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이주 여성 1호 영입 인재
"필리핀 며느리를 예뻐하던 그 시절로…"
이주민 인권 운동가 이자스민
이자스민(43세) 정의당 이주민인권 특별위원장에게 보수당에서 진보 정당인 정의당으로 옮긴 일은 대단한 이슈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덧 20~ 30대 성인이 돼 사회로 나가기 시작한 다문화 가정 자녀들과 교육, 의료 같은 기본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유령처럼 살아가는 미등록 아이들,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이 땅에서 동등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이라는 것이다.
당을 옮기면서 쓴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동안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퍼주는 이주민 지원보다 따뜻한 시선이 오가는 세상을 다시 꿈꾸고 있었다.
Q 25년 전 한국으로 시집왔을 때 기억나세요?
시부모님이 신촌에서 세탁소를 하셨어요. 이웃 어른들이 저를 세탁소 며느리라고 불렀죠. 그때는 사람들 시선이 참 따뜻했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남편이 잘해줘요?" "한국 생활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질문이 달라졌어요. "왜 왔어요?"
Q 이주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얘기인가요?
지역마다 다문화 센터가 생기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국어 무료 강습소 같은 시설이 넘쳐나요. 하지만 이주민들의 행복 지수는 더 나빠졌죠. 그래서 마음이 아파요. 저는 이주 여성 중에서 아주 행복한 사람에 속해요. 가족들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로부터 박수를 받고 사랑을 많이 받으며 살았거든요. 26년 전만 해도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 이주 여성들은 "너 언제 도망갈 거냐" "다문화 가정은 왜 어린이집 1순위야? 역차별 아니야?" 이런 말을 듣고 살아요.
Q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도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문화 가정, 이주민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해요.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다문화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어보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 이렇게 대답하세요. 다문화에 대한 생각이 아주 없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처음 만나는 이주민의 모습과 상황이 이주민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거든요. 문제는 중립의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이주민을 처음 만난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로버트 할리나 이다도시 같은 이주 외국인들이 웃음의 코드로 TV에 나왔어요. 그런데 요즘은 반대의 코드로 다뤄져요. '다문화 가정은 문제가 많고, 왕따에 시달리며 이주 노동자의 삶은 힘들다' 등의 모습만 방송을 통해 반복해서 보다 보면 부정적인 인식이 각인되는 거예요. 이주 여성들한테 물어보면 <다문화 고부열전> <러브 인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프로그램은 눈물을 짜내고 감동을 줘야 하니까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지만 우리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거든요. 정책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문제가 커요. 불쌍한 사람, 우리 세금으로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이주민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동등, 평등이라는 단어는 사라져버려요.
Q 다시 국회로 돌아간다면 최우선 순위의 활동 계획이 있나요?
국회에 전문가가 없다 보니 국회에 상정됐던 다문화·이주민 관련 법안이 중도 폐기되거나 제자리걸음이죠. 우선 19대 국회에서 추진했던 이민사회기본법과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을 다시 추진해 통과시켜야 해요. 이민사회기본법은 중구난방 흩어져 있는 정책을 하나로 모으고 다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자는 취지인데 한국어 교육만 해도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중복되다 보니 세금이 줄줄 새고 있어요.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18세 미만 아이들은 체류 자격에 상관없이 교육권, 건강권을 지켜주자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고 비준한 나라예요. 우리나라에는 3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 아동이 살고 있어요. 이주 노동자가 한국에 와서 아이를 낳으면 본국으로 보내야 해요. 그런데 본국에 아이를 맡길 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있다 해도 아이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없어요. 이주노동자들은 가족결합권이 없어요. 가족과 같이 못 와요. 그러니 아이를 사회 시스템에 등록할 수 없는 거죠. 국민이면 주민번호가 있고 외국인이면 외국인 번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런 기록이 없어요. 기록이 없으니 학교도 못 다니고 우리와 같이 살고 숨 쉬고 있지만 그림자 같은 존재일 뿐이죠.
Q 우리나라 이주민 정책의 가장 아쉬운 점이 뭔가요?
우리나라 이주민 정책은 조기 적응 위주예요. 그러다 보니 10년, 20년 지난 이주 여성을 위한 제도가 많이 부족해요. 이주 여성 대부분이 남편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면 남편은 퇴직했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고요. 심지어 이혼율도 높아요. 그래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 많은데 이런 분들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이주민 정책도 주기별 정책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정착한 지 10년 넘은 분들을 위해 비즈니스 레벨 한국어 강좌를 열어놨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고 해요. 왜 안 들어올까요. 이미 정착해서 먹고살기 바쁜데 강좌에 갈 수 있겠어요? 실제로 어떤 도움이 절실한지 정부가 나서서 물어보고 현장에 가봐야 해요.
Q 영입 인사지만 비례대표 경선을 치러야 한다면서요?
시민선거인단 5표가 당원 한 표에 해당해요.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저로서는 출발이 불리하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싸워봐야죠. 운명이면 되겠죠.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기도 하고 해야 더 단단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어쨌든 정의당에 오고 나서 제 페이스북 응원 댓글이 늘었어요. 너무 행복한 일이죠. 한국에 와서 이웃과 사회로부터 사랑받은 만큼 보답하고 싶어요.
내 인생의 영입 1호는 누구?
정의당에 들어오면서 제 자신감, 긍정의 힘을 모두 주고 싶은 친구를 만났어요. 요즘 지방을 돌면서 이주민분들 그리고 정의당 지역위원회분들과 회의를 자주 하는데, 전주에 갔을 때 열아홉밖에 안 된 고등학생 당원이 있더라고요. 이주 여성에 대한 얘기를 한참 하는데 "위원장님이 말씀하시는 이주 여성 중 한 분이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필리핀 여성"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지역 당원들이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계셨어요. 제가 당에 들어오니까 자신감을 얻어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된 거 같아요. 이런 친구들이 저에게는 너무너무 소중해요. 저로 인해 당당해지고 용기를 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