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슈가맨'의 등장이다. 시작은 일명 '온라인 탑골공원'이라 불리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19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유튜브 스트리밍 채널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양준일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약 30년 전 영상임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그의 패션, 음악, 무대, 스타일링에 젊은 층의 관심이 집중된 것. '빅뱅' 지드래곤을 쏙 빼닮은 외모에 '탑골 GD'라고도 불리며 신비에 싸인 그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졌다. 요즘 선호하는 '훈남'의 모든 것을 갖춘 실력파 가수가 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는지 의아해할 때쯤 양준일이 JTBC <슈가맨 3>에 모습을 드러냈다. 5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소년 같은 마스크와 순수한 마인드, 최신 가요보다 더 세련된 음악에 많은 시청자가 열광했다. 방송 이후 양준일의 과거 활동뿐 아니라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았고 22세에 데뷔했던 청년은 그렇게 51세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가 사랑받는 이유
1969년생 재미 교포 출신 양준일은 1991년 '리베카'라는 노래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파격적인 음악과 패션을 선보이며 가요계에 신선한 파란을 일으켰다. '가나다라마바사' 'Dance with me 아가씨' 등 '뉴 잭 스윙'이라는 생소한 장르에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난해하고 기괴한 패션까지. '괴짜'로 낙인찍힐 만큼 국내 정서와는 동떨어진 그의 스타일이 당시 가요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중적인 사랑은 얻지 못했다. 게다가 '리베카'의 표절 시비와 비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정상적이 활동이 힘들었고, 10년 뒤 'V2'라는 그룹을 결성해 발매한 '판타지'를 끝으로 가요계를 떠나 미국에서 지냈다.
2020년, 그의 음악을 들은 1020세대는 양준일을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고 평한다. 그들은 마이클잭슨의 'Dangerous', 'EXO'의 '으르렁'과 같은 뉴 잭 스윙 장르가 어떻게 1990년대 초반에 발표될 수 있었는지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다. 30년 만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뛰어난 그의 '음악성' 덕분인 것. 거기에 그가 가수 활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스토리가 더해져 화제를 모았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당시 방송가에서 그의 등장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9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2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온 양준일은 한국말이 서툴렀고, 한국적인 정서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당시 여론의 반감을 샀던 '오렌지족' 같은 교포 청년에 대중은 불편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단지 '외국물 좀 먹은' 젊은 가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한국 사회가 해외 교포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영어 가사에 대한 불편함을 이겨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의 가치를 알아보기까지 약 30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대중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양준일은 늘 한국이 그리웠다고 말한다. JTBC <슈가맨 3> 이후 이례적으로 뉴스 프로그램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그는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너무 기뻐 박수를 쳤다"며 "미국에 있을 땐 하루하루가 재방송 같은 느낌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하루가 안 끝나고 계속 가는 느낌이다. 이게 꿈인가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또 그는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며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았다. 머릿속에 든 쓰레기를 많이 버려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나의 과거가 나의 미래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 버려야 했다. 내 자신에 대한 편견을 버리려는 노력을 생활화해야 했다"고 털어놓으며 "그래도 현실이니까 슬프지 않았다. 투명인간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고, 내가 왜 존재하는지 모를 때가 많았지만 이런 나를 받아주는 대한민국의 따뜻함을 느꼈다"고 곱씹었다. 음악에 모든 걸 바쳤지만 돌아오는 건 멸시와 조롱뿐이었던 30년 전 대한민국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모습에 대중은 열렬한 지지와 팬덤으로 그를 응원했다.
자서전 발간, 피지컬 앨범 발매
그가 밝힌 앞으로의 계획은 다양하다. 우선 2월 중 직접 집필한 책이 발간될 예정이다. 자서전에는 그의 인생과 공백기의 삶은 물론 미공개 사진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양준일은 팬미팅을 앞두고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예전 곡을 다시 모아 재편곡, 재녹음해서 팬들이 원하는 피지컬 앨범으로 내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새 음반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가요 기획사에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어 그의 거처도 조만간 확정될 전망이다. 현재 그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관계자는 "당분간은 음악 활동과 작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히며 "기회가 된다면 팬들이 원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양준일 신드롬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JTBC <슈가맨 3>가 방송된 직후에도 미국에서 서빙 일을 했다는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정착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2월 31일에는 3,600명의 팬과 함께 팬미팅을 개최했고, 지난 1월 4일에는 19년 만에 음악 방송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방송에서는 여느 아이돌 못지않은 응원 구호가 최대의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기다렸어 양준일, 어서 와요 양준일, 그리웠어 양준일, 함께해요 양준일, 출구 없어 양준일, 출국 금지 양준일!"이라고 외치며 그의 복귀를 환영한 팬의 무려 700명에 달했다.
