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니얼 월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빅피쉬>를 연습하고 있다. 극에서 ‘에드워드’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지만 한곳에 머물지 못하는 모험가적 기질 때문에 가족들의 오해를 사는 인물이다. 에드워드 역을 맡은 나는 연습을 하면서 아빠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고 주안이에게 “아빠 사랑해?” 혹은 “아빠는 주안이에게 어떤 사람이야?”라고 묻곤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을 듣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제법 눈치가 빨라진 주안이는 아빠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아는 눈치였다. “사랑해” 혹은 “좋은 사람”이라고 듣기 좋은 답을 내뱉고 나서 그림 그리기나 독서, 게임에 몰두했다.
그러다 아들이 생각하는 아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요즘 우리 부부는 스케줄이 바빠 세 식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어느 날 오랜만에 함께 있는 시간이 생겨 세 식구가 침대에 누워 주안이에게 다 같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그러다 소현 씨에게 친한 동료 배우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현 씨가 부랴부랴 집을 나설 준비를 하자 갑자기 주안이가 “엄마 가지 마!”라면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 코를 훌쩍였다. 한동안 엄마,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지 않던 아들이었다. 결국 소현 씨는 주안이에게 빨리 집에 돌아와 책을 읽어주며 재워주겠다고 약속한 뒤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내막을 알게 됐다. 우리 부부는 아빠인 내가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라 주안이의 훈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스케줄이 바빠지면서 아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었고 그렇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에는 훈육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상황인지라 갑자기 아빠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생기자 주안이는 불현듯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고 한다. 가슴이 무너지고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쓰라린 고통을 어디에도 견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처한 상황과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선 아들에게 아빠가 준 사랑이 어떤지 들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변하기로 했다. 주안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아들이 좋아할 만한 질문을 건네고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또 아침잠을 줄여 주안이의 등굣길에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성과(?)를 내진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주안이는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학교에서 있었던 일, 즐거웠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9살 생일에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등을 친구처럼 다정하게 들려줬다. 앞서 나의 실수를 스스로 되돌아보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주안이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