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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아이콘에서 영화 주연까지, 배정남을 만나다

배정남은 배정남스러웠다. 솔직했고 또 솔직했다.

On March 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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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다. 부족하다 싶으면 더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몸으로 부딪히고 몸으로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스코어'를 잘 안다. 배우로서 배정남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그래서 겸손하다. 표현법은 거칠지만 그는 현명한 사람이다.
과거를 잠깐 들춰보면, 2002년 모델로 데뷔한 배정남은 176.9cm의 다소 작은 신장으로 톱 모델이 됐다. 특유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트렌디한 패션 감각, 찰떡 소화력으로 당시 '배간지'라는 닉네임으로 남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의 스트리트 패션 컷이 옷 좀 입는다는 남성들에게 '패션 교본'과 같았던 시절이었다.

이후 그는 배우로 변신을 꾀했으나 긴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2012), <베를린>(2012), <마스터>(2016), <보안관>(2017)까지 단역이지만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을 통해 대중에게 '연기자'로 눈도장을 찍었다. 그사이 거칠지만 인간미 넘치는 입담으로 예능까지 접수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스크린에서 주연을 꿰찼다.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태주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온갖 동물의 말이 들리면서 펼쳐지는 사건을 그린 코미디 영화로, 배정남은 극 중 의욕 과다 국가정보국 요원 '만식' 역을 맡았다. 전작인 영화 <보안관>(2017)에서 호흡을 맞추고 각종 예능에서 돈독한 선후배 케미를 자랑한 이성민과 재회해 눈길을 끈다.

첫 주연작을 대하는 배정남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설레지만 두렵고, 민망하지만 기분이 끝내주게 좋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버스 광고판에 붙은 자신의 얼굴이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볼 때마다 감개무량하다는 것이다. 사투리가 난무했던 배정남과의 인터뷰는 그 진심이 전해진 인터뷰였다.

드디어 '주연'을 맡았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포스터에 제 얼굴이 나온 건 처음이에요.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쉬운 것도 많고 행복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요. 책임감도 많이 생겼어요. 버스에 붙어 있는 내 사진을 사람들이 찍어서 보내주는데, '우짜다 이래 됐지' 싶더라니까요.(웃음) 그러고 보면 모델부터 지금까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9년이 됐어요. 잘 버틴 것 같아요. 일이 안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계속 몸을 만들며 준비했어요. 그러다가 예능 <라디오스타> <무한도전>에 출연하면서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악착같이 버틴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배우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영화배우로서 이 작품은 제가 한 발걸음을 뗐다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주변 분들도 성장하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세요.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확신을 갖고 말씀드려요. 나아지지 않으면 그만둬야 합니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당분간은 제가 잘하는 것부터 해보려고요.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무리하게, 급하게 하면 오히려 체할 수 있잖아요. 감독님들이 "너는 너 자체가 캐릭터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응원을 많이 해주세요.

완성된 영화를 보고 처음엔 '멘붕'이 왔다고 들었어요.
기술 시사를 통해 처음 봤는데 분위기가 삭막한 거예요.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 영화인데, 웃기는 포인트에서 아무도 안 웃어서요. 땀이 뻘뻘 났죠. 나중에 물어보니 기술 시사는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다행인 건 일반 시사회에서는 관객들이 많이 웃으셨다고 해서 걱정을 덜었어요.

예능 출연과 감초 연기로 코믹 이미지가 강해요.
굳이 따지자면 저는 예능형 배우예요. 그래도 한 가지 이미지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사람들이 보는 대로 인정하는 게 편해요.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요. 더 하라면 할 수 있어요. 잘되면 잘될수록 단순 무식하게 살자는 생각입니다. 예능에 출연하면서 제가 뭘 하면 잘 웃어주시더라고요. 복이라고 생각해요.

20대 모델 시절에는 '간지'의 대명사였어요. 많은 남성의 우상이기도 했고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시절엔 '허세'와 '신비주의'가 있었어요. 사투리가 나올까봐 공식 석상에서 말도 거의 안 했어요. 한데 요즘엔 나를 내려놓고 지내니 너무 편안합니다. 주변 사람들도 더 편안해해요.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와주니 좋고, 멋진 것보다 동네 오빠, 형 같은 이미지가 더 좋아요. 곧 제 나이도 마흔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영화 <보안관>을 찍으면서 달라졌어요. 함께 촬영하고 홍보를 하는데, 형들이 "네 모습 그대로 하라"고 하더라고요. 형들이 본 저의 진짜 모습이 오히려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게 계기가 됐죠. 그때 그 말이 아니었으면 내려놓는 데 또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배정남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릴 때는 날카로웠어요. 폼만 잡고 앉아서 멋있게 보이고 싶었죠. 날을 세워서 강하게 보이려고 했어요. 내가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원래 없는 놈들이 약해 보이는 걸 싫어해요. 다 내려놓으니까 세상 편해요. 바닥을 쳐보니 멋있는 척하는 게 무의미한 거죠. 어릴 때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단단해졌어요. 그래서 전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머리 안 쓰는 사람요. 제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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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날카로웠어요. 폼만 잡고 앉아서 멋있게 보이고 싶었죠. 날을 세워서 강하게 보이려고 했어요.
내가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요. 원래 없는 놈들이 약해 보이는 걸 싫어해요. 다 내려놓으니까 세상 편합니다.

