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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배우 문소리

문소리가 민낯으로 기자와 마주했다. 예쁘다. 조막만 한 얼굴, 투명한 피부, 담백한 패션 감각. 거기다 자연스러운 행동 하나하나, 고백하건대 ‘좋아하는 배우’ 문소리다.

On June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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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하다. 한데 그 털털한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고 적당해서 매력적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도 진심이 묻어나는 언변 때문에 그녀와의 인터뷰는 늘 특별하다.

그녀가 신작 <배심원들>을 들고 컴백했다.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로 생애 처음 누군가의 죄를 심판해야 하는 배심원들과 사상 처음으로 일반인들과 재판을 함께하는 재판부까지, 보통 사람들의 가장 특별한 재판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문소리는 첫 국민참여재판의 재판장 '김준겸'으로 분했다. 18년간 내리 형사부를 전담했을 만큼 강단과 실력 있는 판사다.

타고나길 '적당히'가 안 되는 성격

완성된 영화를 본 주연배우의 소감은요?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걱정이 되는 거죠. 늘 마음은 그래요. 우선 배우들은 영화를 보고 만족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결과물이 나왔으니까요. 이번 영화는 조금 특별했어요. 튀는 배우가 없었고, 서로 세워주고 만들어주는 연기를 했거든요. 많은 걸 얻은 영화예요.


부장검사 역할인데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나요?
'김준겸'은 권력 지향적이거나 주류에서 잘나가는 판사는 아니에요. 자신의 소신과 실력으로 버텨온 인물이죠. 그런데도 법원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겠죠. 윗사람에게는 강직한 태도지만 배심원들을 대할 때는 인간적인 면모도 지녔는데, 이 모든 것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판사 역할이라 그런지 말투가 독특해요. 롤모델이 있었나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실제 판사를 만나 조언을 들었고 재판을 방청하기도 했어요. 비법조인은 판사라는 이유로 말의 무게를 비슷하게 느끼는데, 실제 재판을 방청해보니 판결문 문체도, 판사들의 말투도 저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 스타일대로 소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 판사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저보다 나이가 어린 판사도 많았는데 시나리오를 모니터해주며 "문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카카오톡으로도 "부장님"이라고 호칭해서 물어봤더니 "실제로 법원에 계신 부장님 같다"며 용기를 주더군요. 특별히 롤모델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말투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뭔가요?
한 우물을 깊게 판, 오랫동안 집중해서 같은 태도로 한길을 간 사람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단단한 자긍심이랄까요. 세공이 화려한 보석이라기보다 굉장히 순도가 높은 순금 같은 느낌요.


극 중 인물과 실제 성격을 비교해본다면요?
실제 저 역시 보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결혼반지도 결혼 전에 일본의 한 작은 주얼리 숍에서 심플하게 만든 백금 실반지예요. 백금이 변치 않는다고 해서 맞췄는데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는 '김준겸'의 성격이 실제 제 성격과도 비슷한 면이 있죠. 남편(장준환 감독)이 저를 가리켜 '뭘 한번 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한번 엔진이 발동되면 그 끝에 뭐가 있는지 봐야 하는 부류이긴 해요.


연기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뭔가요?
'말'이라는 게 감정이 담기면 의미가 잘 통하잖아요. 그런데 법률 용어가 섞인 판결문은 마음속에 그다지 와 닿을 것 같지 않았어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제가 판결문을 읽는 장면인데, 그 장면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내내 걱정스러웠어요. 양수리 세트장에서 그 장면을 촬영했는데, 촬영 전에 한 시간 정도 강가를 걸었어요. 그때까지도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잠을 못 잤다고 들었어요.
계속 고민했죠. 어떻게 하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로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요. 촬영 하루 전날 세트장 근처에 미리 가 있었는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조한철 선배와 1층 커피숍에서 만났어요. 둘이 맥주 한 잔을 두고 앉았는데 선배가 '박근혜 탄핵' 주문을 읽은 이정미 판사의 판결 동영상을 틀어놓고 중얼거리는 거예요. 연기에 반영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선배의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걸 아무렇지 않게 물끄러미 보다가 들어와서 잠이 들었죠. 그리고 아침이 됐어요. 제가 커피를 끊은 상태였는데, 현장에서 커피 향이 나는 거예요. "오늘은 커피 한 잔 마셔볼까" 했더니 배우 태인호가 정성 들여 커피를 내려줬어요. 밖으로 나가 햇살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고 촬영에 들어갔죠. 응원도 위로도 받았던 현장이었어요.


수더분한 의상도 인상적이었어요.
밤을 새우는 직업이니까요. 이정미 판사는 미처 헤어롤도 정리하지 못한 채 나왔잖아요. 부랴부랴 와서 재판에 집중하는 거죠. 현실감을 살리고 싶었어요.


법복이 꽤 잘 어울렸어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대법관이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지의 꿈,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헌데 그때마다 저는 웃으면서 착한 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죠. 저는 지금도 TV에서 방영하는 무서운 사건을 못 봐요. 화면으로 피를 보는 것도 무섭고 공포영화도 못 봐요. 그래서 어렸을 때 판사나 의사보다는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죠.


