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서는 슬픈 가사를 쓰지만 주위에 좋은 친구가 많아 외롭진 않았다. 노래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
지난 9월 12일 윤종신은 MBC 예능 <라디오스타>(이하 <라스>)에서 고별 인사를 건넸다. 그가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의 서브 코너로 시작해 단독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라스>를 비우는 것은 12년 만에 처음이다. 윤종신은 “<라스>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것이 영광스럽다. 나의 이야기에 웃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많은 걸 느끼게 하고 멋지게 떠나는 자리를 만들어주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라스>를 비롯해 Mnet <더 콜 2>에서도 하차하며 모든 방송 활동을 정리한 윤종신은 10월 중 해외로 떠나 세계 일주를 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2020 월간 윤종신 이방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랜 세월 외로움, 그리움, 쓸쓸함을 노래해온 그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상상만으로 떠남, 이방인, 낯선 시선 등의 감정을 표현해왔기에 스스로 ‘무경험의 창작자’라는 생각을 해왔다며, 이 생각이 이방인 프로젝트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윤종신은 살아온 곳을 떠나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고 잠적하는 것은 아니다. 매달 타지에서 느낀 감정을 노래로 발표하며 ‘월간 윤종신’의 활동을 이어갈 것이며, 해외에서 생활하고 음악 작업을 하는 모습을 영상 콘텐츠로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떠나기 전 “쉬기 위해 휴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곳에 일하러 가는 것”이라고 프로젝트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아티스트·예능인·사업가, 파격 행보
윤종신의 파격 행보에 엔터테인먼트업계는 들썩이고 있다. 그만큼 그의 행보는 이례적이다. 그동안 사건 사고 혹은 건강 이상의 문제로 휴식기를 갖는 이는 많았으나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겠다며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남다른 행보가 처음은 아니다. 국어국문과 학생이던 그는 음악 동아리에 가입해 교내 가요제에 참여했고 그것을 계기로 ‘015B’의 정석원과 인연을 맺어 가수로 데뷔했다. 객원 보컬이었던 그는 작사·작곡에 관심을 두더니 ‘싱어송라이터’가 돼 일상에서 마주하는 물건, 사소한 감정을 소재로 삼고 팥빙수를 소재로 한 노래를 히트시키기도 했다. 한창 싱어송라이터로 주가를 올리던 중 <라스> <패밀리가 떴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예능 늦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다 돌연 자신이 속했던 1인 기획사 신스타운을 확장해 ‘미스틱89’라는 기획사를 세웠다. 그는 조정치, 김연우, 하림을 비롯해 ‘투개월’, 박재정, 박지윤 등 특색 있는 뮤지션들을 모아 음악 전문 기획사로 성장시켰다. Mnet <슈퍼스타K>에서는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설득력 있는 평을 하고, 가수로서의 방향성을 조언하는 등 프로듀서로서 역할을 다하는 모습에서 그의 소속사가 음악 전문 기획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음악 활동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매달 한 곡의 노래를 내놓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통해 아티스트로서 활동해온 것. 2010년 ‘월간 윤종신’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라스>에 출연하는 게스트들에게 피처링을 부탁하는 등 개그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지만, 10년째 이어오면서 비로소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윤종신만 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음악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그 중 ‘좋니’는 댄스곡이 대세인 가요계에서 발라드 곡으로 차트를 역주행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최근 그의 소속사는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로 인수돼 ‘미스틱 스토리’로 거듭났다. 회사명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 윤종신은 단순 연예 기획사가 아닌 콘텐츠 제작사로서 성장하는 것을 꿈꾸는 듯하다. 그 시작은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다. ‘러브세트’ ‘썩지 않게 아주 오래’ ‘키스가 죄’ ‘밤을 걷다’까지 4개의 단편영화로 구성된 시리즈는 기획 단계부터 윤종신의 손을 거쳤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신선한 자극을 얻고 싶었던 윤종신이 여러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30분 이하의 단편 영상을 제작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겼다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4명의 감독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아이유를 그려낸 <페르소나>는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실험적인 도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창작자로서 전환점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윤종신은 문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크리에이터가 되고 있다. 그의 마음은 패션 브랜드와 함께한 뮤직 프로젝트 ‘이제 서른’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잘 드러났다. “1년 혹은 3년간 준비한 노래가 하루 만에 승부가 난다. 오후 6시에 공개하고 7시에 음원 차트에 들지 못하면 ‘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유저들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플랫폼이 구축돼야 창작자들이 휘둘리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다 윤종신은 ‘멋’이라는 곡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 빛나는 걸 포기 하지 마/다시 안 올 그대의 서른 출발해봐/ 짜치게 살지 마”라고. 이것이 윤종신이 안정된 삶을 떠나 방랑하며 신선한 음악 세계를 마주하려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아내 전미라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전미라는 “결혼하자마자 나한테 ‘너는 시합을 다니면서 이방인으로 살아봤잖아. 그 기분이 어때?’라고 물어봤다. 난 그때 이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계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종신은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대중의 기호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잘하는 것을 선보이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대중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평생 따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것을 통해 대중을 이끌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윤종신은 ‘이방인 프로젝트’가 기점이 돼 다양한 영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며 창작자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함에 도전하는 그의 이상적인 도전을 응원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