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출신인 손석우 대표는 음반 프로듀싱의 꿈을 안고 처음 엔터테인먼트업계에 뛰어들었다. 그 옛날 잘나가던 기획사 백기획, 싸이클론, 플레이어, 팬텀을 거쳐 2001년 톱스타 이병헌과 함께 BH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올해 22년 차가 된 그는 인성과 지성, 인간미까지 겸비해 업계에선 '이상적인 매니저의 표본'이라 불린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BH엔터테인먼트는 이병헌의 1인 기획사로 시작해 현재 한효주, 한지민, 진구를 비롯해 김고은, 고수, 이진욱 등 25명의 배우를 거느린 대형 기획사다. 아이돌 가수를 키우는 대형 가수 기획사를 제외하면 명실상부 배우 기획사 중 최고의 브랜드다. 최근엔 종합 콘텐츠 기업 카카오M과 손잡고 전략적 협업을 진행 중이다.
그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빠져선 안 될 인물은 톱스타 이병헌이다. 그는 대한민국 넘버원 배우이자 이슈메이커인 이병헌을 19년 동안 흔들림 없이 지켜왔다. 2009년 할리우드 진출의 영광을 함께했고, 루머와 스캔들로 얼룩진 시간도, 재기에 성공해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설 때도 늘 이병헌의 뒤엔 그가 있었다. 손 대표는 이병헌의 든든한 뒷배이자 방패였고, 지금까지 두 사람은 최고의 파트너다.
손 대표의 일정은 매일이 강행군이다. 하루 평균 미팅만 다섯 건이 넘는다. 퇴근 시간은 대체로 자정을 넘긴다. 주말엔 쏟아지는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읽는다. '촉'에 기반한 비즈니스가 아닌, 분석과 데이터에 기반한 확률 비즈니스를 지향한다. 학구파 매니저. 그가 이 업계에서 빛나는 이유다.
매니저는 전략가다
업계에서 젠틀맨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요.
1998년에 연예계에 들어와 선배 매니저들의 영업 방식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어요.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서류 한 장 없었고,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았죠. 은행에서 일했던 제겐 문화적인 충격이었어요. 저는 매니저들이 하던 접대식 영업 방식을 따르지 않았고 직원이나 소속 배우와의 관계도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젠틀맨'이란 이미지가 생긴 것 같아요. 젠틀하다기보다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생긴 이미지일 거예요.(웃음)
술을 못한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흐트러진 모습을 본 사람도 없다는데 사실인가요?
사실은 애주가이고 주량도 만만치 않습니다.(웃음) 다만 저의 작은 실수가 배우들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하는 편이에요. 매니저는 배우들의 아버지이고, 어머니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흔들리거나 흐트러지면 배우들이 누구한테 의지하겠습니까. 정말 친하고 편한 지인이 아니면 술자리를 거의 하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자기 전에 혼술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남에게 속내를 말하기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편입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자주 들어요. 법륜 스님이 대중의 고민을 듣고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강연인데, 들을 때마다 무릎을 칩니다. 작년에 법률 스님이 주최한 수련회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그 후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더 단단해졌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이기는 자체 정화 능력이 발달한 것도 같고요. 어쩌면 스트레스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좀 의외이긴 한데 배드민턴 치는 것도 좋아해요. 동호회의 회장직까지 맡고 있습니다.(웃음)
매니저라는 직업을 정의한다면요?
배우의 동료이고 기획자이자 마케터죠. 그야말로 전문직입니다. 그게 '진짜' 매니저라고 생각해요.
현직 매니저들이 그 역할을 잘하고 있나요?
면접할 때 꼭 묻는 질문이 있어요. "매니저는 전문직인가?"인데 대부분 "네"라고 대답해요. 왜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쉽게 답을 하진 못하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문가가 없었으니까요. 저 역시 초창기에 이 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곳이 없어 국회도서관의 학위 논문 자료를 뒤적이며 엔터테인먼트 이론을 공부했어요. 엔터 비즈니스를 체계화하는 데 있어 그 중추적인 역할을 저희 회사가 하고 싶은 마음도 큽니다.
