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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에 대해 물으신다면

연기한 지 20년이 됐지만 그는 늘 ‘초심’이다. 여전히 뜨겁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더 대단하다.

On July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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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은 쉬운 연기를 하는 법이 없다.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다. 그는 최근 종영한 KBS 수목드라마 <닥터 프리즈너>를 통해 다시 한 번 연기력을 입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첫 회부터 지상파 수목극 시청률 1위로 출발했으며, 종영까지 왕좌를 지켜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닥터 프리즈너>는 대형 병원에서 축출된 에이스 외과 의사가 교도소 의료과장이 된 후 펼치는 신개념 '감옥×메디컬 서스펜스' 드라마다. 남궁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수술 실력과 올곧은 신념을 지닌 응급의학과 에이스 닥터 '나이제' 역을 맡았다. 그는 가장 선한 얼굴부터 가장 악한 얼굴까지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남김없이 펼쳐 보이며 "역시 남궁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노력파' 남궁민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었다.

<닥터 프리즈너>에서 '다크 히어로' 연기

이 정도면 인생 캐릭터 아닌가요?
아직 부족하죠.(웃음) 아니라고 단정 짓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인생 연기를 펼칠 게 남아 있을 것 같아 인생 캐릭터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연기를 하면서 늘 부족하고 어렵다고 느끼거든요. 고백하자면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초반엔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요. 대사 한마디도 마음에 안 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100장 이상 일기를 쓰며, 내가 부족한 부분과 깨달은 것을 하나하나 적었어요. 방송이 시작되고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졌다고 할까요. 물론 <닥터 프리즈너>를 끝낸 뒤엔 스스로 '잘했어. 수고했어'라고 칭찬했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했으니까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크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없어요. 그거면 된 거죠.


대부분의 주연작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어요. 이유가 뭘까요?
작가님, 감독님과의 호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해도 외부적인 영향이 크거든요. 제 연기 방식과 작품이 얼마나 궁합이 잘 맞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운도 중요하죠. 드라마를 하면서 댓글도 잘 살피는 편이에요. 댓글을 보고 꽤 많이 반영하고, 감독님과 상의도 많이 해요. 그래야 더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수용해서 좋아질 수 있는 부분은 수용하려고 해요.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아요.
지난해 7월에 대본을 받아서 꽤 오랜 시간 '나이제'로 살았어요. 그래서인지 긴 여행을 마친 기분입니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아 막판에는 살이 저절로 빠지더라고요. 대부분의 배우가 그렇지만 드라마를 시작하면 동시에 다이어트를 시작해요. 저는 66~67kg 정도가 화면에 딱 잘 나오는 무게더라고요. 근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62kg까지 빠졌어요.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무사히 마쳤으니 괜찮아요.


'나이제'라는 캐릭터가 복잡다단했어요. 완급 조절이 필요한 '다크 히어로'랄까요.
배우라는 직업의 영향이 크겠지만 현실에서 저는 불의에도 잘 참는 편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직업이나 생계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는 분이 많아요. '나이제'는 참지 않고 풀잖아요. 그래서 연기하면서 속 시원할 때가 많았죠. 시청자들도 통쾌해하지 않으셨을까요?


발성도 조금 달라진 듯 보였어요.
현실적인 부분을 살려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발성을 들릴 듯 말 듯하게, 호흡을 조절하면서 속삭이듯 말했죠. 현실에서는 모든 말을 다 강하게 하진 않잖아요. 그래서 커피라든가 목을 건조하게 하는 건 자제했어요.


의사 역할을 자주 하지 않았나요?
진중한 의사 역할은 처음이라서 의사들을 직접 만나 배우고, 의학 전문 드라마도 섭렵했어요. 대사 하나하나에 대해 '실제'에 가까운지 물어봤죠. 일례로 수술용 칼을 부르는 의학 용어 '메스(mes)'가 있잖아요. 외과 의사에게는 메스란 단어가 일상 용어나 다름없더라고요. 수도 없이 반복해 말하는 단어였어요. 그런 단어를 긴장감 있게 사용하는 건 과하다고 생각돼 힘주어 말하기 싫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조율했어요.


주·조연들의 앙상블이 대단했어요.
사실 (최)원영 형은 엑스트라 시절에 만난 적이 있어 호흡을 맞추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시청자들이 지루해하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 관심이 떨어질 만한 부분을 형이 잘 채워준 것 같아 고마워요. (김)정난 누나도 드라마를 같이 해서 원래 알고 있던 사이였죠. (김)병철 형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어요.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었죠. '나이제'와 병철 형이 맡은 '선민식'이 주축이 돼 드라마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화를 자주 나눴어요. 대본 리딩과 리허설을 하면서 공유할 건 공유하고 상의할 건 상의했죠. 엎치락뒤치락하는 호흡이 잘 맞았고, 화면 속 모습도 썩 만족스러웠어요.


