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영화 <닥터 지바고>
국내 최대 여성지 <우먼센스>에서는 2019년 9월 19일부터 25일까지 6박7일의 일정으로 '러시아 문학 기행' 특별 여행을 실시한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체호프,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의 현장과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또한, 세계적인 미술품들이 소장된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도 둘러본다. 2019 러시아 문학 기행과 관련해 궁금한 점을 지난 호에 이어 Q&A로 알아본다.
『닥터 지바고』의 산실 페레델키노 파스테르나크의 집
Q 모스크바 외곽에 있는 『닥터 지바고』의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집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러시아 문학 기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이 작가 파스테르나크(1890~1960)가 살았던 페레델키노입니다. 이곳은 모스크바 인근의 작가촌입니다. 그가 살던 집은 별장 같은 외관의 아담한 이층집입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이곳에서 『닥터 지바고』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 여기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마당에는 작은 과수밭이 있고, 곧게 자란 키 큰 나무들이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파스테르나크가 이곳에서 살 때인 1958년 『닥터 지바고』가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면서 그는 러시아 국내에서 시기, 질투,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닥터 지바고』는 체제 비판적인 작품의 성격 때문에 러시아 국내 출판이 금지된 상태에서 원고가 비밀리에 국외로 반출돼 이탈리아에서 노벨상 선정 한 해 전인 1957년에 출판됐습니다.
당시는 지독한 독재자였던 스탈린이 죽고 스탈린 격하 운동을 펼치던 흐루쇼프 체제였지만, 소련 국내에서는 이 책의 노벨상 수상을 용납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노벨 문학상 선정 소식이 전해진 후 소련작가동맹은 파스테르나크를 제명했고 급기야 그는 국외로 추방당할 위기에 몰렸습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최고 권력자 흐루쇼프에게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저에게 죽음을 의미합니다"라는 청원서를 보냈습니다. 그는 국외 추방은 면했으나 결국 노벨상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Q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 수상 논란 후 오래 살지 못했지요?
노벨상 선정에 따른 국내의 극심한 논란은 그를 매우 지치게 했습니다. 그는 2년 후인 1960년 폐암과 심장병으로 페레델키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병사이지만 심적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파스테르나크의 집 1층, 그의 방에는 그가 숨을 거둔 청회색 소파와 벽에 걸린 그의 데스마스크가 방문객들에게 짠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닥터 지바고』가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그는 좀 더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생전에 타의에 의해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부했지만, 그의 사후 29년 되는 해인 1989년 아들 예브게니가 대리 수상을 했습니다.
Q 작가 사후 시베리아 수용소로 끌려간 작가의 애인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파스테르나크에게는 올가 이빈스카야(1912~1995)라는 애인이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이나 차이가 났지요. 이빈스카야는 편집자로 일하던 1946년 파스테르나크를 알게 돼 연인 관계가 됐습니다. 『닥터 지바고』의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의 관계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와의 관계 때문에 이빈스카야는 1949년부터 스파이 혐의로 5년이나 수용소 생활을 했고, 파스테르나크 사후에도 4년간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했습니다. 『닥터 지바고』 원고를 몰래 이탈리아로 빼돌려 출판하고 해외 인세를 불법으로 받았다는 혐의였습니다. 파스테르나크와의 만남으로 고난에 찬 생을 산 이빈스카야는 1995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Q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가 톨스토이 소설의 삽화를 그린 화가였다지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 레오니드 오시포비치 파스테르나크는 당대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래서 페레델키노 별장 안에는 그가 그린 삽화들이 많이 전시돼 있습니다. 레오니드는 톨스토이 소설 『부활』의 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버지 레오니드의 작품이 파스테르나크 집 박물관 전시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그곳은 마치 파스테르나크 부자의 박물관 같기도 합니다. 어머니 로자리야 이시도로브나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보리스는 4남매 중 맏이입니다. 아래로 남동생 하나와 여동생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예술가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유명인사여서 그의 집에는 예술인들의 방문이 잦았습니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저명한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르 스크리아빈,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 유명한 예술인들이 자주 찾아왔습니다.
Q 파스테르나크도 어려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다가 포기한 뒤 철학 공부를 하고 시인이 됐다고 하던데요?