<보안관> 이후 이성민과 재회했는데, 어땠나요?
사실 <미스터 주>에 출연한 것도 '행님'의 추천으로 시작됐어요. 함께 영화를 찍어서 정말 영광이고 많이 배웠어요.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공부를 했죠. 그동안 그냥 서 있는 역할만 하다가 대사도 많고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니 이게 영화구나 싶더라고요. 얼마 전에 행님이 출연한 <남산의 부장들>의 시사회에 다녀왔는데, 우리 행님은 정말 대단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코미디와 정극을 다 잘하는 배우가 어디 흔합니까? 평생 못 따라가겠지만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배정남에게 이성민이란?
단순한 동료의 관계를 넘어선 느낌입니다. 잘 몰랐을 땐 그저 존경하는 배우였고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근데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모습에 더 빠졌어요. 형님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베풉니다. 예를 들면 팀마다 회식을 다 시켜주세요. "오늘은 제작부 남아~" "오늘은 미술팀~" 하면서 모든 스태프를 챙겨요.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합니까? 저도 잘될수록 형님 하는 것처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그런 모습이 참 멋집니다.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가 된 계기가 있나요?
<보안관> 때 행님이 "이렇게 해라"라고 조언해준 적이 있는데 제가 술에 취해 "싫은데요!"라고 대꾸한 적이 있어요. 그 순간 닭똥 같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어요.(웃음) 행님이 더 화내고 혼내실 줄 알았는데 "아이고~ 미안하다" 하시면서 토닥토닥해주셨어요. 그러니까 눈물이 더 터지더라고요. 사랑의 매를 드신 건데 철없이 '땡깡' 한번 부린 거예요. 그러면서 더 좋아하게 됐죠.

얼마 전 공개된 강동원의 첫 브이로그 <강동원&친구들, Viva L.A Vida>에 출연해 화제가 됐어요. 강동원도 배정남이 모시는 '행님' 중 한 명이죠?
당시에 스케줄이 엄청 바빴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강동원 행님이 부르니깐 갔어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거절했을지도 몰라요.(웃음) 행님이 평소에 예능을 안 해봐서 브이로그를 찍고 있긴 한데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제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열심히 했어요. 행님이 맛있는 걸 많이 사줬어요. 피곤했지만 행님이랑 맛있는 거 먹으니까 좋더라고요.

유독 '행님'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솔직해서 그럴 거예요. 그러고 보면 친하고, 편하고, 마음이 맞는 형들만 '행님'이라고 부릅니다. '행님'이라는 호칭은 정(情), 혹은 정겨움 같은 거예요. 불편하면 '선배' 혹은 '형님'이라고 불러요.(웃음)

반려견을 키운 뒤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전에는 감정 표현을 못 했어요. 근데 강아지를 키우면서 "사랑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더라고요. 성격이 부드러워졌어요. 혼자 있으면 외롭고 불안한데 강아지와 같이 있으면 따뜻해져요. 대화할 상대가 있잖아요. 그리고 부지런해졌어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시켜야 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제가 아빠가 되면 아이들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건 자신 있어요. 놀아주는 것도 자신 있고요. 몸에 배었어요.

배정남이 생각하는 '성공'은 뭔가요?
일이 안 끊기고 계속 있는 겁니다. 그 안에서 계속 성장해나가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제 기준에서는 성공입니다.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어쩌면 아들딸 낳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게 제 궁극적인 목표일 수도 있어요. 몇 년 안에는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사실 스케줄을 끝내고 집에 오면 공허해요. 제가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빨리 장가가라고 해요.

본인 얼굴이 마음이 드나요?
저도 과거에는 잠깐 꽃미남 소리를 들었을 때가 있어요. 근데 고생을 많이 해서 어느 순간 얼굴이 확 가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살고 있어요. 따로 관리도 안 합니다. 영화 찍을 때 감독님들이 "니는 얼굴 근육을 다 쓰면서 연기하네" 하시며 좋아해주세요. 주사 맞고 인위적으로 젊음을 유지하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또 모르는 일입니다. 이러다가 50대 때 동안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요.(웃음)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는데, 살아오면서 삶의 변화를 겪은 시기가 언제인가요?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쳤을 때. 안 다쳤으면 아마 계속 거기 있었을 겁니다. 다쳐서 옷가게에서 일하게 된 거고 모델로도 데뷔하게 됐어요. 그리고 스물네다섯 살 때 모델로서도 잘나갔고 대형 기획사에서 데려가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드라마 주인공도 땄는데 엎어져서 큰 좌절감을 겪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 드라마가 잘됐으면 그 무게감을 못 이겼을 거 같기도 해요.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안으면 제 잘난 맛에 남은 인생을 살았겠죠. 그때 이후로 조급함이 줄어들었어요. 천천히 길게 가자 싶어요.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바람이 있나요?
오래 하고 싶어요. 해보고 나니 더 욕심이 생깁니다. 찾아만 준다면 하는 데까지 해볼 겁니다. 한번 지켜봐주세요.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이충렬, 지다영
2020년 03월호
2020년 03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이충렬, 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