후반부에는 완성도가 조금 떨어지는 듯 보이기도 했어요.
드라마 촬영 현장은 어쩔 수 없이 후반부엔 바쁘게 돌아가죠. 그래서 인물들의 대사로만 사건 진행 상황을 설명하게 됐어요. 그 부분이 아쉬웠던 건 맞아요. 하지만 이런 일은 누구 한 명의 탓이 아니에요. 사전 제작을 하면 수정하면서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드라마를 촬영하는 일수 자체가 돈이기 때문에 사전 제작 촬영하는 분들도 빡빡하게 촬영하기도 하죠. 수많은 이해관계와 돈이 얽혀 있는 게 드라마 제작 환경이라 배우가 불평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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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많이 했어요. 촬영 현장에서도 주어진 것만 했죠.
스스로 숫기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한데 마흔이 넘으니 그런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편해지더군요.

현장에서 남궁민은 어떤 배우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전엔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의 시선을 내 것으로 만들까를 궁리했죠. 사실 연출 의도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 한데 작품을 하다 보니, 매 장면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들이 돋보이게 밀고 끄는 역할이 나에게 주어지면, 그리 따라가야 작품이 흥행되더라고요.


긍정적인 의미에서 성격이 조금 변한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엔 사람들과 단절된 생활을 많이 했어요. 주어진 것만 했죠. 스스로 숫기가 없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한데 마흔이 넘고 경력도 20년이 넘으니 그런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편해지더군요. 사람에게 벽을 두지 말고, 누군가를 만날 때는 최선을 다하고, 애로 사항과 오해를 살펴야 하고, 또 잘못된 것에는 목소리도 높여야 하더라고요. 이렇게 생각이 바뀐 데는 유준상 형의 영향이 컸어요. SBS 드라마 <조작>을 하면서 형을 만났는데, 누군가에게 선배의 모습이어야 된다면 형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 냄새 나고 훌륭한 선배죠. 저 역시 준상 형의 자취를 따라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 이번 드라마를 마친 다음 날 바로 유준상 형 집에 가서 연기 얘기를 나눴을 정도로 제게 긍정 에너지를 주는 형님입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집에서 영화 보는 것 외에 취미가 없어요. 예전에는 연예인 친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닫혀 있었지만 이제는 동료들에게 한잔하자고 먼저 연락하기도 해요. 같은 일을 하는 선후배 연기자들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술 한잔하는 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 중 하나예요.


사비를 털어 개인 스태프들과 하와이 여행을 간다고 들었어요.
그 이야기가 기사로 나와 부담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네요.(웃음)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쉽게 변하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들은 내 가족 같아요. 3년을 함께 일한 스태프예요. 드라마 시작하기 전에도 함께 여행을 갔었고, 촬영이 없을 때도 같이 영화 보고 밥 먹는 사이죠. 고민을 공유하고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죠. 제가 아무리 엄마한테 직업적인 고민을 토로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드라마 1회부터 10회까지 한 번도 빼지 않고 다 같이 봤습니다.(웃음)


작품을 선택하는 나름의 소신이 있나요?
저는 스스로 대본을 보고 만족하고, 즐겁고,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내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좋아요. 장르나 캐릭터를 따지면 일 년에 한 편 이상 만나기가 힘들더라고요. 좋은 작품만 하고, 시청률 잘 나오는 작품만 하면 좋겠지만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에요. 연기 빼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삶에 이유가 없죠. 저는 생각하는 배우의 길로 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저의 부족한 점을 인정해야죠. 부족함을 인정했더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남궁민이 생각하는 자신의 부족한 점은 뭘까요?
연기력이 부족하죠.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죽을 때까지 해도 채워지지는 않겠지만, 그런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욕심과 노력이 남궁민을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후배들이 간혹 저한테 물어요. "어떻게 하면 연기 잘해요?" 하고요. 신인 시절 저는 연기를 못했어요. 그래서 전 후배들에게 "그때의 나보다 네가 5배는 연기를 잘할걸" 하고 말해줘요. 결국 계속 노력하면 되는 거죠. 저는 연기를 정말 못해서 촬영장에서 쌍욕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인간 이하의 대우도 많이 받았는데 꿋꿋하게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씩씩하니까 더 욕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누가 연기를 시켜서가 아니라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조만간 예능에 출연한다고 들었어요.
편한 모습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사실 저는 타고나길 예능을 못해요.(웃음) 토크쇼에 나가면 '내가 왜 저러고 있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안 되더라고요. 심장이 너무 뛰고, 웃기려고 해도 안 웃기고, 목소리는 저음으로 바뀌더군요. 농담하는 걸 사람들이 진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속상하기도 해요.(웃음) 사람들이 "너는 연기할 때가 제일 나아"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드라마를 하면서 홍보 안 하는 배우는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꼭 해야 할 예능이 있다면 열심히 해봐야죠. 예능 감각은 없으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웃음)


차기작에 대한 계획이 있나요?
좋은 대본, 제가 자신 있는 대본이 있으면 할 거예요. 연기가 돈을 벌기 위한 생활 수단이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고 책임질 수 있는 작품이라면 성공 여부를 떠나 도전할 생각이에요.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치유되고 깨닫는 것도 있어 그냥 꾸준히 하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고 자신 있는 작품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웃음)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935엔터테인먼트 제공
2019년 07월호
2019년 07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935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