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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톱 모델에서 인플루언서로, 오지영의 요즘

1세대 톱 모델 오지영이 오랜 시간 기록해온 에세이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On March 26, 2020


1994년 모델 대회에 출전해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오지영은 국내 모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일이 거의 없던 1990년대에 파리, 밀라노, 런던을 누비던 1세대 톱 모델이다. 각종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하고 왕가위 감독에게 캐스팅돼 배우로도 활동했던 그녀는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돌연 싱가포르로 떠났다. 이후 이어진 평범하고도 소소한 엄마로서의 삶. 채식주의자이자 요가 강사로 사는 그녀의 리얼 라이프는 SNS를 통해 꾸준히 공유됐고 '웰에이징'의 아이콘이자 좋은 영향력을 선사하는 인플루언서로 자리 잡으며 이를 담은 에세이 <소소하게 찬란하게>(몽스북)까지 펴냈다. 찬란한 삶은 화려한 그 시절이 아니라 소소하게 사는 모든 순간이었다고 말하는 그녀.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오지영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잘 지냈어요?
저는 현재 가족들과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어요. 남편을 따라 정착한 싱가포르에 거주한 지 벌써 10년도 넘었고요. 전 엄마로, 아내로 또 인간 오지영으로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오랜 시간 주부로만 살다 제 에세이를 들고 이렇게 찾아뵈니 감회가 새롭네요. 내일 다시 싱가포르에 있는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지만, 이번 서울 방문은 제게 참 특별했어요. 다양한 인터뷰도 하고 '북토크'란 이름으로 팬들을 만나는 자리도 마련됐고요. 오랫동안 절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분들과,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최근 에세이를 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제 기분이나 일상을 기록하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평소에도 일기처럼 끄적이는 편이죠. 그동안 SNS를 통해 종종 글을 올려왔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 제 글들을 책으로 출판하게 됐어요. 보통 저를 평범함과 동떨어진, 화려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시잖아요. 사실 저도 알고 보면 평범한 삶을 사는 여자일 뿐이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위로해드릴 수 있는 건 위로해드리고, 제가 인생을 살며 배웠던 것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또 제가 꿈꾸는 희망이나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많이 담았고요. 꽤 오랜 시간 살아온 싱가포르의 생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했죠.

싱가포르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처음에는 기후에 적응하기가 많이 어려웠어요.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습하게 느껴지는 열기가 너무 뜨겁더라고요. 남편을 따라 간 곳이니 적응해야 했지만, 날씨만 놓고 보자면 제 마음에 쏙 드는 나라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제는 싱가포르의 매력을 많이 알게 됐달까요. 기후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을 보는 재미가 생겼고, 각양각색의 인종과 어울려 아이들이 좀 더 넓은 견해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지닐 수 있어 좋아요. 아이들은 싱가포르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어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피부색과 다른 문화를 학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마인드도 가지게 됐죠. 그런 것은 책으로 습득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아이들이 정말 예쁘던데요(그녀는 10살 딸 줄리, 8살 아들 이안이를 키우고 있다)?
예쁘게 잘 자라줬어요. 저도 엄마 역할은 처음이라 많이 서툴고 부족했을 텐데 아이들이 제 방식에 잘 따라줬고요. 전 아이들에게 웬만하면 강압적인 환경을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그저 친구처럼, 인생의 선배처럼 제가 살면서 배운 인생의 교훈을 잔잔하게 가르쳐주고 싶어요. 특히 임신했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줬어요. "사랑해"라는 말이 어색해지지 않게 자주자주 들려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저에게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사랑해"라고 외치고 있죠.(웃음)

엄마가 돼보니 어떤가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받는 사랑만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 사랑을 주다 보니 '아낌없이 주는 사랑도 참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모든 걸 내어주는데도 제 마음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지고 있으니까요. 그게 엄마가 아이에게 받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아요. 물론 자식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죠. 힘들 때도 있고, 슬플 때도 많고요. 그렇지만 그만큼 또 웃을 일이 생기잖아요. 오히려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아졌어요.

두려움은 없었나요?
전 사실 결혼 생각도 없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밤마다 절규하듯 슬픔을 견디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겨우겨우 이겨내고 있는데, 엄마가 된 언니들은 아이들을 보며 웃고 또 슬픔을 극복하고 있더라고요(그녀는 4자매 중 막내딸이다). 그때 제게 가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남편에게 결혼에 대해 먼저 이야길 꺼냈죠. 결혼식이나 혼인신고를 하자는 게 아니라 가족이 갖고 싶다고요. 지금은 제가 지켜야 할, 그리고 제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족이 생겨서 행복해요. 엄마가 된다는 두려움보다 떠나간 가족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가족의 등장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프랑스인 남편 보리스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제가 사실 같이 살기 쉬운 여자는 아니잖아요.(웃음) 그럼에도 이토록 잘 맞춰 살아가는 걸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거겠죠. 보리스는 여자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편이에요.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헤아려주려고 노력하죠. 또 감정을 표현하는 데 솔직하고 적극적이에요. 애정 표현도 자주 하고 섭섭함이나 속상함을 마음에 꽁꽁 숨겨두지 않아서 좋아요. 무엇보다 저와 잘 통하는 사람이라 편안해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죠. 그래서 주말 브런치를 먹을 때면 한참을 식탁에 앉아 대화하며 낮 시간을 다 보내버리곤 해요. 그 사람과 얘기하면 어떤 주제든 끊김이 없고 막힘이 없거든요.

10년 후요?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그때까지 누군가를 잃는 슬픔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많은 걸 이루고 얻기보다 슬픔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남편하고도 자주 얘기해요. 둘이 건강하게 늙어서 지금처럼 여행 다니며 쉴 새 없이 대화 나누며 살자고요.

