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은 에디터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였다. 그녀는 부드럽지만 강한 오라를 냈다. 어떤 옷을 입어도 강수진답게 우아했기에 촬영장의 모든 이가 그녀에게 ‘입덕’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15살에 발레를 시작해 3년 만에 ‘10만 명의 발레리나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에 입학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발레리나로 거듭났다. 발레리나로서 최고의 길을 걷던 그녀는 50살을 앞두고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지금 그녀는 강수진답게 한 걸음씩 내딛으며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다. 물론 도전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발레리나가 아닌, 100명이 넘는 인원을 이끄는 위치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을 맡은 지 6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요. 누구에게나 책임감이 중요하지만 감독에겐 더욱 책임감이 필요하더군요. 소통, 겸손, 솔선수범과 같은 덕목도 중요하고요. 하지만 발레는 예나 지금이나 제 인생이에요.”
그녀는 어떻게 하면 국립발레단이 발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단원들이 더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발레리나에서 예술감독이 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시간 관리예요. 연습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밥 먹는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었는데 이젠 국립발레단을 위해 쓰는 시간이 우선이 됐죠.”
그녀의 말처럼 강수진의 하루 스케줄은 국립발레단으로 시작해 국립발레단으로 끝난다. 오전에 사무국 직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발레단의 청사진을 그리고, 점심엔 협찬사와 미팅을 하거나 단원들과 면담을 한다. 오후엔 단원들의 리허설을 지도하며 행복을 느낀다.
“각자 개성이 다르고 또 매력이 넘치는 후배들을 보면 국립발레단과 함께하기로 했을 때의 제 결심이 떠올라요. 모든 단원이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제 첫 목표였거든요. 6년의 노력이 쌓이니 많은 단원이 원석에서 빛나는 보석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저를 믿고 따라와준 단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죠.”
모든 백성을 만족시키는 군주는 없듯이 그녀 역시 모든 단원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외로움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인 강수진은 외로울 시간이 없다.
“한 가지 목표를 위해 모두 한마음으로 땀 흘리며 작업하면 좋겠지만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늘 그럴 순 없죠. 그럴 때면 가장 낮은 자세로 소통을 시작해요. 어물쩍 넘어가는 사소한 일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팀워크가 조금씩 다져지고 있으니 외로울 틈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복이 많은 사람이에요. 발레단에선 직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집에서는 남편과 강아지 써니와 시간을 보내니까요.”
강수진은 발레리나로서 은퇴를 2년 앞둔 2014년부터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여러 번 직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있었지만 늘 고사했다. 그랬던 그녀가 제안을 수락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생 신분이 보장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종신 단원직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일단 결심한 뒤에는 고민할 것이 없었다.
“2013년에 제안받았을 땐 느낌이 달랐어요. 지금이 고국을 위해 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죠. 남편은 흔쾌히 저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해줬어요.”
그녀의 한국행에 힘을 실어준 것은 남편 툰치 소크맨이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발레리노였던 툰치는 남편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춤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했다. 그는 발레마스터로서 강수진이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게 혹독한 훈련을 시켰고, 그녀가 정강이뼈 부상으로 1년 6개월 동안 발레를 쉬었을 때 곁을 지키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지금의 저를 있게끔 도와줘 감사할 분들이 많지만 딱 셋을 꼽는다면 부모님과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선생님, 그리고 남편이에요.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 발레가 너무 좋아 잘 때도 토슈즈를 벗지 않았던 15살 소녀의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마리카 선생님, 그리고 제가 발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 남편 툰치가 있었기에 제가 존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형용사로 수식되고 싶지 않아요. 그냥 강수진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발레리나 강수진이든,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강수진이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느낌 그대로 존재하고 싶어요.
전 그냥 강수진이니까요.
반려자 그 이상의 존재
인간 강수진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는 역시 남편이다.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며 한국에 온 툰치는 한동안 국립발레단의 객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남편은 인생의 반려자 그 이상의 존재예요. 타국에서 외롭던 저를 자상하게 보살펴줬는데 이젠 제가 툰치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이벤트나 뻔한 응원의 말보다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기에 이전보다 더 꼭 붙어 다니죠.”
강수진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행복하게 부부 생활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존중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대방과 저 자신에게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죠.”
강수진은 늘 여자로서 아름답기 위해 노력한다. 부부가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편안해지는 만큼 긴장감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20분이면 외출 준비를 마칠 정도로 기초화장만 하지만 제 곁에 오면 자연스럽게 좋은 기분이 들도록 은은한 향이 나는 가벼운 향수는 꼭 사용해요. 또 하루에 10분이라도 땀 흘리며 운동하고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을 기르는 것 같아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강조했다. 하나에 집중하면 그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 생각하는 성격인데, 앞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머릿속 스위치를 온, 오프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이를 한두 살씩 먹다 보니 휴식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요즘 하루에 20~30분씩 명상을 하며 온전히 나만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최근 한 국립발레단 단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뿜어내지 못하는 단원이 있었는데 얼마 전 보니 아주 다른 사람이 됐더군요. 어떤 이유인지 그녀가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으로 인해 편안해진 마음이 몸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때 깨달았어요. 자신을, 그리고 주변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요.”
여전히 발레만 생각하는 그녀에게 무대에 올랐던 30년의 인생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항상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시간이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누구나 인생에 업 앤 다운이 있어요. 업일 때는 항상 겸손하려고 했고 다운일 땐 그 상황을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요?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의미 있는 시간이에요.”
강수진은 그녀의 저서 <한 걸음을 걸어도 나답게>(인플루엔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의 무대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만나면 누구나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 파도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두 손에 꼭 쥔 열정을 놓치지 않는다면, 열정으로 벅찬 가슴을 믿는다면 그 무대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녀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 몰아치는 파도를 온전히 느끼며 인생 2막의 한 구절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20년 뒤에도 여전히 강수진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저는 그냥 강수진으로 존재하고 싶어요. 제 이름을 듣고 각자가 생각하는 그 느낌 그대로의 강수진이길 바라죠. 전 그냥 강수진이니까요.”
그녀의 말처럼 강수진을 표현하는 특별한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그녀는 언제까지나 ‘강수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