권해효 씨와 맞추는 호흡을 보는 재미가 있어요.
선배가 워낙 코미디 연기를 잘하시잖아요. 연극도, 영화도 함께한 가족 같은 선배예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다른 나라에서>(2011)에서는 부부로 출연했어요. 당시 저는 실제로도, 극 중에서도 만삭이었어요. 변산반도에서 촬영했는데 아침마다 운동한다고 동네를 걸으면 보시는 분들마다 "아이고, 아이는 어디서 낳을 거야?"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셨어요. 가까운 병원이 2~3시간 걸렸거든요. 동네에서 아이를 많이 받아보신 할머님이 제 아이를 받아주신다고 하고, 또 어떤 할머님은 미역국을 끓여주신다고 하고….(웃음) 그렇게 촬영했던 기억이 있어요. 권 선배와는 워낙 추억이 많아요.


"문소리가 있는 현장은 늘 분위기가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번엔 어땠나요?
현장은 좋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모든 배우가 한마음으로 같은 고민을 했다는 거예요. 제가 홍 감독에게 그랬어요. 많은 능력이 있는 분이지만 가장 훌륭한 능력은 이 배우들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라고요. 모든 배우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몫을 충실히 했어요. 결국 감독의 힘이라고 봅니다.


함께 극을 이끄는 후배 배우 박형식에게는 어떤 조언을 했나요?
초반에는 긴장한 것 같았어요. 그러더니 제게 SOS를 치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조언보다는 제 첫 영화 얘기를 들려주며 다독였어요. 연기에 대한 얘기를 하면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 흔들릴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가 차츰 마음을 열고 다른 배우들과 하나가 돼 움직이더라고요. 사실 형식이는 드라마에서 주인공도 많이 했지만 아이돌 출신이잖아요. 그 부담감을 떨치지 못할까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인데, 어느 순간 확 변하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어요. 빛이 났다고 해야 할까요.


박형식은 한 인터뷰에서 문소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첫 촬영 날 27번 가까이 테이크를 갔는데, 결국 문소리 누나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문소리 누나밖에 없었다. 매 순간 힘이 됐다."


어떤 선배인가요?
형식이는 처음부터 나를 누나라고 부르더라고요. 아무래도 영화만 19년째 하고 있어서 현장에서는 다들 어려워하는데 바로 누나라고 불러줘서 고마웠어요. 전 현장을 돌아다는 걸 좋아하는데 모든 사람이 절 보면 앉으라고 해요. 노약자, 임신부도 아닌데 말이죠.(웃음)


문소리 감독의 차기작은 언제 볼 수 있나요?
계획된 바는 없어요.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몰라도 직업인으로서 감독이 되고 싶은 마음은 크지 않아요. 배우로 충분해요. 그리고 감독은 집안에 한 명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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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더 바빠요.
아이 학교 보내려면 늘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아침부터 전쟁이죠. 여느 엄마들과 똑같아요.

여느 엄마와 비슷한 일상

일상으로 돌아간 문소리의 모습도 궁금해요.
언제 그랬냐는 듯 생활인 문소리로 돌아옵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오히려 더 바빠요. 아이 학교 보내려면 늘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전쟁 같은 하루죠. 여느 엄마들과 똑같아요. 오히려 일을 할 때가 안정감이 있어요. 연기만 하면 되니까요.


문소리는 지난 2006년 장준환 감독과 결혼해 2011년 딸 연두 양을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영화사 이름을 '연두'라고 지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떤 아내인가요?
처음 결혼했을 때 몇몇 분이 준하 씨가 저에게 잡혀 살지 않을까 걱정하듯 이야기했는데, 저희와 시간을 보낸 분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재미있어해요. 설경구 선배와 개인적으로 친해서 다 같이 술을 마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남편과 저는 존대를 하는 반면, 경구 오빠와는 말을 편하게 해요. 제가 경구 오빠에게 "번데기 시켜?" 하다가도 남편한테는 "번데기 괜찮으시죠?" 물어봐요. 그러면 경구 오빠가"누가 보면 너랑 나랑 부부인 줄 알겠다"며 웃어요. 주변에서는 그런 저희 부부의 모습을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존대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결혼 직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교제 사실을 비밀로 하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소리 씨" "감독님"이라고 호칭했고, 그게 습관이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도 부모님과 같이 사니까 반말이 쉽게 안 되더라고요. 지금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에서도 일을 할 때처럼 변함없이 완벽주의자인가요?
'적당히'는 안 되는 성격이에요. 얼마 전에 부모님이 열흘간 여행을 가셨어요. 일도 하면서 아이를 돌보려니까 체력적으로 힘들더군요. 간단히 먹여 학교에 보내면 될 텐데 그게 안 돼요. 결국 나물을 무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남편이 걱정하더라고요. 이런 성향은 타고나는 거 같아요. 적절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하고 산뜻하게 '스톱'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반면, 엔진이 한번 발동하면 끝에 뭐가 있는지 가봐야 하는 사람도 있죠. 이제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어요.(웃음)


데뷔 19년이에요. 매너리즘에 빠진 적은 없나요?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매너리즘에 빠지긴 어려운 것 같아요. 연기 햇수가 늘어나고, 작품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안정적이진 않거든요. 새로운 작품, 새 감독, 새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이 되니까요. 그러게요, 어느덧 데뷔 19년이 됐어요. 배우로서 책임감이 느껴지는 나이죠. 배우 개인으로서 지향점보다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제가 재미있는 길로 가려고 해요. 좋은 동료들과 함께 흥미로운 과정을 탐험하다 보면 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요.


그녀가 찾아가는 흥미로운 탐험이 무엇인지 지켜보자. 문소리는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제공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2019년 06월호
2019년 06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제공
씨제스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