파스테르나크는 12세 때부터 앞에서 말한 피아니스트 스크리아빈에게 6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음악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스승 스크리아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가의 길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1908년 모스크바대학에 진학해 처음에는 법을 전공하다가 철학으로 방향을 바꿉니다. 4년 후인 1912년 독일 마르부르크로 유학을 떠나 철학 공부를 계속하다가 이듬해인 1913년 귀국해 모스크바대학을 졸업합니다. 그리고 1914년 첫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내놓고 이후 본격적인 시인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1914년부터 2년간 가정교사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 뒤 우랄산맥에 위치한 군수품 공장에서 사무원 생활을 하기도 하지요. 당시는 1차 세계대전 중이었는데, 파스테르나크는 어렸을 때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 군 복무 대신 군수품 공장에서 일했던 것입니다.
그 후 구 소련의 스탈린 시절, 모든 예술인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시인으로서 창작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습니다. 그가 볼셰비키 혁명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그 시절 문인들에 대한 가혹한 숙청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스탈린의 고향인 그루지야(조지아)의 문학 작품들을 번역한 덕에 스탈린의 특별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파스테르나크는 소설을 『닥터 지바고』 단 한 편만 썼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Q 『닥터 지바고』는 영화로 더 유명해지지 않았습니까?
1958년 노벨 문학상 선정과 작가의 수상 거부로 유명해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1965년 영국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화해 세계적인 히트를 침으로써 더 유명해졌습니다. 데이비드 린은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영국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지요. 파스테르나크 사후 5년 되던 해에 이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영상미가 출중한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6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습니다. 책을 읽은 사람보다는 영화를 통해 '닥터 지바고'를 알게 된 사람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이집트 출신의 오마 샤리프와 영국 배우 줄리 크리스티가 남녀 주역을 맡아 열연했습니다. '지바고'의 본처인 순종적 여성인 '토냐' 역을 맡은 제럴딘 채플린은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영화감독인 찰리 채플린의 딸입니다.
Q 정작 러시아에서 찍은 장면은 없다면서요?
당연히 러시아에서 찍었을 것 같은데, 당시 냉전 상황이라 러시아에 갈 수 없었으므로 주로 스페인, 캐나다, 핀란드에서 찍었습니다. 캐나다에서는 로키산맥 밴프 인근의 레이크 루이스 기차역과 산맥 위의 빙하지대에서 촬영했고,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린 소설 속 우랄산맥 근처 바리키노의 얼음궁전은 스페인의 소리아란 곳에서 눈 대신 대리석 가루를 뿌리며 찍었다고 합니다. 핀란드에서도 열차 장면 등을 찍었습니다.
프랑스 출신 작곡가 겸 지휘자인 모리스 자르가 작곡한 발랄라이카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영화의 배경음악 '라라의 테마'도 유명하지요. 영화 속에서 '라라의 테마'의 배경으로 나오는 노란 수선화밭도 일품입니다. 『닥터 지바고』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로 더 널리 알려짐으로써 '러시아~' 하면 떠오르는 상징 중의 하나가 됐습니다.
Q 파스테르나크의 집을 방문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하기 전에 붉은광장과 바실리 성당 등도 둘러보지요?
모스크바를 상징하는 유명한 붉은광장을 빼놓을 수 없지요. 모스크바 크렘린 성벽 앞인데 생각처럼 크지는 않습니다. 광장 끝에는 아름다운 불꽃 모양의 첨탑으로 유명한 바실리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장을 사이에 두고 크렘린 성벽 맞은편에는 굼 백화점이 있습니다.
Q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침대 열차는 어떤 것인가요?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열차는 여러 종류입니다. 우리나라 KTX 같은 고속철이 있는데, 약 4시간 걸립니다. 철길로는 650km입니다. 찻길로는 710km라고 하고요. 이번에는 침대 열차를 이용하는데, 밤 11시쯤 출발해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다음날 아침에 도착합니다. 4인 1실의 침대칸을 이용할 예정입니다. 러시아 열차에서의 하룻밤도 좋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간 철도는 19세기 중엽인 1851년 11월에 부설된 것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는 모스크바의 레닌그라드 역에서 탑니다. 역 대합실에는 니콜라이 1세의 부조와 함께 철도 부설 기념 동판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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