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감정은 휘발성이 강해서, 일단 지나고 나면 그에 대해서는 기억도 할 말도 없어진다. 술에서 깬 뒤에는 술 취해 했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끈적한 사랑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가뭄 한가운데의 논처럼 온통 버석하게 갈라진 문장만 나온다. 꽤나 영민하다는 사람조차 판단력이 마비되는 그 불가해한 상태를 어떻게 또렷이 기억해내고 설득력 있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연애 가사를 쓰기 위해 앨범을 낼 때마다 연애를 한다는 가수를 백분 이해하게 된다. 사랑에 대한 글을 써야 할 때마다 연애를 할 수 없는 내 무능력이 서글플 뿐. 사실 문제는 연애를 할 수 없는 무능력이 아니라 글을 쓸 수 없는 무능력이다. 다나베 세이코를 보면 안다.
그가 뭉클한 연애소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썼을 때의 나이는 56세였다. 물론 글 쓸 당시 한창 연애 중이었을 수도 있지만, 50대의 사랑은 20대의 사랑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스물다섯 ‘조제’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 애틋한 말을 ‘쓰네오’에게 건넬 수 있었던 것은 그러므로 ‘능력’이다. 사랑의 언어를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남녀의 미묘한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
192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다나베 세이코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58년이었다. 이전에도 쇼인여자전문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라디오 드라마 작가로 일했으니, 글과 아주 먼 삶은 아니었다. 이후 1964년 <감상여행>으로 제5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상을 섭렵하고 급기야 2008년에 문화훈장을 받았다. 장단편 소설과 고전문학 편역, 평전, 에세이, 여행기 등을 합치면 600여 편에 달한다. 당연하게도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으로 옮겨진 것도 여러 편이다. 그가 연애소설의 대모라고 불리게 된 것은 젊은 여성의 촉촉한 감성을 잘 살려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랑을 풍성하게 그려낸 덕이다. “탐폰이고 생리대고 필요 없는 몸이 돼 천만다행이야. 젊은 아가씨들은 그런 걸 쓰며 현재의 젊음이 최고라 생각하고 청춘을 구가하겠지만, 진짜 좋은 시절은 그로부터 50년 뒤 모든 게 끝난 다음이지. 배속도 사타구니도 보송보송하고, 바람도 잘 통하는 지금의 몸 상태가 내 생애 최고다.” <두근두근 우타코씨>의 주인공 ‘우타코 씨’의 말이다.
일흔일곱의 ‘우타코 씨’는 지금 자신의 나이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골든 에이지’라며, 즐겁고 행복하게 연애를 한다. “70~80이 돼서 연애를 못 하면 대체 언제 하란 거냐? 뭐가 아쉬워 손자, 증손자나 보고 있으라는 거야. 사랑이니 연애니 찾고 있을 새가 없는 것은 너희같이 한창 일할 나이들이야”라는 ‘우타코’ 씨의 말은 연애와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사랑은 체력과 에너지로 하는 게 아니라 ‘설렘’으로 하는 거라는 다나베 세이코의 말은 깊은 설득력을 갖는다.
“자자, 인생은 설렁설렁 사는 거야. 아등바등하다가 제한 시간 끝나버려요” 라던 다나베 세이코는 2019년 6월, 향년 91세의 나이로 이 땅을 떠났다. 제한 시간이 끝났다. 그래도 아쉽지 않으리라. 그의 자유로운 목소리가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서가에서 넘실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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