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에 자리를 잡다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망원시장을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골목길에 길게 창을 낸 하얀 주택이 자리잡고 있다. 박성호·이지영 씨 부부가 작업실로 쓰기 위해 만든 곳으로, 1층에는 리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희선 씨의 사무실이, 2층에는 플리마켓이나 전시와 클래스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유 공간이 있으며, 부부의 작업실은 3층에 있다.
일산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망원동에 작업실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둘 다 시장 특유의 정겹고 오래된 분위기를 좋아해요. 망원시장이 한창 뜰 때쯤 놀러 왔다가 결혼 전 아내가 살았던 곳도 지나게 됐죠.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망원동의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마침 작업실을 꾸릴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죠.”
3가구가 살던 다세대 주택을 재생 건축으로 되살리고 싶어 몇 번의 디자인 수정 끝에 망원동 주택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도 세련된 외관을 갖추게 됐다. 하지만 외벽 정리부터 정화조 관리 등 건물의 기본적인 것들을 고치며 너무 힘들었던 이들 부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조희선 대표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고, 그러다가 조희선 대표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거의 1년간 지속되던 공사가 속도를 낸 것도 다 조희선 대표 덕분이라고.
그런데 집도 아니고 왜 작업실이었을까? “어느새 개그맨이 된 지 20년 차를 훌쩍 넘겼어요. 요즘도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작업실처럼 쓸 공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꼭 개그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죠. 아직 아이들이 어리지만 예전보다는 손이 덜 가거든요. 결혼 후 ‘경단녀’가 된 아내에게도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우리 부부 모두 제2의 인생을 준비할 공간인 거죠.”
작업실을 마련하자 부부의 라이프스타일도 조금씩 바뀌었다. 후배들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기 위해 자주 들르는 박성호 씨뿐만 아니라, 아내 지영 씨도 자주 이곳에 들러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도 새로운 공간을 좋아했다. 아내 지영 씨는 “아파트에서만 살던 아이들이 골목길의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 학원, 학교만 오가잖아요. 높은 건물 없는 망원동에 오니 굉장히 새로워하더라고요. 심부름도 자주 보내곤 해요(웃음)”라고 말했다. 조희선 대표의 사무실과 2층 공유 공간까지 공사가 완료되면 플리마켓을 시작으로 더욱 다양한 작업과 활동을 할 예정이다.
작지만 알찬 공간, JY Monster
3층에 있는 박성호·이지영 부부의 작업실은 66㎡(20평)대의 아담한 공간이지만 알차게 구성했다. 1층에서 바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넓은 테이블이 놓인 곳을 중심으로 작은 주방과 쉴 수 있는 방, 전시도 가능한 소규모 공간, 화장실이 자리한다. 또 루프톱과 연결되는 계단을 오르면 작은 야외 휴식 공간도 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유동적으로 공간을 만들었어요. 지금은 자유로운 오피스 공간이지만, 테이블과 조명을 떼어 전부 치우면 넓은 전시 공간이 되죠. 드레스 룸 가구를 제외하고 모두 치울 수 있고 도어도 슬라이딩으로 제작해 오픈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JY Monster’는 아내 지영 씨의 이니셜에 남편을 ‘몬스터’라 칭해 붙인 이름. ‘미녀와 야수’라는 뜻과,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몬스터’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공간에 딱 어울리는 네이밍이 됐다. 부부는 아이가 아직 어려 집에서는 시도하지 못한 바닥 타일과 과감한 패턴의 벽지를 사용하고 헤링본 마루로 공간을 나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분리했다. 또 작업실로 들어오는 계단에 화려한 스와로브스키 샹들리에를 설치해 럭셔리한 빈티지 스타일을 연출했다. 아이 있는 집에서는 하기 어려운 인테리어 디자인을 과감하게 시도하며 집을 꾸밀 때와는 또 다른 재미도 느꼈다.
특히 주방에는 최근 주목받는 인테리어 소재인 빅슬랩 포세린 타일을 사용했는데, 슬림하고 원하는 사이즈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닥 타일처럼 쪼개지지 않으며 크게 재단해 사용하면 좁은 공간이 확장돼 보이는 효과도 있어 조희선 대표의 추천으로 시공했다. 소파 베드와 의자, 소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제작 가구로 배치해 ‘어디서 본 것 같은’ 공간이 아닌 이곳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박성호 씨 부부와 조희선 대표의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으로 탄생한 이 공간은 어느 한구석도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서로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영감을 얻는 창조적이면서 재미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업실에서 이들 부부는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찾아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