스타들의 '팬밍아웃'도 줄을 이었다. 배우 김희선은 자신의 SNS를 통해 "나의 우상 양준일님.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했고, 작사가 김이나는 양준일의 팬미팅 MC까지 맡으며 그의 열혈 팬임을 인증했다. 그를 소환했던 JTBC <슈가맨 3>도 특집 방송을 편성하며 그의 복귀에 힘을 실었다. 지난 1월 16일과 23일, 2주에 걸쳐 양준일의 국내 활동기를 담은 <특집 슈가맨, 양준일 91.19>가 방영된 것. 한동안 그를 환영하는 움직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30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야 우리는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 드디어 그의 시간이 온 것이다.
양준일의 3대 '띵곡'
리베카
양준일의 데뷔곡이자 대표곡. 당시 발라드가 주를 이루던 가요계에 신선한 템포의 댄스곡을 내놓으며 새로운 분위기를 선도했다. 남성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여성적 분위기의 댄스와 장르를 시도했으며 단순한 가사 구성임에도 '리베카'라는 가사가 반복되며 중독성 있는 곡이다.
가나다라마바사
1992년 발표된 두 번째 앨범 수록곡 중 하나. "가나다라마바사 사랑한단 뜻이야, 가나다라마바사 보고 싶단 뜻이야"라는 신비로운 노랫말과 펑키한 템포가 재미있는 곡이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여성의 내레이션과 독특한 안무가 신선하다.
Dance With Me 아가씨
뉴 잭 스윙 장르의 대표 댄스곡. 파격적인 퍼포먼스와 경쾌한 멜로디로 뉴 잭 스윙 장르의 선구자로 꼽히지만, 영어 가사가 많다는 뜻밖의 논란으로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곡이다. 무대를 휘젓는 양준일의 댄스와 함께 즐기기 좋은 곡.
'GD보다 한 수 위' 양준일의 패션 센스
요즘 런웨이를 수놓는 유행 아이템들은 30년 전 양준일이 무대 위에서 선보인 바로 그 패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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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쇼트 팬츠남'
한동안 남녀를 막론하고 쇼트 팬츠의 붐이 일었다. 레트로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특히 하이웨이스트 팬츠와 버뮤다팬츠가 유행했는데, 양준일은 이미 무대 위에서 이를 선보여 '패피'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반바지 슈트에 무릎까지 오는 니삭스, 스포티한 헤어밴드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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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모자 덕후'
양준일의 패션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은 바로 모자다. 그는 1991년 데뷔 이후, 다양한 모자 패션을 선보였다. 여성스러운 베레부터 산타 모자, 페도라, 벙거지까지 패션에 찰떡같이 어울리는 헤어 액세서리를 매치함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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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죽.코' with 숄
진정한 패션을 위해서라면 '얼어 죽어도 코트'를 선택하는 패피들. 양준일 역시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멋스러운 코트를 장착해 시선을 모았다. 목까지 올라오는 하이넥 칼라에 무심하게 걸친 오렌지 컬러 숄까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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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테의 맛
반듯하게 묶어 올린 헤어스타일과 클래식한 와이드 타이, 새빨간 코트를 이토록 잘 소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중에서도 팬들이 최고로 꼽은 아이템은 뿔테 안경이다. 대다수 잠자리 안경에 국한됐던 시절, 그의 선택은 '패피' 그 이상이었다. 시력 교정용 도구의 화려한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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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패턴 셔츠
화려한 패턴과 컬러풀한 셔츠는 요즘 남성들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한쪽으로 가지런히 빗어 넘긴 단발머리의 양준일은 블랙 민소매에 루스한 패턴 셔츠를 매치해 포인트를 줬다. 허리 뒤 셔츠 위로 벨트를 착용하는 스타일링은 요즘도 흔히 볼 수 없는 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