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탈코르셋'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을 말한다. 몸매가 날씬해 보이도록 상반신을 꽉 조이는 보정 속옷인 코르셋. 예전에는 코르셋을 과하게 착용하다 갈비뼈가 부러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스칼렛 오하라 역의 비비안 리가 잘록한 허리를 만들기 위해 침대 기둥을 부여잡고 있고, 흑인 유모가 그의 허리를 있는 힘껏 조여 코르셋을 입히느라 진땀 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만 보더라도 코르셋이 여성성을 강요하며 신체의 자유로움을 억압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코르셋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래는 남성을 위한 것이었다. 남성 군인들이 갑옷을 입을 때 허리를 보호하고, 좀 더 건장한 상반신 몸매를 만들기 위한 보정용 장치였다고 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 여성의 전유물이 되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다.
그동안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한 '여성스러움'의 사회적 정의를 거부하고 여성의 자유와 주체성을 찾는 운동인 탈코르셋. 여성에게 당연시됐던 '여성스러움'이라는 외적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로 짙은 화장이나 긴 생머리, 하이힐과 미니스커트 등 여성스러운 복장과 과도한 다이어트 등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운동이다. 무조건 '화장 노(No)' '긴 머리 노' '브래지어 노'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돼 '스스로 주체가 되자'는 것이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화장을 시작해 중고생이 되면 화장을 안 하는 여학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풀 메이크업에 렌즈를 끼고 타이트하고 짧은 교복을 입는 것을 전형적인 여학생의 복장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10대들 사이에서 '탈코르셋 인증'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헐렁하고 편안한 교복을 입거나, 화장품을 폐기하고, 머리를 짧게 자르거나, 안경을 쓰는 등 편안함을 강조한 사진을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탈코르셋은 주로 10대와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SNS에서는 짧은 커트 머리를 하거나, 립스틱을 부러뜨리는 등 화장품을 버리는 모습, 노 메이크업의 얼굴 등 자신이 탈코르셋에 동참하는 모습을 인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가 됐다.
페미니즘에 대해 소극적인 일본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일부 여성 사이에서 '쿠투(#Kutoo 하이힐을 신지 않을 권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 일본어로 '구두'를 뜻하는 '쿠쯔(靴)'와 괴로움을 의미하는 '쿠쯔(苦痛)'의 '쿠(Ku)'와 '미투(MeToo)'의 '투(Too)'가 결합한 신조어로 백화점이나 호텔 등 일부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일정 굽 높이 이상의 하이힐 착용을 의무화하거나 권고하는 상황에 대한 거부 운동이다. 지난 1월 배우 이시카와 유미가 자신의 SNS에 '남성들은 납작한 신발을 신는데 왜 우리는 하이힐을 신어야 하나'라는 문제를 제기해 시작됐다. '여성들이 일할 때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관습은 없어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이다. 해당 글은 3만 회 이상 공유됐고 자신의 경험을 글이나 사진으로 올리는 여성도 많았다. 이시카와 유미를 중심으로 서명 운동이 진행됐고 이를 일본 후생노동성에 전달해 '기업의 하이힐 착용 규정을 금지하는 법안' 등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출간 4개월 만에 13만 부 넘게 팔려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도 일본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좋은 예이다. 최근 젊은 부모 사이에서는 '젠더 플루이드' 현상이 늘고 있는데 남자아이에게 치마를 입히거나 여자아이에게 핑크색이 아닌 파란색 옷을 입히고 머리를 짧게 자르는 등 성별과 상관없이 아이의 취향에 따라 스타일을 결정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성역할을 구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성평등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탈코르셋을 경험한 이들 중에는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다 보니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다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가 많다. "심지어 어느 직장에서는 립스틱 색깔까지 통제하는 등 여성들이 꾸밀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한 것이 사실이다. 여성에게만 이런 통제를 하는 것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탈코르셋 운동이 생겼다"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현재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는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을 새로운 측면에서 보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매뉴얼화돼
'이렇게 해야 탈코르셋이다'라고 규정 짓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우려된다.
