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일명 ‘권대희 사건’에 대해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며 수술실 CCTV 설치 논란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 고 권대희 씨(이하 ‘권 씨’)는 성형외과 수술실에서 안면윤곽 시술을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 및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사망했다. 유족들은 수술실 CCTV 영상을 증거로, 무책임한 의료진에게 책임을 물었다. 담당 의사가 수술 중 수술실을 이탈해 간호조무사가 환자를 지혈하며 장시간 방치한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찍혔기 때문이다.
권 씨는 뒤늦게 대형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49일 만에 사망에 이르렀다. 유족 측은 상황이 위급한데 의사는 없고 간호조무사는 화장을 고치거나 휴대전화를 만지는 등 환자를 충실히 돌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3년이 지난 2019년 11월, 검찰이 권 씨의 집도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물어 구속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국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검찰이 의료진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은 수술실의 특성상 의료 사고가 발생해도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권 씨의 유족과 환자 단체는 이런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감시자 역할 vs 사생활 침해
우선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가장 높은 기대를 거는 성과는 CCTV 설치를 통해 의료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그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온 무자격자의 대리 수술과 환자의 동의 없이 주치의가 뒤바뀌는 유령 수술, 마취 상태에서 환자에게 행해지는 성추행과 성희롱 등은 환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이에 환자 단체뿐만 아니라 뉴스를 접한 수많은 국민까지 수술실 CCTV가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술실 내 생일 파티, 인증 사진 촬영 등 비도덕적인 의료 사건을 근거로 CCTV가 설치되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사고 예방뿐 아니라 사고 발생 시 대처에 거는 기대도 있다. 의료 사고 발생 시 환자는 늘 을이 된다. 의료인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의료진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의문스럽고 억울한 의료 사고가 있어도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무자격자가 수술을 하거나, 성범죄를 당한 정황이 있어도 법적으로 이를 증명할 길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내부 제보에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따라서 CCTV가 이들의 억울함을 푸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이에 의료계는 즉각 반응했다. 먼저, 환자와 의료진의 신뢰가 붕괴되는 것에 유감을 표했다.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는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신뢰의 관계라는 것. 이 점이 훼손된다면 더욱더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라 입을 모았다. 또 입증되지 않은 ‘사고 예방 효과’에 대해서도 거세게 반발했다. 현재 논란이 되는 의료 사고는 극히 드문 일부일 뿐, CCTV 설치만으로 사고 예방을 기대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 실제로 의료 사고들은 CCTV가 아닌 내부 고발에 의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또한 대한의사협회(이하 ‘대의협’)에서는 CCTV 설치로 인해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가 집중력이 저하된 수술 결과로 이어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그들을 감시하고 불신하는 분위기에서 의료진이 느껴야 할 부담감과 스트레스는 환자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수술실의 특성상 불필요한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한편 환자 입장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환자와 의료진의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그 근거다. 환자의 신체 부위가 녹화된 자료들을 어떻게 안전하게 보관할지 보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대책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경제적 부담이 고스란히 환자의 치료비에 가산돼 결국은 촬영을 원치 않는 환자에게까지 피해가 분산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환자 단체는 보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CCTV를 설치하면 오히려 의료진의 집중도가 상승돼 수술 결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환자와 의료진 모두 수사나 재판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CCTV를 볼 수 있도록 법적인 제도를 갖춘다면 의료계가 주장하는 불필요한 소송 남발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팽팽하게 맞서는 상반된 주장 속에서도 공통되게 의견이 모아지는 부분이 있다. 대리 수술, 유령 수술, 성범죄 등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불법에 대해선 엄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 단순히 의사 면허를 정지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병원 전체에 엄중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양측 다 이견이 없는 눈치다. 상반된 의견을 수렴해 수술실 내부가 아닌 수술실 입구나 복도에 CCTV를 설치하자는 새로운 방안도 제기됐다. 수술을 집도하는 주치의가 누구인지 환자나 보호자가 명확하게 확인이 가능하고, 환자 모습은 촬영되지만 구체적인 신체 부위에 대한 노출을 피한다면 사생활 침해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과연 의료진만 감시하는 역할로 CCTV를 설치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료 사고 예방과 대처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이렇듯 수술실 CCTV 설치는 보편적으로 실현되기까지 갈 길이 꽤 멀어 보인다. 환자와 의료진의 신뢰 관계가 두터워질 수 있는 방법은 과연 CCTV를 설치하는 것일까, 설치하지 않는 것일까? 더욱 건강하고 열띤 논쟁 속에 그 해답이 있길 기대한다.
수술실 CCTV 어떻게 생각하나요?
2019년 11월 29일부터 12월 10일까지 <우먼센스> 독자 183명이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