예전의 화려한 삶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제 삶은 찬란하고 화려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투성이였어요. 사랑하는 존재를 연이어 떠나보내고, 잔잔하고 고요한 삶에 대한 동경이 생겼죠. 한곳에 정착해 가족과 살 부비고 건강한 음식을 나누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어요. 그때 남편을 따라 싱가포르로 훌쩍 떠났고요. 신선한 재료를 찾아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고 매일 저녁 아이들과 남편의 웃음을 보고 있는 요즘이 좋아요. 기회가 오면 늘 도전하려는 마음을 열어두고 있지만, 지난 결정들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한다거나 미련이 남진 않아요.

SNS 속 요가에 푹 빠진 모습도 인상적이에요.
요가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고 말해요. 나를 떠나 나의 몸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죠. 그래서 명상을 할 때 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요가를 하고 나면 에너지를 뺏기기보다 되레 에너지를 얻게 되죠. 신체뿐만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 남을 생각하는 마음, 주변의 환경들까지 어우르는 개념이 바로 요가예요. 제가 요가 선생님이 되고자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저는 "내가 요가를 찾은 것이 아니라 요가가 나를 찾아 초대해준 것"이라 말했어요. 인생의 몇 안 되는 행운 중에 하나라고 할 만큼 제 인생은 요가를 전환점으로 많이 달라졌거든요.

그래서 환경에도 관심이 많군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잖아요. 환경을 더 아끼고 사랑하지 못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를 보면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최대한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머그잔을 들고 다니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음식에 랩을 사용하지 않는 일들요.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채식도 실천 중이에요.
채식 생활을 한 지는 2년 정도 됐어요. 그전에도 채식을 몇 번 시도하긴 했지만 식구들의 반대와 약한 의지력 때문에 중단했다가 당시의 가벼웠던 몸 상태가 그리워 다시 시작하게 됐죠. 제가 하는 채식은 육류와 생선, 우유, 달걀을 모두 먹지 않는 완전 채식이에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제 몸을 위해 시작한 채식이 동물과 지구의 환경에도 좋다니 더욱 의지가 강해졌고요. 그렇다고 해서 육식하는 사람들을 비방하진 않아요. 서로의 식습관을 존중하며 함께 생활하는 지혜를 갖고 싶거든요. 가족들에게도 그래요. 채식 위주의 식단을 권하고는 있지만 지나치게 강요하지는 않아요. 대신 채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고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이죠.

트렌디한 인플루언서의 모든 자격을 갖춘 느낌이에요.
저는 욕심이 많아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탈이죠.(웃음) 특히 SNS에서 사람들이 요청하는 것을 하나하나 다 들어드리고 싶어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나 생리컵 사용 방법,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 팁 등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에 답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런데 싱가포르에선 저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그 모든 걸 하기는 역부족이더라고요. 그래도 늘 생각은 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소통하며 좋은 영향력을 많이 전하고 싶어서요.

댓글도 다 읽어보나 봐요.
빠짐없이 다 봐요.(웃음) 제 SNS엔 악플이 없어요. 다들 마음씨 고운 분들만 오시나 봐요. 항상 응원하고 격려하고 좋은 말씀만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알려드린 요리법으로 맛있게 만들어 먹었다는 후기도 종종 올라오고, 제가 다닌 여행지나 숙박 정보도 궁금해하셔서 최대한 정보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팔로어 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다양한 분이 관심을 주시는 만큼 SNS를 통해서나마 환경이나 자연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내려고요. 저를 통해 단 한 분이라도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영향인 거잖아요.

몸매도 여전히 완벽해 보여요.
생활 자체를 건강하게 하다 보니 크게 살이 찌진 않는 것 같아요. 임신했을 때 20kg 넘게 찐 적도 있는데, 아기 낳고 수유를 하니 한 달 만에 다시 임신 전 체중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사실 제가 살이 잘 찌는 체질이거든요. 먹으면 바로바로 체중이 느는 편이에요. 그래서 살이 붙으면 조심하려고 노력해요. 살이 찐다는 게 건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부지런히 움직이고, 운동하고, 과식하지 않으려고 하죠.

나이 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나요?
당연히 있죠. 많아요.(웃음) 나이 드는 게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오늘도 거울을 보니 주름이 가득하고, 다크서클도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나이 드는 걸 감추려고 애써 가리고 노력하는 건 또 싫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요. 어려 보이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하고 스트레스 받으니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나이 드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시간의 흐름에 여유로운 자세를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50대, 60대의 오지영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 같은걸요.
외면보다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그때까지 누군가를 잃는 슬픔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많은 걸 이루고 얻기보다 슬픔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어요. 남편하고도 자주 얘기해요. 둘이 건강하게 늙어서 지금처럼 여행 다니며 쉴 새 없이 대화 나누며 살자고요. 소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그런 거니까. 꼭 그렇게 됐음 좋겠어요.

주근깨가 들여다보일 만큼 옅은 화장, 귀 뒤로 야무지게 넘긴 쇼트커트, 여유롭게 지어 보이는 자연스러운 미소. 화려한 런웨이 위가 아니라도 모델 오지영이 늘 빛나는 이유는 여기 있다. '웰에이징(Wellaging)', 멋지게 나이 든다는 말의 의미를 몸소 실천 중인 그녀의 삶의 자세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CREDIT INFO
에디터
김두리
사진
김정선
장소
안다즈 서울 강남
2020년 03월호
2020년 03월호
에디터
김두리
사진
김정선
장소
안다즈 서울 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