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보도되는 무시무시한 뉴스들 속에서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는 범죄심리 전문가가 있다. ‘1세대 프로파일러’로 불리는 이수정 교수다. 범죄 프로파일러,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대검찰청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 등 이수정 교수를 부르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은 ‘그알 교수님’이다. 1992년 첫 방송이 시작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에서 절반 이상을 함께해온 자문위원으로, 길거리를 다니면 알아보는 이도 많고 팬이라며 사인을 요청하는 이도 상당하다.
“처음 <그알>에서 자문 제의가 들어왔을 땐 이토록 오랜 기간 출연하게 될지 몰랐어요. 벌써 20년 전이네요. 예전에는 <그알>이 시청률도 낮고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손꼽히지도 않았어요. 요즘 이렇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사회규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뀐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남의 의사에 반해 성폭력을 하는 행위가 사회의 이목을 끄는 시대가 됐잖아요. 과거엔 쉬쉬하기만 하던 일들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 것이죠.”
요즘 그녀가 유난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동 유인 방지법’은 온라인으로 성매매를 제안하는 유인 행위 자체를 처벌해야 한다는 법안이다. 현행법상 온라인에서 유인하는 행위는 오프라인처럼 처벌하지 않는다. 성폭력법에 나와 있는 유인 행위에 속하지 않아서다.
“우리는 ‘랜덤 채팅’ 앱으로 ‘우리 집에 올래? 10만원 줄게’라고 아이들을 유인하는 과정이 범죄가 아닌 나라에 살고 있어요. 신체 일부의 사진들을 보내주면 커피 쿠폰을 보내준다는 사람도, 몸으로 할 수 있는 쉬운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는 사람도 모두 범죄자가 되지 않죠. 유인 행위 자체가 엄중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녀는 ‘스토킹 방지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스토킹 방지법’은 스토킹하는 일종의 사냥 행위도 성범죄로 취급하는 예방적인 법안이다.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사건 중 30%가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된다. 스토커를 잡으면 살해되는 여성 피해자의 30%를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유례없이 검거율이 높은 나라예요. 안익득 사건(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으로 5명이 사망했지만 가해자는 바로 검거했잖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사망자가 발생하기 전에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입법 조치를 해놓는 것이죠. 안인득 같은 스토커를 미리 처벌할 수 있는 법은 만들어놓지 않고 살인 사건이 발생한 다음 검거해서 사형을 선고한다 한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상습 스토커라도 현행법상 스토커로 처벌할 방안이 없다. 성범죄는 신체적 접촉이 없어 혐의의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강간 미수도 무죄 처리될 게 뻔하다. 굳이 죄명을 찾는다면 주거침입죄 정도.
“강간 미수부터 가택침입죄사이에 뭔가 죄명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잖아요. 그 중간 범위의 죄를 물을 수 있는 법이 필요해요. 단순한 구애 행위를 전부 범죄자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지만 남자들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신림동 사건처럼 가해자가 피해자를 추격하는 모습을 보고도 구애 행위라고 할 수 있는지. 사랑을 고백하는 태도가 아니잖아요.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예요.”
이수정 교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변화는 한정적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문제 제기를 통해 실제로 입법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는 국민의 각성도에 달려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원성이 자자해야 입법을 해줍니다. 아동 성범죄 친고죄가 폐지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의 분노가 있었나요. 조두순 사건으로 피해 아동이 처절한 고통을 받은 후에야 국민의 원성에 떠밀려 폐지가 됐잖아요. 누구 한 명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온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범죄자들에게 선고된 양형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논란이 많다. 특히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에게 좀 더 가혹한 형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수정 교수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양형 기준은 과거와 비교해 적절한 형벌이 내려지고는 있지만, 국제적인 기준에 미달되는 부분도 상당하다.
