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예능 MBC <무한도전>(이하 <무도>)의 종영 후, 오랜 공백기 없이 예능에서 활약한 유재석. 하지만 시청률 30%에 다다르는 경이로운 기록과 강력한 팬덤 및 화제성을 지닌 프로그램의 진행자였던 이전의 명성 때문일까? 새로운 '유재석표 예능'은 저조한 시청률과 함께 화제성도 없이 폐지 수순을 밟았다. 일각에선 유재석의 시대가 저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무도> 종영 후 유재석의 행보를 살펴보자.
첫 번째 선택은 넷플릭스의 <범인은 바로 너!>였다. 7인의 탐정단이 10개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가는 버라이어티 게임쇼로, 방영 전에는 <크라임씬>과 같은 '롤 플레잉 추리 예능'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넷플릭스에서 만든 <런닝맨>'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면서 미션을 단계별로 해결해 단서를 찾는 구조였기 때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소재와 전개가 돋보이는 프로그램을 내놓는 넷플릭스인지라, <런닝맨>과 유사한 플레잉이 식상하다는 반응이 상당수였다.
8명이 동거하며 사라진 1,000만원을 찾는 SBS <미추리 8-1000> 역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그동안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블랙핑크' 제니와 손담비가 출연해 신선하긴 했으나 <패밀리가 떴다>와 <런닝맨>을 오묘하게 섞어놓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JTBC <요즘애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애들>은 소리 소문 없이 종영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과거의 화제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듯했으나 시즌2를 시작하면서 무섭게 상승세를 타고 있다.
몸으로 부딪히는 '야외' 예능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했던 유재석이 다시 공격적인 활동에 나서는 모양새다. <무도>의 김태호 PD와 의기투합한 MBC <놀면 뭐하니?>와 토크에 강한 그의 장점을 십분 살린 tvN <일로 만난 사이>를 통해서다.
유재석이 쉬는 날마다 김태호 PD에게 전화해 자주 했던 말을 프로그램 이름으로 만든 <놀면 뭐하니?>는 '릴레이' 방식을 띠고 있다. 카메라를 이어받거나 음원을 이어받는 식이다. 첫 방송은 스타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동한 카메라가 담아낸 인물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릴레이 카메라' 형식이었으며, 최근엔 유재석이 '체리필터'의 손스타에게 배운 드럼비트를 바탕으로 작곡가들이 음원을 붙여나가는 릴레이 작곡이 전파를 탔다.
<일로 만난 사이>는 이른바 '구슬땀 예능'이다. 일로 만난 사이답게 쿨하게 같이 일하고 번 돈을 나를 위해 쓴다는 명확한 콘셉트에 따라 유재석과 출연한 게스트들은 열심히 노동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 첫 회에는 게스트인 이효리·이상순 부부와 제주도 녹차 농장에서 일하며, <패밀리가 떴다> 출연 당시 '국민남매'로 사랑받은 이효리와의 '케미'를 선보였다. 어색한 듯 대화를 이어가던 유재석과 이상순의 조합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어 차승원, 유희열, 정재형이 게스트로 출연해 유재석과 호흡을 맞췄다.
캐릭터 변화와 속내 고백으로 차별화
그렇다면 이전의 프로그램과 두 예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미묘하게 달라진 유재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유재석의 트레이드마크로 통했던 '착한 진행' 대신 뻔뻔하고 얄미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프로그램의 메인 MC로서 방송의 흐름과 멤버들의 비중 및 포지션을 절묘하게 조율하는 배려형 진행을 보여줬던 그다. 사소한 부분을 캐치해 분량이나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으로 서장훈, 김C, 조정치, 엄현경 등의 신스틸러를 탄생시킨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엔 뮤지션들 앞에서 "내 비트가 음악계를 통일시켰다"라는 뻔뻔한 멘트를 하는가 하면, 이효리와 티격태격하고 차승원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등 웃기는 예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두드러지는 점은 '완벽한 존재'로 보여 '유느님'으로 불리던 그가 육아를 비롯해 커리어 등에서 느끼는 고민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친근한 인간미를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런닝맨>의 추격전을 위해 금연했던 그이지만 예능을 찍기 위한 체력 관리로 헬스를 할 뿐 운동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예능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속마음을 내보여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그뿐만 아니라 까부는 아들 지호를 보며 "그러지 마"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닮은 것 같아 뜨끔뜨끔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현실 육아 중인 아빠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눈여겨볼 것은 유재석이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무모한 도전>에서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하고 황소와 줄다리기를 했던 그 시절처럼 몸으로 부딪히는 예능을 하기 시작했다.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런닝맨>을 비롯해 <유 퀴즈 온 더 블럭> <놀면 뭐하니?> <일로 만난 사이> 모두 체력 소모가 상당한 예능이다. 추격전을 벌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고된 노동을 자처한다. 쉬운 길로 갈 수 있음에도 유재석이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무도> 팬미팅에서 그가 한 말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을 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한 번만 개그맨으로서 기회를 달라고. 대신 소원이 이뤄졌을 때 초심을 잃고 모든 것이 나 혼자 일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누구보다 큰 아픔을 받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고요."
<무도> 멤버, 요즘 뭐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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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
tvN <더 짠내투어>. KBS 2FM <박명수의 라디오쇼>, TV조선 <아내의 맛>에서 활약하고 있다. <무도>에서 보여준 '호통' '버럭' '투덜이'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메인 MC로 중심을 잡고 프로그램을 이끈다. 각 프로그램은 인기와 화제 면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있으나 박명수라는 캐릭터는 이전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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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
<무도> 종영 후 방송가에서 모습을 감췄다가 뮤지컬 <시티오브엔젤>로 복귀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매일 12시간씩 연습했다고. 뮤지컬 홍보차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고 있어 향후 방송 활동을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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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돈
'웃기는 거 빼고 다 잘한다'는 수식어를 갖고 있던 그는 <무도>의 타이틀을 벗고 자신만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는 중. <주간 아이돌> <아이돌룸>을 시작으로 <뭉쳐야 찬다>에서 예능감을 폭발시키고 있다. 또 틈틈이 '형돈이와 대준이'로 가수 활동도 이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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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
하차 후 <내 방의 품격> <런드리 데이> 등 갖가지 예능에 출연했으나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구해줘 홈즈> <같이 펀딩>에 출연 중. <구해줘 홈즈>는 시청자의 구미를 자극해 흥하고 있으며 김태호 PD와 함께 하는 <같이 펀딩>은 '아이디어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흥미를 끌고 있으나 아직까지 성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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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세형
<무도> 멤버로 합류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웃찾사> <코미디빅리그> 외에는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는 <무도>에서 특유의 깐족거림을 개그로 승화해 대세 예능인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전지적 참견 시점> <구해줘 홈즈>에서 활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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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광희
tvN <미쓰 코리아>, 올리브 <극한식탁> 등에 출연하며 예능 출연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전과 같은 '포텐'은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여러 나라를 여행한 사진이 가득해 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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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호
공식 멤버가 된 지 2개월 만에 <무도> 종영을 맞이한 비운의 멤버인 그는 유재석과 함께 <해피투게더>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토크에 재미를 더하며 존재감을 이어가는 중. 하지만 '프로불참러'와 같은 역대급 캐릭터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