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의 이일화는 TV 속 모습과 사뭇 다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큰손 엄마부터 카리스마 넘치는 재벌가 안주인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시청자와 만나왔기에 자연스럽게 억척스러운 이미지가 생겼고, 실제로도 털털하고 씩씩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일화는 차분하고 조용하고 여성스러운 사람이다.
‘여자’ 이일화에 대하여
이일화는 이번 화보를 위해 몇 주간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식단 관리로 부기를 빼고, 안 하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중요한 스케줄을 앞두고는 스스로를 바짝 조이는 스타일이에요. 운동도 하고 피부 관리도 하고…. 오늘 화보 촬영을 앞두고 PT를 다시 시작했어요. 늘 ‘운동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화보 찍으니까 해보자!’ 하고 시작했죠. 오랜만에 하니 힘들긴 했지만 기분은 좋더라고요. 요즘엔 물을 많이 마셔요. 꽃 수술을 말려 만든 ‘사프란’을 좋아해서 물에 우려 먹어요.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같은 다이어트 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나를 관리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긍정적인 마인드와 여유!”
그래서일까. 이일화는 세대를 불문한 여성들에게 ‘워너비’로 꼽히고 있다. 한마디로 닮고 싶다는 말이다.
“‘워너비’로 꼽혔다는 것 자체가 저를 더 자극하는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좋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스스로를 단련하고 관리하게 되죠. 더 노력하고, 더 좋은 거 먹고, 더 잘 자고,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차분하게, 조곤조곤 말하는데 또 할 말은 한다. 목소리에 강약이 있고, 눈빛 하나로도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여성스러운 카리스마란 바로 이런 거다.
“저는 제가 여자라서 좋아요. 다음에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가장 큰 이유는 엄마가 되어볼 수 있잖아요. 임신, 출산, 육아를 통해 여자의 삶은 더 풍성해지고, 스스로도 성장해요. 남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이죠.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 스스로가 사랑스럽죠. 이왕이면 편안한 여자이고 싶어요. 주변 사람들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그런 여자….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일화에게 스스로를 자평해보라고 했다. 자신의 가장 큰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체력 하나는 끝내줍니다.(웃음) 운동신경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종목이든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잘 따라 해요. 운동할 때의 제 모습을 얼핏 봤는데, 멋있던데요?(웃음) 그리고 사람을 미워하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저도 사람인지라 누군가가 미울 때가 있는데 그게 오래가지 못해요. 시간이 지나면 또 그 사람과 잘 지내려고 하고 있죠. 그래서 상처받았던 적도 많아요.”
배우도 사람이다. 촬영 현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로 가득하다. 그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또 치유받기도 한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간혹 현장에서 저와 비슷한 성향의 동료 배우를 만나면 그 마음이 너무 귀해요.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삶도 결국 ‘사람’이에요.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어요.”
그녀는 말을 잇다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저는 ‘이일화’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여건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재단 같은 걸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 의미 있는 걸 하고 싶달까요. 약한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아이들’에 대한 고민에 빠졌죠.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어른이 잘해야 하잖아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래서 전기차를 뽑으려고요.(웃음) 재활용품은 다 씻어서 분리수거를 해요. 그런 작은 실천이 모여 좋은 환경, 좋은 사회를 만드니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한테 집중하고 인내하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어요. 지금은 여유가 생겨 아이를 돌보려고 하는데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서 저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네요. 만약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이를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싶어요.
‘배우’ 이일화에 대하여
이일화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1991년 SBS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지금까지 약 70편의 작품을 거쳐 왔는데,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비슷한 캐릭터라면 패션 스타일과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었고, 그래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역할이라면 캐릭터의 걸음걸이나 말투를 다르게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배우의 의무란 대중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다.
“물론 내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만 하면 편하겠죠. 그렇지만 전 그런 뻔한 선택은 피해왔어요. 배우는 계속 도전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게 배우라는 직업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전 스스로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지 않아요.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그걸 보완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녀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어떤 작품에서 가장 빛났으며, 어떤 작품에서 가장 쓸모없었는지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엔 사람들이 저를 믿지 못했어요. 이일화라는 사람이 배우로서 검증되지 못했다는 거겠죠. 요즘엔 감사하게도 사람들의 눈빛에서 저에 대한 신뢰와 따뜻함을 느껴요. 물론 그만큼 부담감도 큽니다.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더 열심히, 더 잘해야 하니까요. 조금 욕심을 부려본다면 연기만이 아닌, 배우로서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요. 꾸며진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하죠. 이 또한 스스로 여유롭고 진실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일화가 꼽은 가장 빛났던 작품은 1995년 드라마 <바람의 아들>이다. 술집 여자 역할이었는데 이병헌을 짝사랑해 졸졸 쫓아다니는 조금은 귀여운 캐릭터였다. 어린 나이에도 맹랑하고 농염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시청자의 눈도장을 받은 작품이었다.
“<바람의 아들>은 너무 귀한 작품이에요.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저를 불러주는 작품이 몇 없었을 때 만났거든요. 잘하고 싶었죠. 열심히 했어요. 덕분에 칭찬도 많이 받았죠. 또 제가 꼽는 인생작은 <응답하라>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 덕분에 대중에게 사랑받게 됐으니까요. 아직도 ‘덕선이 엄마’로 알고 있는 분이 많아요.(웃음) 제가 꼽는 최고의 배우는 차화연 선배님이에요. 선배님과 연기했을 때 정말 좋았거든요. 그 눈빛, 그 목소리, 그 연기…. 잊을 수가 없어요.”
이일화는 선배, 후배, 동료들과의 관계에도 생각이 많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선배님들에게는 예의 바른 후배가 되려고 해요. 선배들이 살아온 연기자의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거든요. 저도 이렇게 힘든데 선배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거칠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선배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후배들에겐 잔소리 안 하는 선배입니다.(웃음) 연기할 때 실수하거나 NG를 내더라도 절대 혼내지 않아요. 차라리 그 후배 앞에서 더 열심히 연기합니다. 내 연기에 감정을 느껴서 후배의 연기에 플러스가 되도록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저 꽤 괜찮은 후배, 괜찮은 선배인 것 같아요.(웃음)”
이일화가 남긴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저는 내 인생, 내 삶, 내 사람, 내 연기, 내 직업을 너무 사랑합니다. 40년 후, 그러니까 90살이 됐을 때도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단언컨대 그녀는 꽉 찬 90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