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을 지켜낸 작은 여인과 딸
남양주의 산기슭을 따라 “이런 곳에 누가 살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굽이굽이 언덕을 올라가면 큰 철제 대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대문을 지나고도 소 축사와 벼농사를 짓는 논, 온갖 작물을 키우는 농원을 지나쳐야 거대한 테라스가 딸린 음악당과 사이좋게 앞뒤로 마주한 두 채의 집이 나온다. 이 신비로운 목장의 주인은 <마스터셰프 코리아>에 나와 ‘첼로를 켜는 절대 미각의 셰프’로 알려진 이혜승 셰프와 그의 어머니 정수복 씨.
“엄밀히 말하면 여기는 어머니의 왕국이에요. 어머니가 여왕이면 저는 일개 시민인 셈이죠.(웃음)” 38kg의 작은 몸에 우아한 미소가 가득한 얼굴의 정수복 씨가 33만㎡(10만 평)에 달하는 이 거대한 목장을 일궈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쉬이 납득하지 못한다.
“이 목장은 하늘나라로 간 애들 아빠, 그 자체입니다.”
첫째인 이혜승 씨가 2살, 둘째 아들이 고작 10개월이었던 신혼 시절, 불의의 사고로 목장을 운영하던 남편이 급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시골 생활이 익숙하기는커녕 남편이 목장에서 서울 집으로 퇴근하면 현관에서 붙잡고 먼지가 가득한 옷부터 벗겨냈다는 정수복 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 대신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목장을 자신이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매일 서울에서 남양주 산속으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출퇴근하다 아예 양평으로 집을 옮긴 지 이제 20년, 책으로 써도 몇 권은 써야 할 온갖 역경을 겪으며 자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워냈다.
자유로운 영혼, 이혜승 셰프의 전원 라이프
“혜승이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소질이 다분해 하나에 꽂히면 파고들었어요.” 어머니 정수복 씨가 기억하는 셰프 이혜승의 어린 시절 모습이다. 주위의 권유로 초등학교 때 첼로를 시작한 혜승 씨는 첼로에 소질을 보여 선화여중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이후 선화예고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첼로를 전공하던 중 혜승 씨가 빠진 것이 요리다. 유학을 하며 게장이니 김치니 하는 것들까지 담그곤 하더니 급기야 프랑스 파리의 리츠 에스코피에(Ritz Escoffier)로 본격 요리 유학을 떠난다. 그 이후 파리와 서울 등지의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그녀가 산골 마을에 적응해 살 수 있을지 주변 친구들이 더 걱정했다.
“수도가 안 나오면 직접 고쳐야 하고 벽돌 하나가 깨져도 직접 갈아야 해요. 할 일이 쌓여 있는 산골 생활이었지만, 그 무엇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요.”
드넓은 대지의 대문을 걸어 잠그면 오직 어머니와 혜승 씨 둘뿐. 사람과 부대낄 일도, 누군가가 시키는 일에 떠밀릴 일도 없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편하게 해준다는 것을 몰랐었다.
“사람들이 저희 목장에 오면 ‘와! 정말 부자네’라고 말해요. 이 거대한 땅을 이렇게 가꾸려면 많은 인력과 돈이 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이 목장의 모든 것이 어머니가 20년 동안 직접 가꾼 거예요. 여기 이 벽돌도 전부요. 하루에 벽돌 3개 깔고, 다음 날 또 깔고, 그러다 일 년이 지나면 길이 완성되는 식인 거죠. 대단하신 분이에요.”
힘 안 빼고 여유롭게, 그렇지만 꾸준하게. 저돌적이고 즉흥적인 혜승 씨도 어머니의 이런 생활 방식에 물들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매일 온갖 채소와 허브를 키우고 그것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그녀의 다음 계획은 이곳에 콘셉트만이 아닌, 진짜배기 ‘팜투 테이블 레스토랑’을 여는 것. 손님들이 직접 밭에서 채소를 캐 오고 혜승 씨는 그 채소를 이용한 요리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멀고 외진 곳에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도 있죠. 그렇지만 급할 건 없잖아요.(웃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세이브더독 캠페인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만은 따뜻했던 이날 목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혜승 씨 모녀가 가꾼 농장을 구경하고 이들이 직접 농사지은 작물로 요리한 '팜투테이블 뷔페'를 즐길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모녀와 모두 친한 강효문 씨가 기획한 '세이브더독' 캠페인으로 지난달에는 이혜승 셰프만 참가했지만, 이번에는 어머니와 함께 참가해 더욱 뜻깊었다고.
'세이브더독'은 패션업계에 있었던 강효문 씨를 비롯해 동화 작가와 인형 작가, 요리하는 혜승 씨까지, 여러 명의 친구가 재능 기부를 통해 원데이 클래스와 플리마켓을 열어 그 수익금을 유기견을 돕는 일에 기부하는 뜻깊은 행사다. 특별히 오늘을 위해, 또 어머니를 위해 이혜승 셰프는 10여 년 만에 첼로 공연을 열었다.
"우리 혜승이가 첼로 켜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요리만 하느라 첼로를 잠시 잊고 지낸 혜승 씨에게는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씩씩한 그녀답게 100인분의 요리를 뚝딱 해내고는 곧장 무대에 올라 첼로 연주를 시작했다. 딸의 연주를 지켜보는 어머니 정수복 씨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짧은 일정 사이에 100인분의 요리와 첼로 연습까지 병행해야 했던 이혜승 셰프와 이를 묵묵히 도왔던 어머니 그리고 친구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진이 다 빠질 대로 빠져 다시는 이런 대규모의 행사는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이들은 행사가 끝날 즈음에는 다음번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