하루 루틴도 궁금합니다.
아침 8시쯤에 출근합니다. 오전엔 회의를 주로 하고, 오후엔 관계자들과 미팅을 해요. 촬영 현장에 가보는 날도 있고요. 하루 평균 5~6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대부분 밤 12시가 넘어 있어요.(웃음) 집에서 혼술을 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하지 못한 일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새벽 3시쯤 잠이 들어요. 주말에는 작정하고 시나리오를 몰아서 읽어요. 시나리오를 읽는 건 매니저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업무예요.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나요?
엔터테인먼트는 소속사의 대표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리면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땐 '솔직하게' 대응합니다. 휴대전화가 곧 CCTV가 되는 시대잖아요. 숨길 수 없어요. 잘못한 일이 있다면 신속히 시인하고 사과하는 게 가장 적절한 대응 방법이죠. 지름길 중의 지름길은 언제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두어 번 위기가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담배를 끊었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됐지요.
일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우리 배우가 작품 안에서 연기를 잘하면 기분이 좋아요. 그다음이 시청률과 같은 대중의 평가죠. 소속사 대표의 마음은 그러네요.(웃음)
가장 희열을 준 배우는 누군가요?
이병헌 씨죠. 위기도 줬지만 희열 또한 가장 많이 준 사람입니다.(웃음) 지금도 저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전율이 흘러요.
오랜 시간 지켜본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어떤 사람인가요?
타고나길 유쾌한 사람이에요. 배우로서 책임감 또한 강해 한번 결정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번복하거나 군소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죠. 그리고 무척 겸손합니다. 모든 결정을 감독에게 맡깁니다. 결국 작품은 편집에서 판가름이 나는데, 감독에게 편집의 소스를 많이 제공하는 게 배우의 덕목 중 하나라고 믿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같은 장면을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찍어요. 물론 그도 과거에 철없이 행동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일련의 과정과 좌절이 한 겹 한 겹 쌓여 지금의 얼굴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병헌 씨의 비즈니스적인 선택에 어느 정도 관여하나요?
100%요. 타고난 DNA가 아티스트라 비즈니스적인 코치가 필요하기도 하고요.(웃음)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돈'에 관심이 없다고 들었어요. 어쩌면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돈에 연연하지 않으니 배우로서의 선택에 흔들림이 없고, 또 집중력이 높죠. 아티스트로서 그를 존경하는 부분이 커요.
두 사람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우연에서 필연이 된 인연. 종종 "우리가 안 만났다면 어땠을까?"라고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결론은 늘 하나죠. 우리 둘 다 없었을 겁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로 한지민 씨도 있습니다.
참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는데 돌고 돌아 함께 일하게 됐지요. 굉장히 털털하고 정의로운 성격이에요. 신인 배우가 촬영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 조그만 체구로 앞장서서 사태를 해결해주는 여전사랄까요. 회사에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제게 위로와 격려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 친구예요. 덕분에 의지가 되는 사람이고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이기도 하고요.
저는 소속 배우들에게 뜨겁게 사랑하라고, 더 뜨겁게 이별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어요. 배우로서의 삶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배우가 연기를 합니다. 그 삶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이병헌, 한지민… 나의 스타들
그간 많은 배우와 일했을 텐데, 다시 함께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김민희 씨. 배우로서 재능이 너무 많아요. 시나리오를 읽다 보면 종종 민희 씨가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어요. 제게는 늘 그리운 아티스트입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아마도 배우로서 더 풍성해졌을 겁니다.
이지아·이진욱 씨 같은 논란이 있었던 배우들도 과감하게 영입했어요.
이지아 씨의 경우 과거의 개인사일 뿐이고, 이진욱 씨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어요. 재능이 출중한데 영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지아 씨는 아주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이에요. 취향도 다양하고 박학다식하죠. '허당기' 가득한 인간적인 매력도 있고요. 폐쇄적인 성향도 있지만 벗어나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잔소리를 해도 그걸 고맙게 생각하고 수용하는 친구예요. 똑똑한 사람입니다.
