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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3년 차 인플루언서, 이찬재 · 안경자 부부의 노후 이야기

On February 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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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YEARS
"예측하기 힘든 것이 삶입니다"
이찬재·안경자 부부

1942년생 일흔아홉 동갑인 이찬재·안경자 부부. 1963년 대학교 3학년 때 만나 1967년에 결혼했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며 비슷한 취향을 가진 좋은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두 사람은 2020년 현재 53년째 부부로 살고 있다.

KEYWORD 1 인연

두 분이 처음 어떻게 만나셨는지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이찬재(이하 '이') 우리는 흔히 말하는 CC(캠퍼스 커플)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국어교육과에서 시화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동아리 회장이 저를 찾아왔어요. 학생들이 쓴 시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거였죠. 재미있겠다 싶어 승낙을 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시에 내가 그림을 그려주면서 처음 만난 거죠.

안경자(이하 '안') 당시 내가 쓴 시가 '사과'라는 시였는데 거기에 남편이 추상화를 그렸어요. 그 자리에서 쓱쓱 그렸는데 색감이나 느낌이 정말 딱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주 흡족했죠. 시화전이 끝나고 강냉이로 쫑파티를 한 후 나는 신당동, 남편은 창신동이라 같이 집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 만남이 반복되면서 사범대 커플로 알려졌죠. 당시 남편은 아직 학생 신분으로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군대도 갔다와야 했고. 그래서 감히 누구에게 사귀자고 할 마음조차 없었대요. 그때 제가 나타난 거죠. 1963년도에 만나서 1965년에 대학을 졸업했고, 1967년에 결혼을 했어요.

연애결혼이 흔하지 않던 시절인데, 막상 결혼을 하니 어떠셨나요?
사실 우리 집에서 반대를 많이 했어요. 아버지는 남편을 따로 만나 서로 시간을 좀 갖고 떨어져 있으라고 이야기도 하셨죠. 엄마가 하루는 궁합을 보고 오셔서는 "말띠 동갑은 괜찮다더라" 하시더군요. 결혼 전에는 매일 만났어요. 매일 만난다는 건 매일 헤어진다는 이야기도 되잖아요. 매일 헤어지는 게 싫어서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은 부엌이 있고 한쪽에 연탄아궁이가 있는 허름한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이제는 헤어지지 않아도 되니까 마냥 행복했습니다. '결혼은 이렇게 마음 놓고 연애하라고 만들어놓은 시스템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결혼은 사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필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결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셨으니 싸울 일도 없었겠네요.

아니죠. 싸울 일은 많죠. 동갑이라 작은 것도 서로 양보 안 하고 티격태격했죠. 그래도 우리는 취향이 비슷해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뭐 그런 걸로 싸우지는 않아요. 처음에는 남녀가 좋아서 만나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부부는 남녀 사이라기보다는 친구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처음부터 취향이나 가치관 등이 비슷하면 좋은 점이 많습니다. 원래 친구라는 게 성향이 비슷해야 이야깃거리도 풍부하고 잘 통하죠.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처음부터 잘 맞았어요.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어요. 모든 사람들이 가난하던 때라 가난도 불편하지 않았고요. 우리 둘이 너무 좋으니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 만큼요. 애가 생기면 이런 생활에 큰 변화가 생길 텐데, 그게 싫었던 거죠. 그런 이유로 결혼 4년 만인 1971년에 첫째 아들을 낳았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4년 동안 연애를 실컷 한 셈이죠.

KEYWORD 2 노후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브라질 이민을 떠나셨죠?
친정아버지가 먼저 이민을 가셨고 저희를 부른 거죠. 다행히 남편도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 쉽게 승낙했어요. 당시 우리가 40살이었는데 한국에서 태어나 40년 살았으니 이제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도 흥미롭겠다고 했죠. 당시 한국에서 가져간 돈이 많지도 않았어요. 브라질 한인 이민 역사의 주된 업종은 패션이에요. 저희 부부도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죠.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살던 시기였어요. 일이 끝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슈퍼마켓에 가서 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아 장을 보고, 브라질 사람들처럼 카니발도 즐기고, 바닷가로 여행도 많이 다니고.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여유로운 삶이었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건 노후 계획이었나요?

사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브라질 교포 사회는 노후 준비라는 말이 없었어요. 한인 교포 사회에선 여자들도 다 나이가 들어서까지 일을 해요.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실 나도 내 생활이 우선이니까, 손자가 생겨도 봐주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손자를 돌보면서도 갈등이 많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막상 손자가 태어나고 보니 너무 예쁘더라고요. 딸이 시댁에서 불러 한국으로 급하게 들어왔는데, 우리도 손자들이 보고 싶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겁니다.

브라질을 떠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면 삶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36년간의 브라질 생활을 정리하고 그렇게 2017년에 한국으로 왔습니다.

KEYWORD 3 동반자

사실 두 분은 SNS에서 유명 스타죠.
인스타그램 계정(@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5년 4월부터 시작했는데 뉴욕에 사는 아들이 저한테 그림을 그리라고 권했어요. 아빠가 그림을 잘 그렸던 옛 기억을 떠올린 거예요.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했죠.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을 전혀 몰라서 아내가 먼저 배우고 나도 배웠어요. 한국으로 떠난 손자들을 그리워하던 내 적적함을 달래주려고 아들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죠. 말 그대로 손자들을 위한 그림과 글입니다. 손자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전하는 거죠. 영국 BBC 방송에도 소개됐고, 40만 가까운 팔로어가 함께 공감해주고 좋게 봐줍니다. 덕분에 여기저기 강연도 하고, 이걸 통해 수입이 조금씩 생겼어요. 친구들은 제2의 인생을 산다고 축하도 많이 해줍니다.

가족의 협업으로 이뤄집니다. 남편이 뭘 그릴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해 남편이 그림을 그리면 나는 글을 씁니다. 그걸 가족 메신저에 올리면 미국 뉴욕에 있는 아들과 부천에 사는 딸이 보고 그림과 글에 대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과정 끝에 내용이 완전히 결정되면 내가 쓴 글을 아들은 영어로 번역을 하고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거죠. 사실 뉴욕에서 아들이 전화를 하면 얼른 나를 바꿔줄 정도로 남편이 좀 무뚝뚝한 아빠였는데 이런 작업을 몇 년 하다 보니까 아빠와 아들, 딸 사이에 대화가 많아졌어요. 네 식구가 새롭게 소통하는 것이 바로 제2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찬재·안경자 부부는 지금도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이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만나는 모임이 아직도 낯설다. 부부 중심, 가족 중심의 사회였던 브라질에서는 대부분의 모임이 부부 동반이기 때문. 혼자 외출한 남편이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 도착할 때쯤이면 아내는 미리 마중을 나가 함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짧은 산책길이 행복하다는 결혼 53년 차 부부. 역시 인연은 따로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김두리, 박현구
사진
이대원, 김정선
스타일링
전금실, 강지연
2020년 02월호
2020년 02월호
에디터
이예지, 김두리, 박현구
사진
이대원, 김정선
스타일링
전금실, 강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