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
작가 곽정은
내 인생의 책을 한 권 고른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별안간 지진이나 화재가 나서 정말로 최소한의 짐만 챙겨 빠져나올 여력이 허락될 때, ‘정말 저 책만큼은 갖고 가야 해’라는 생각이 들 책 말이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이 얼마나 힘들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품에 안고 있으면 조금은 위로가 될 그런 책이어야 진정 ‘인생의 책’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내 인생의 책은, <호흡하세요 그리고 미소지으세요>이다. 미국의 저명한 명상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타라 브랙의 이 책은, 내가 인생의 가장 깊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만나게 된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 첫 번째 화살은 어쩌고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니,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라 브랙이 말하는 ‘두 번째 화살’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피한다는 것의 의미.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이 말하는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화살’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뜻한다. 삶이 지속된다면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런 슬픔과 괴로움들이다. 돈, 성공, 관계, 건강, 미래… 중립적인 듯 보이던 단어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고통이란 참 다양하고 깊지 않은가. 삶이 끝나기 전엔 피할 수 없는 1차적 고통을 첫 번째 화살에 비유할 때, 두 번째 화살이란 그 ‘첫 번째 화살에 반응하는 화살’이라고 말한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한다는 이유로, 쉽게 지치고 힘들어한다는 이유로 하는 자기 혐오나 방어적 대응, 무기력 같은 것들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이 되는 셈이다. 그는 이렇게 고통 앞에서 우리가 종종 하게 되는 마음의 부정적 작용에 대해, 호흡에 집중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명상을 통해 고통을 직면·수용하고 결국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알기 전까지의 나는, 어쩌면 내 인생에 대해 그저 ‘적당한 수준’의 자신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치 않았고 대비도 할 수 없었던 깊은 슬픔 앞에서 나에 대한 믿음이 한꺼번에 무너지고 나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두 번째 화살을 정말 잘 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 잘 쏘는 정도가 아니라 그 화살을 쏘는 데 아주 특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남을 원망하고, 그러다 지치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사랑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사람이면서도, 어쩌면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쉽게 원망하고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멈추지 못해 소중한 인연들을 떠나보낸 건 아닌지 서러운 마음도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슬픔을 못 이겨 혼자 방콕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날, 눈부시게 푸른 공원 잔디밭에 앉아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지. 하지만 공원에서 혼자 청승맞게 울면서도 스스로에게 창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이 겨우 누군가와 찍은 빛바랜 사진이 아니라 이 우아하고 철학적인 책이었기 때문일 거다.
타라 브랙이 이 책을 통해 내게 일깨워준 것은 명확했다. 자기 비난을 하고 타인을 원망할 시간에, 그저 호흡하고 미소를 지으라는 것. 자신의 내면을 그저 고요히 지켜보고, 그 모든 감정을 허락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깊고 성숙한 지혜를 꺼내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명상은 어렵거나 엄숙한 것이 아니라, 그저 호흡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의 태도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별 후에 너무나 괴롭다며 내게 디엠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타인의 조언이 아니에요! 스스로와 진심으로 연결되는 진실의 시간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