“13살부터 16살까지 미성년자를 상대로 하는 범죄들에 대한 처벌 수위는 터무니없이 낮아요. ‘의제강간’의 기준(만 12세 이하)이 너무 낮아서 일어나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아동 유린 문제를 일부 아이들의 동의된 성매매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인터넷과 모바일이 발달하면서 익명의 가상 세계를 접하는 연령대는 현저히 어려졌다. 범죄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어린 아이들까지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어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때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미래가 되길 바래요. 그런 의미에서 여성·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온상이 된 ‘랜덤 채팅’ 앱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싶고요.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이들을 처벌하지 않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어른들이 개선하지 않으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된 세상은 더욱 복잡해질 거예요.”
‘인간의 본능’에 대하여
숱한 범죄자와 대면하며 다양한 범죄 수법을 분석해온 이수정 교수는 성악설과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본능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본능설에 무게를 둘 뿐이다.
“인간도 짐승처럼 하고 싶은 대로 본능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사회적 규범으로 막으니 범죄라는 것이 발생하는 것이죠. 결국은 짐승과 인간의 차이점은 본성적인 욕망을 얼마나 컨트롤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잘하면 인간이고, 못 하면 짐승이죠.”
그녀가 범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읽어내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환경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은 어느 한 시점에 갑자기 존재하게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과거를 들여다봐야 앞으로를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인간이란 장기간 형성된 습관을 쉽게 바꿀 수 없는 존재다.
“범죄자를 대면하기 전,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읽고 가요. 전과 기록과 수사 과정상의 기록 같은 서류에 다 나와 있거든요.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 사람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최대한 예견하고 가는 거죠. 사전에 파악하고 가면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런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생’은 누구였을까.
“정남규요. 14명을 살인하고 사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던 교도소 안에서 자살한 연쇄살인범이에요. 그동안 수많은 범죄자를 만나온 저조차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눈빛과 분위기가 있었어요. 대화를 해보면 아이콘택트 자체가 되지 않았고, 공감 능력이나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불안했고요. 인생의 목표를 물으면 유영철보다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죠.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굉장히 오래 했고, 어린 시절 당한 성폭력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결국 성 일탈의 길을 걸었던 것 같아요. 표류하는 인생 속에서 자극적인 욕구만 추구하며 살다 희대의 살인마가 된 것이고요.”
정남규는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달라”는 발언을 해 과연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에 불을 지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범죄자들의 교화와 교정의 가능성과 신뢰에 대해 희망을 잃지 않았다.
“훈련을 받으면 아기가 기저귀를 떼는 것처럼 기적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편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우선 고도화된 전문화를 위해 많은 예산이 편성돼야 하고, 장기적으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교화 프로그램도 필요해요. 학계에서 입증된 교정과 교화를 통해 감소시킬 수 있는 재범률이 15%예요. 그 15%를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할 뿐이고 나머지는 국가가 나서서 관리할 수밖에 없어요.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현재의 ‘전자 발찌’고요.”
제 수많은 연구물과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결과물은 아들딸을 낳은 일이에요. 손가락도 움직이고, 발가락도 움직이고. 지금은 경제활동도 하고 아주 생산적인 업적이잖아요.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또 아이들 때문에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인생이에요.
인간 이수정
조곤조곤하지만 냉철한 말투, 안경 너머 보이는 무표정은 이미 이수정 교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멋스럽게 자리 잡아 목선에서 찰랑거리는 정갈한 단발머리는 그녀의 전매특허다.
“게으름 때문이죠. 파마하기 귀찮아 일 년에 세번 정도 머리카락을 잘라요. 어깨 밑으로 축축 처지는 건 또 싫거든요. 원래는 화장도 안 했는데 요즘은 TV 출연을 민낯으로 못 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통 방송국에서 무료 화장을 하고 있죠.”(웃음)
그녀는 방송이 없는 날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는다. 외모를 치장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도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다. 결혼 전까지 파마를 즐겨 했다는 그녀는 대다수 대학생들이 운동권이던 시절, 누구보다 씩씩한 여대생이었다.
