인들의 절대적 지지 세력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오바마는 바이든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빅 픽처’
바이든은 민주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온건파’다. 다소 파격적이고 다이내믹한 트럼프와는 완전히 노선을 달리한다. 특히 바이든은 ‘트럼프식’ 대북 정책을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 1월 14일 민주당 경선 TV 토론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일본,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도록 강하게 압력을 넣겠다”고 강조한 것.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완벽히 포기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해야 하며 주한 미군 철수에도 강경 반대 입장을 갖고 있다.
한편, 트럼프는 일찌감치 ‘재선’에 눈독 들이며 올해 11월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2021년 회계연도 예산 규모를 4조 8,000억 달러(약 5,698조원)로 책정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 수립과 우주개발 비용 등이 확대, 포함됐고 비국방 예산은 크게 감축했다. 그의 슬로건인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것을 감안해 짠 예산안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 혐의를 받고 탄핵 심판을 받은 그는 ‘무죄’를 받고 도리어 취임 후 최고 지지율을 경신했다.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 추진이 공화당 지지층의 결속 효과만 불러일으켰다는 것. 하지만 그의 앞에 성공 가도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 주가가 기록적으로 폭락했고, 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해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며 그의 재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백악관 잔디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국민이 필요로 하고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고 어떤 자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며 “최대 500억 달러(약 60조원) 규모의 연방정부 기금을 각 주나 지역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방역망에 비상이 걸린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코로나19로 정체된 경제 악화를 어떻게 회복시키느냐에 따라 그의 재임 가능성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바이든의 여자 vs 트럼프의 여자
미국 대선의 양자 구도가 형성되면서 영부인 자리를 놓고 경쟁할 그녀들에게도 관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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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위하여’ 질 바이든
교통사고로 첫 번째 아내와 13개월 된 딸을 잃은 바이든은 5년 뒤 현재의 아내인 질 바이든과 재혼했다. 30년가량 교수를 지낸 그녀는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재임한 8년간 ‘세컨드 레이디(부통령 부인)’로서 활동을 펼쳐오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어왔다. 2015년 방한해 ‘여성의 역할’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질은 현재까지 성별 때문에 차별받는 ‘여성’의 문제에 유난히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녀가 만약 영부인의 자리에 앉는다면 워킹 우먼의 권리 향상과 경력 단절 여성에 대한 정책이 다양하게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나도 두 명의 아이가 있는 여성으로서 직장과 가정을 함께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난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의지와 열망을 갖는다면 의미 있는 커리어를 쌓게 될 것”이라고 여성과 관련한 차별과 정책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시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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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하여’ 멜라니아 트럼프
모델로 활동하다 뉴욕 패션 위크에서 트럼프를 처음 만난 멜라니아 트럼프는 2017년 트럼프의 재임 이후 미국의 영부인이 됐다. 그녀는 이후, 전 세계 아동복지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어린이들에게 사회적·감정적·육체적 건강의 중요성을 가르치자는 ‘최고가 돼라’ 캠페인인 아동 권리 운동 ‘비 베스트(Be Best)’를 이끌고 있는 것. 멜라니아는 “빠르게 변하고 끊임없이 연결되는 세상에서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표현하거나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존재”임을 명확히 하고, “괴롭힘, 마약중독 등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성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행보로 여론의 호감도가 10% 이상 훌쩍 뛰었다. 트럼프의 각종 성 추문에도 침묵해온 그녀에게 격려와 동정표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