이진욱은 어떤 배우인가요?
저는 진욱 씨의 눈을 좋아해요. 눈동자가 너무 또렷해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어요. 혹시 영화 <뷰티 인사이드>(2015)에서 진욱 씨가 등장하는 첫 장면 보셨나요?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한효주에게 "나갈까?"라고 한마디 하는데, 그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어요.
진구 씨는 한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도 BH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어요.
개인적으로 늘 마음이 쓰이는 친구예요. 오랜 시간 함께하기도 했고, 배우로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에 제겐 늘 아픈 손가락 같다고 할까요.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보다 침체기를 겪는 배우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 공들이고 싶은 배우는 진구, 이지아, 안소희 씨예요. 세 사람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게 목표죠.
배우 기반의 소속사인데 아이돌 출신인 안소희와의 계약은 의외였어요.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다분한, 감각적인 친구예요. 과거의 김민희 씨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패션 감각도 무척 뛰어나죠. 저는 배우 개인의 라이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결국 연기는 실제 모습이 투영되는 것이니까요. 처음 봤을 때 소희 씨는 말수도 적었고 폐쇄적인 성향이 있었어요. 아마도 아이돌 생활을 오래 한 탓도 있겠죠.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아마도 그런 변화가 연기에도 드러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속 배우들에게 연애를 권장한다고 들었어요.
사랑하고, 연애하고, 이별해야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어요. 그래서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전 배우로서의 삶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배우가 연기를 합니다. 그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돼 있어요.
활동이 뜸한 한가인 씨의 근황도 궁금해요.
함께 일한 지 10년이 됐는데 그동안 한 작품을 했어요. 연기보다 가족이 먼저라는 그녀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니 자신이 활동하고 싶을 때, 운명적으로 작품이 찾아오면, 그때 하면 됩니다.
올해 대중이 주목해야 할 소속 배우가 있나요?
올해는 아마 박해수 씨의 해가 될 겁니다. 최근 드라마 한 편의 촬영을 마쳤고, 찍어놓은 영화까지 연달아 4편이 개봉돼요. 모르긴 몰라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회의를 느낀 순간이 있다면요?
결국 사람 문제죠. 오랫동안 공을 들였는데 떠나면 '배신'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렸기 때문에 관계의 기준을 '이별'에 둔 거죠. 지금은 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가 계약 기간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예요.
은퇴 후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분명한 건, 박수 칠 때 떠날 겁니다. 그리고 은퇴 후엔 일단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쉴 거예요. 저를 돌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그동안 누군가를 돌보는 일만 했지 정작 저 자신을 돌보지는 못했거든요. 여행을 많이 다닐 거예요. 재미있는 것을 보고 훌륭한 사람을 많이 만나면 내 안이 더 풍성해질 테니까요. 그때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생각해볼 겁니다.
BH엔터테인먼트가 어떤 회사이길 바라나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리드하는 기업이 됐으면 해요. 작품을 결정하는 방법부터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까지, 그 모든 시스템이 다른 회사와는 차별화됐으면 좋겠어요. 전문적이고 싶습니다.
그는 이 업계에서 빛나는 사람이다. 빛나는 사람의 메커니즘은 태양과 완벽히 같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늘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킨다는 것. 그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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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배우는? 배우들이 질투할 텐데…. 모범 답안으로, '모두'.
지금 관심을 두는 배우는? 올해는 진구, 안소희, 이지아. 시즌별로 바뀐다.(웃음)
가장 허물없이 지내는 배우는? 세월이 세월인 만큼, 이병헌.
가장 힘들게 했던 배우는? 역시나 이병헌.(웃음)
다시 일해보고 싶은 배우는? 김민희.
나의 장점은? 내가 손해 보는 게 차라리 낫다는 마인드.
수입은? '비루했던' 예전에 비해 최근 꽤 벌었다.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도 이병헌 매니저.
손석우에게 이병헌이란?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