“전 운동권이라고 정의하긴 어렵지만 아동보호 시설에 아이들을 가르치러 다니고 딱 그 정도 야학에 참여했던 사람이에요. 수업에 들어가면 배신자인 양 하던 시절이었지만 수업은 열심히 들었고요. 등록금을 냈는데 왜 수업을 안 들어요. 학교 화장실도 많이 써야 한다는 주의인데. 요즘에도 학생들한테 말해요. 학교 나와서 화장실이라도 쓰라고요.”
연세대 심리학과에 재학한 후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이수정 교수는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로 아들딸을 낳은 일을 꼽았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물과 업적을 남겼지만 자식만큼 신기하고도 위대한 결과물은 없다는 것.
“손가락도 움직이고, 발가락도 움직이고. 지금은 경제활동도 하고 아주 생산적인 업적이잖아요.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또 아이들 때문에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한 인생이에요.”
이수정 교수는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박사 학위를 마쳐갈 때쯤 아이오와의 추운 날씨 때문인지 딸이 장기간 폐렴에 걸려 더 이상의 학업이 불가능해졌다.
“시험 전날엔 아이를 무릎 위에 눕혀놓고 플래시를 들고 공부했어요. 그렇게 아이를 보살펴도 폐렴이 쉽게 낫지 않더라고요. 한 달가량 열이 38℃까지 오르면서 아파하니 엄마로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러다 남편이 한국에 취업이 돼 아이들을 데리고 철수하기로 결정했죠.”
처음엔 아이들을 한국에 두고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가 가족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그렇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다시 한국에서 박사 학위 준비를 이어갔다.
“한국과 미국의 박사과정이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지 너무 잘 알아요. 유학원을 차려도 될 만큼.(웃음) 훗날 제자들도 유학을 많이 보냈는데, 양쪽의 교육과정을 세세하게 다 아니까 조언해줄 때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이들 때문에 포기한 꿈을 다잡으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기른 덕분에 사회심리학과 박사에서 범죄심리학과 교수로 전공의 방향을 트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인생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기 때문에 변화에 순응적인 편이에요. 어차피 내가 우선이 아닌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인생을 많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별로 거부감이 없고요. 결론적으로 저 자신한테는 또 다른 강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스스로를 50점도 안 되는 엄마라고 평했다. 아이들 곁에서 떠나진 않았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걸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엄마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옛말 중에 밥숟가락은 스스로 물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잖아요.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다행인 건 아이들이 스스로 잘 커주더라고요. 요즘 육아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젊은 엄마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다 해주려고 하지 말고 지켜봐주라고요. 엄마의 손길보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법조인 아빠와 교수 엄마의 특별한 교육법은 없었을까.
“배고플 때 먹이고 졸려하면 재우고 그게 다 예요. 다만 제가 위험을 많이 접하는 사람이니까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딸아이를 유난스레 보호하며 키운 부분은 있죠. 예를 들어 밤늦게 들어오는 건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요.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여느 부모들과 비슷한 정도예요. 살아보니 학벌이 모든 것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더라고요. 일찍 승진하면 일찍 퇴직하는 거죠 뭐. 빠른 시간에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도움 되는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해 육아와 일을 해낸 이수정 교수는 지난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끊임없이 다가오는 파도를 넘고 또 넘어보니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됐다는 것. 그녀는 최근 ‘BBC 선정 100인의 여성’에도 이름을 올렸다.
“저도 힘든 시기가 많이 있었어요. 딸이 폐렴에 걸려 아파할 때도, 문득 내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져 우울함이 들 때도 다 포기하고 싶었죠.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순간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버틴 게 참 잘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성당을 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그곳에서의 말씀처럼 뭔가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세탁기에서 나온 빨래를 건조대에 탁탁 털어 널 때 성취감과 쾌감을 느낀다는 이수정 교수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당신은 재미있는 사람이냐”는 조금 우스운 질문을 던졌다.
“재미있는 사람요? 보면 알잖아요.”
매주 토요일, 그녀의 진중한 눈빛만 마주했기 때문일까. 인터뷰 내내 이어진 그녀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유난히 듣기 좋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