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가 메그시트로 대체됐다”
지난 몇 년간 브렉시트 이슈가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면, 2020년에는 메그시트, 즉 메건 마클의 독립 선언이 더 큰 뉴스로 등장했다. 메건 마클은 찰스 왕세자의 차남인 해리 왕자의 왕자비로 결혼 당시부터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메건 마클은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으로 해리 왕자와 결혼 당시 두 살 연상에 이혼 이력까지 있는 상태였다.
혼혈 외국인이 영국 왕실에 들어오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인 데다 계속적인 분쟁을 일으키던 친아버지가 결국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가족 간의 불화가 언론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 바 있다. 영국 보수 신문들은 결혼 이후에도 마클 왕자비에 대해 별로 우호적이지 않은 기사를 쭉 이어왔는데, 최근에 마클 왕자비가 아들 ‘아치’를 출산한 뒤 로열 베이비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가뜩이나 적대적인 미디어에 더욱 비호감 인사로 거듭난 것이다. 대다수 영국 국민은 비판적인 분위기라고 전해지는 가운데 미디어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삶에 묵묵히 집중하는 모습을 응원한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다.
미들턴과 마클의 확연히 다른 스타일
전통적인 왕실 스타일보다는 개성 있는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메건 마클의 스타일은 웨딩드레스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2011년 결혼한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은 알렉산더 맥퀸의 사라 버튼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었다. 이는 어깨와 긴 소매에 고풍스러운 레이스가 들어간 아이보리색 전통 드레스로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 왕자와 결혼할 때 입었던 드레스와 흡사했다.
반면 해리 왕자와 결혼 당시 마클은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디자인한 지방시의 드레스를 입었다. <뉴욕 타임스>는 마클의 웨딩드레스와 관련해 “동화 속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마클이라는 한 여성을 당당하게 드러내 보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단순하고 모던했다. 마클이 직접 찾아가 의뢰했다고 하는 드레스만 봐도 그녀의 패션 철학이 왕실의 스타일과는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메그시트 이후 무엇이 달라지나?
논란이야 어떻든 최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긴급 가족 대책 회의를 거쳐 해리 부부의 독립을 허락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며, 이로써 해리 왕자 부부는 올봄부터 왕실 직책을 공식적으로 내려놓게 됐다. 우선 우리말로 하면 ‘전하’에 해당되는 ‘HRH’라는 왕실 존칭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며 왕실의 재정 지원도 중단된다. 직계 가족을 의미하는 시니어 왕실 가족 구성원에서도 한발 물러남과 동시에 해리 왕자 가족은 공식적으로 여왕을 대리할 수 없게 된다. 또 해리 왕자는 공식적으로 여왕의 군대인 영국군의 장교 직위에서도 물러난다. 하지만 왕자 호칭은 계속 사용하고 왕위 계승 6위 서열도 그대로 유지되며 공식적 지위의 상실과는 별개로 왕실 가족으로서의 사적인 후원과 결속은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즉 해리 왕자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서섹스 공작 작위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전하라는 말이 빠지고 단순하게 공작, 공작부인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왕자 부부의 새 브랜드 서섹스 로열
해리 왕자와 마클 부부는 메그시트라 불리는 1월 8일 독립 선언에 앞서 자신들의 공식 호칭에 들어가는 서섹스 로열의 브랜드 등록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들은 이미 지난해 여름 후드 티셔츠나 양말과 같은 의류를 비롯해 광고 캠페인이나 교육, 자선 기금에 이르기까지 수백 가지 아이템에 대해 서섹스 로열 재단의 영국 상표권을 확보했음은 물론, 나아가 최근에는 유럽연합과 미국, 캐나다, 호주에 적용되는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다고 한다. 해리 왕자 부부는 개인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으며 티셔츠, 양말, 카드, 연필 등 수백 개의 상품에 서섹스 로열 상표권을 등록한 상태다. 미국 배우 출신인 마클은 디즈니와 이미 목소리 연기를 계약했다고 알려졌다.
메그시트에 따른 경제적 파장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컨설팅업체 ‘브랜드 파이낸스’는 로열패밀리가 각종 활동으로 창출하는 경제 효과가 영국 시장에서만 20억 파운드(약 2조 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2018년 메건 마클과 해리 왕자의 결혼식만으로 영국 경제는 10억 파운드(약 1조 5,000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되며, 이것만으로도 이들의 이탈은 영국 경제에 수십억 파운드의 경제적 손실을 안겨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패션 매거진 <그라치아>의 디렉터인 케냐 헌트는 메건 마클이 미국인이라는 점, SNS상의 영향력 등을 볼 때 여왕의 승인만 있다면 대중에게 더 친숙한 연예인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메그시트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겠지만 중요한 건 여전히 그녀의 패션에 열광하는 팬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왕위를 내려놓고 평생을 함께했던 윈저 공과 심슨 부인처럼 왕실에서 벗어나 오히려 패션과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던 전례가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해 화답하듯 최근 그녀의 패션은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우아함과 기품을 잃으면 안 되는 왕실 룩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세련된 여배우 룩에 오히려 더 가깝다. 특히 코트를 입지 않고 어깨 위에 걸치는 등 이전과는 사뭇 다른 차림을 보여준다.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영향력
왕실의 일원이 된 이후 메건 마클의 패션은 늘 화제를 모았다. 그녀는 클래식한 스타일링으로 격식을 갖추면서도 배우 출신답게 색상이나 장식 등에 변화를 주며 자유롭고 세련된 스타일을 연출했다. 기품 넘치는 스타일에는 뉴트럴 톤에 큰 라펠, 보디를 따라 흐르듯이 떨어지는 실루엣의 코트로 우아하면서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연출하는가 하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에는 비대칭 디자인 코트나 버건디 컬러 바이커 재킷으로 시크하면서 자유분방한 왕실 룩을 보여줬다.
그녀가 선택하는 모든 옷은 지적이고, 심플하면서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개인 스타일리스트 없이 본인이 직접 코디를 한다고 전해진다. 이는 손윗동서인 케이트 미들턴의 서민적이면서 친근한 패션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로, 공식적으로 좋은 관계라고 밝힌 이후에도 둘 사이의 불화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까다롭고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 때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의상비로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출해 비판도 만만치 않았으며, 일주일 휴가에 무려 1억 8천만원짜리 리조트를 예약해 영국 타블로이드의 타깃이 되기도 했던 그녀. 그럼에도 그녀의 의상은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왕실의 그 누구보다 압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2019년 영국 왕실의 패셔니스타로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되기도 한 이름이 메건 마클인 것도 이를 증명한다. 직접 착용한 패션 아이템이 몇 분 안에 매진되는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그녀가 계속 패션 아이콘으로서 사랑받으며 서섹스 로열 브랜드를 성공시킬지의 여부는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갈릴 것이다.
장차 캐나다에 터를 잡고 영국을 오가며 활동하겠다는 해리 왕자 부부가 메그시트로 인해 박힌 미운털을 제거하고 브랜드를 성공시킬 수 있다면 영국 경제에 손해보다는 득이 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에서의 파워가 막강해지는 요즘, 돌아선 민심과 언론의 냉담함을 어떻게 우호적으로 바꿀지, 그 과정에서 파워 인플루언서인 이들 부부가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