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1 서울의 한 유명 멀티플렉스 극장. 30대 성인 남성 A씨가 투덜거리며 영화 <겨울왕국 2> 상영관을 나왔다. 영화가 끝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더 남았는데도 관람을 포기하고 나온 것이다. A씨는 소리를 지르는 초등학생 어린이와 신난다며 관람석을 발로 차는 뒷자리 아이 때문에 신경질이 났다. 아이의 부모에게 항의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극장 안을 뛰어다니는 어린이들. ‘엘사’ 앞에서 아이들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가 무슨 너희 집 안방이니?’
상황2 <겨울왕국 2>의 개봉 소식에 온 가족이 함께 극장을 찾은 B씨. 오랜만의 나들이인 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라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극장 안은 온통 아이들 천국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노래를 따라 부르는 아이부터 춤을 추는 아이도 있었다. 그 모습이 순수하기도 하고 귀여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저 멀리서 한 남성 관객이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시끄럽게 할 거면 집에 가서 봐!”라고 소리를 질렀다. 잔뜩 겁에 질린 아이들…. ‘아니 대체 아이들이 무슨 죄라고?’
영화 <겨울왕국 2>의 관람객이 1,000만을 훌쩍 넘겼다. 흥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 때문에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노키즈관’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노키즈존’ 논란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관객들은 방해받지 않고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공공장소가 적어 고민하는 부모들은 이런 반응에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노키즈존’에 대한 갑론을박이 거세게 이어지는 이유는 어린이를 뜻하는 ‘Kids’ 앞에 부정적인 의미의 ‘No’가 붙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마치 어린이를 혐오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탓에 일단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린이 전용 공간을 만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지금 아이가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노키즈존’이라는 용어는 약 10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 2011년 한 식당에서 뛰어다니던 10살 아이가 뜨거운 국물에 데어 화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법원은 종업원과 주인에게 70%의 과실을 물었다. 숯불갈비집에서 24개월 된 여자아이가 뛰어다니다가 화로가 떨어져 화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 당시에도 식당이 50% 이상을 책임졌다. 또한 식당에 비치된 컵에 아이 소변을 받는 엄마의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부모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 책임을 종업원이나 주인의 몫으로 돌리는 사건이 이어지자 소비자가 아닌 업주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안 받고 싶다’고 해서 ‘노키즈존’이 생긴 것이다. 다시 말해 ‘노키즈존’이 만들어진 데는 아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부모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예스키즈존’의 등장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엔 어린아이들을 위한 ‘예스키즈존’이 생기고 있다. 아이들의 천국이라는 키즈 카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기고 아이들만 입장 가능한 ‘키즈관’도 등장했다. 엄마들 사이에선 키즈존이 마련된 쇼핑몰이 인기를 끌고(스타필드가 대표적이다), 입주사 임직원이 이용할 수 있는 키즈존을 설치한 공유 오피스도 있다. 심지어는 ‘예스키즈존’ 300여 곳을 소개하는 책도 출판됐는데 역시 반응이 좋다.
최근 한 여론조사 전문 기관에서 전국 19세 이상 성인 5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키즈존을 찬성한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찬성’이 54.7%, ‘반대’가 36.2%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남녀 모두 찬성 의견이 높은 가운데 여성이 남성보다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 상대적으로 아빠보다 아이를 많이 돌보는 엄마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다.
이처럼 ‘노키즈존’으로 인해 생기는 ‘예스키즈존’의 등장을 반기는 건 누구보다 엄마들이다. 통제가 힘든 아이들을 쫓아다니느라 힘을 빼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노키즈존을 만들어 아이를 분리하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키즈존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의견도 많다. 전문가들 역시 아이들이 산만하게 노는 것은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인 만큼 성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아동 친화적인 키즈존이 더욱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없어지기 위해선 아이들과 부모가 편하게 놀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
차별 논란도…
어린이라고 해서 모두 시끄러운 것은 아니므로 ‘노키즈존’이나 ‘예스키즈존’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성, 장애인, 그리고 아동에 이르기까지 배려받아야 하는 약자를 배제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동 금지, 여성 금지와 같은 것이 결국 차별의 일상화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이다.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정책적으로는 아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에서는 식당 등지에서 어린이를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지적한 바 있고, 유엔아동권리협약에는 ‘공공장소에서는 차별받지 않으며 그들의 문화적 권리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2017년 제주의 한 레스토랑에서 9살 아이를 동반한 부모가 입장이 거절되자 국가인권위에 이의를 제기했고, 국가인권위에서는 ‘나이를 이유로 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행위’라고 결정했다. 당시 인권위는 평등권을 규정한 헌법 제11조, 그리고 인권위법 제2조 3호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 그리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의 권고 사항은 법적인 강제력은 없다. 업소는 헌법 15조에 따라서 영업의 자유가 보장된다. 따라서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식당이나 영화관에서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해외에도 ‘노키즈존’이 있다
해외에선 인종·종교·출신·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매우 민감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노키즈존은 ‘차별’이 아니라고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공연장이나 예약이 필수인 고급 음식점에서는 노키즈존 표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2013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레스토랑에서 아이의 출입을 금지했다가 법정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외국 항공사에서 노키즈존을 도입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말레이시아항공은 2012년에 새 항공기를 도입하면서 이코노미석 일부를 ‘콰이어트존’으로 설정하고 어린아이와 동승자를 이 좌석에 배치해 다른 승객과 분리시켰다. 인도의 저가 항공사 인디고 항공은 12세 미만 어린이는 탑승할 수 없다는 규정을 도입해 비판을 받은 적이 있지만 항공사 측은 여전히 노키즈존을 유지 중이다. 최근에는 유럽 항공사들도 노키즈존을 도입하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