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산 게임 광고를 둘러싼 논란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이들이 즐겨 보는 유튜브와 SNS에 여성을 성 상품화한 게임의 이미지와 문구가 버젓이 게재되고 있기 때문. 이러한 '저질 광고'는 연령대를 막론하고 플랫폼의 곳곳에 등장해 우리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시작은 2018년 등장한 게임 <왕이 되는 자>였다. 중국 기업에서 제작해 국내로 수입된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궁정 권력 쟁탈전을 통해 고대 임금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금전, 명예, 권력을 쟁취한다는 스토리를 담았다. 그중 "문객과 후궁 미녀 도움을 받아 천하를 통일해보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실제로 플레이어는 말단 관직으로 시작해 왕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처첩을 둘 수 있다. 처첩의 수를 늘리려면 유료 결제를 해야 하는데 처첩이 총애를 잃을 경우 내칠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자녀를 생산할 수도 있다.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받은 <왕이 되는 자>는 출시 첫해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7위를 달성했다. 인기 게임이라 꼽히는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34위, 넥슨의 <오버히트>가 12위, <피파 온라인>이 16위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아재 유저들을 타깃으로 대량의 '과금러'를 양산해내는 이 게임이 이토록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데는 8할이 '광고 덕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말초적이고 선정성 높은 영상이 무자비하게 재생되며 어린아이와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 게임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청나라 시절에 대한 고증 오류는 둘째로 치더라도, 여성을 성 상품화해 잘못된 성 인식과 성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빈축을 사고 있다. '헐벗은' 여성이 등장해 자신의 속옷 색깔을 맞혀보라고 한다거나, 나이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여성들이 경매되는 광고 장면은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태어난 아이가 바보라는 이유로 아내를 감옥에 가두고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것은 물론 궁녀들을 섹시 죄로 감옥에 가둬 고문하는 장면은 선정성을 넘어 엽기적일 정도. 이에 대해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는 결국 해당 게임에 대한 광고와 선전물의 차단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삭제된 이 광고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기타 SNS를 통해 보란 듯이 유통되고 있을 뿐 아니라, 후속편 격인 광고들이 연이어 제작되고 있다.
일본 AV 배우가 왜 거기서 나와?
중국발 모바일 게임 <왕비의 맛>은 아이돌 출신이자 일본의 유명 AV 모델인 미카미 유아를 모델로 해 논란을 빚었다. 광고 문구 역시 "미카미 유아의 맛을 느껴봐라!"로 선정성이 극에 달한 모양새다. <왕비의 맛>은 청소년 이용 불가인 <왕이 되는 자>와 달리 15세 이상 이용 가능한 게임으로, 등급을 고려하면 광고의 수위가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AV 모델 외에도 게임 캐릭터를 활용해 딸기 맛, 복숭아 맛, 우유 맛 등 여성을 맛에 빗댄 표현이 문제가 됐다. 글래머러스한 여성 캐릭터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자극적인 사진과 문구를 연달아 게재해 광고를 해온 것이다. 지난 2월 11일, 게임위는 '왕비의 맛' 광고를 차단하라는 시정권고를 내렸다. 관계자는 "<왕비의 맛> 광고에서 5건의 광고 위반 사례가 적발됐고 지난주 시정 권고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며 "이번 주 중 각 플랫폼에서 광고가 모두 삭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저질 광고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근절할 대책 마련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의 모든 게임은 PC, 모바일과 같은 플랫폼에 상관없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 제34조의 적용을 받는데 선정성을 이유로 제한을 가할 근거는 마땅치 않다. 게임법 제34조에 따르면 △등급을 받은 게임물의 내용과 다른 내용일 경우 △등급 분류를 받은 게임물의 등급과 다른 등급을 표시할 경우 △게임물 내용 정보를 다르게 표시할 경우 △게임물 내용 정보 외 사행심을 조장하는 내용을 포함할 경우 등을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심의 자체가 사후심의이기 때문에 선정적 광고 게재 자체를 막기 어렵고 게임의 분류 등급에 맞는 광고는 제재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왕이 되는 자> 역시 선정적인 광고에 대해 처벌할 근거가 없어 허위 광고에 대한 시정 조치를 했을 뿐이다. 또한 관련 게임사가 국내에 지사를 두지 않아 이마저도 관리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선정적 광고를 무차별 노출하는 게임 회사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는 게임법을 어겨봤자 과태료가 1,000만원 이하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구글 스토어의 상위 랭크 게임들이 월평균 30억~5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약한 처분이 아닐 수 없다. 게임위도 "일단 유저만 유치하면 된다는 게임사는 광고를 제재해도 곧바로 다른 광고를 송출하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밝히며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었다.
야한 광고 = 흥행 공식
저질스러운 광고가 하나의 홍보 효과처럼 주목받으며 <왕이 되는 자>를 모방한 아류작이 쏟아지고 있다. 자극적인 광고가 중국발 게임업계의 흥행 공식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리치리치> <궁정계> <걸스 레볼루션> <내가 왕이라면> 등 중국에서 넘어온 모바일 게임이 대부분 선정적인 'B급 감성'의 광고를 노출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은 <왕이 되는 자>의 광고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지난 2018년 6월, 게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 광고 사전심의가 가능해져 지나치게 선정적인 광고는 사전에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발 묶여 1년 6개월째 계류 중이다.
한편에선 게임 광고 사전심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미 국내 업체들은 법과 도덕성을 준수하며 선정적 광고를 만들지 않는데, 굳이 사전심의제를 도입해 불필요한 형식과 절차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주장이다. 다수의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중국의 무분별한 게임 광고가 다시 '게임'에 대한 인식과 여론을 악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특히 올해는 규제 강화와 질병 코드 도입 논란으로 게임 산업에 중대한 시기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려놓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대처와 대안이 필요할 때다.
착하디착한 '혜자 게임 광고'
풍부한 영상미, 익살스러운 스토리 전개, 반전미 넘치는 모델을 품은 '착한' 광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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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클래식
카카오게임즈의 <테라클래식>은 '몰겜하다 걸렸을 때 완벽 대처법'이라는 주제로, 흥미로운 스토리를 광고로 풀어냈다. 신인 배우 이원준과 원로 배우 이순재를 모델로 기용,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유쾌한 웃음과 공감을 선사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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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니지2M
"택진이 형 밤샜어요? <리니지2M> 언제 나와요?" 2019년 게임 광고계를 섭렵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M>. 앳된 목소리의 한 아이가 묻는 이 질문에 모든 게임 유저가 공감했다. 단순한 이 광고는 화려한 연출이나 유명 출연자 없이도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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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롤스타즈
이병헌의 '병맛 패러디'로도 화제를 모은 슈퍼셀의 <브롤스타즈> 광고. 영화 <내부자들>의 조우진과 <달콤한 인생>의 김영철 등이 카메오로 등장해 이병헌과의 케미를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했다. 막바지에 깜짝 등장하는 이순재, 신구, 백일섭도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