그런 분위기가 불편해서, 혹은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전에 분위기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체가 되어 참여해야 한다. 개인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사회구조적으로 일반화해 문제 제기를 하고 의식과 체계를 바꾸려는 방식이 더 필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PART 01 / 꾸밈 노동을 거부한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머리에는 헤어롤을 말고 열심히 화장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민낯으로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면 마치 예의에 어긋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꾸밈 노동'은 화장, 패션, 다이어트, 용모 관리 등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적인 요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여성의 직장 유니폼, 화장을 강요하고 안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정 등으로 인해 할 수밖에 없는 노동이다. 여성은 직장에 출근하기 전부터 노동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남성도 정장에 넥타이를 맬 것을 요구당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의 꾸밈 노동을 좀 더 당연하고 엄격하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꾸밈 노동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등장하고 직원 유니폼을 없애는 은행도 생겼다. 지난해에는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는 샤넬 코리아 직원들이 사측에 꾸밈 노동 수당을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화장 안 한 민낯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며 편안한 복장을 추구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 20~29세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비비안의 소비자 조사도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준다. 속옷을 구입할 때 고려하는 사항에 대해 2017년 상반기에는 '볼륨을 살려주는'이라는 항목을 1순위로 꼽은 비율이 13%였다가 2018년에는 9.7%로 감소했다. 반대로 '착용감이 좋은'이라는 항목은 22.7%에서 25%로 증가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보다는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다. 이현재 교수는 "이제는 여성의 편안함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편안함이 다시 미와 결합하는 시기가 온 것이고, 이러한 사회적인 움직임에 기업들도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속옷
탈코르셋과 일맥상통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거나, 와이어와 패드가 없는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이다. 브래지어는 소화와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피부 질환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집 바깥에서 노브라를 하기는 아직 쉽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노와이어 브래지어와 브라톱처럼 가슴을 억지로 조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실루엣과 편안한 착용감의 속옷이다. 가슴에 패드가 달린 티셔츠인 인서트 에어 패드 티셔츠나 패드가 달린 캐미솔 등을 입어 노브라를 실천하는 여성도 늘었다. 속옷 브랜드 비비안은 편안하면서 핏까지 살릴 수 있는 브라렛 등 노와이어 제품 판매량이 지난해에 그 전년에 비해 20% 증가했다고 밝혔다. 브라렛의 판매량은 무려 160%나 늘었다고.
미국의 속옷 브랜드 에어리는 마른 모델이 아닌 평범한 몸매의 모델을 기용했고, 보정을 하지 않은 화보를 선보였다. 자연스러운 셀룰라이트를 그대로 노출해 매년 20% 이상 매출 증가 효과를 가져왔다. 반대로 전 세계 속옷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가 역대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기업인 L브랜드(LBrands)의 주가가 1년 전보다 60%가량 폭락하고 지난해 총 매출액이 전년 대비 5.1%가 감소하는 부진을 겪었다.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예전처럼 빅토리아 시크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가짜, 억지의 이미지가 강하다"고 답했다. 작년 초 미국 팝스타 리한나는 속옷 브랜드 '새비지×펜티 (SavageXFenty)'를 론칭했다.
첫 패션쇼 당시 섹시하고 마른 모델 대신 임신부 모델 등 다양한 체형의 모델을 기용해 폭넓은 사이즈의 속옷을 선보였다. 또 뒷모습의 실루엣을 고려해 몸에 딱 맞는 삼각팬티를 입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착용감이 좋은 트렁크나 드로어즈 등을 입는 여성이 늘고 있다.
1 착용감이 우수하고 삼각 부직포 패드가 핏을 잡아주는 브라렛 BR890A 11만5천원 비비안.
2 쾌적하고 착용감이 좋은 AIRism심리스 V넥 브라캐미솔(헤더) 2만9천9백원 유니클로.
3 신축성 있는 소재의 플로럴 푸시업 브라렛 3만 9처9백원 에어리.
생리대
생리대 파동으로 시작된 건강한 생리대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에 고가일지라도 안전한 성분의 생리용품을 구입하는 여성이 많아진 것. 유기농 면 생리대, 생리컵, 스마트 생리컵 '룬컵' 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생리컵 '룬컵'은 센서를 통해 생리량, 혈색, 주기, 심부 체온 등의 정보를 측정할 수 있다. 이 정보를 토대로 생리불순, 월경과다, 자궁근종 등 부인과 질병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 아예 생리대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생리팬티도 인기다. 속옷 자체에서 분비물을 흡수하는데 한 번 착용 시 최대 10시간까지 유지할 수 있다. 생리팬티를 입은 후 생리불순, 생리통, 피부 짓무름 증상이 완화됐다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생리'라는 말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왔다. 그래서 '그날, 빨간 날, 마법에 걸린 날, 여성만의 날' 등의 용어를 사용했다. 이런 금기를 깨고 지난해 나트라케어는 국내 생리대 광고로는 처음으로 '그날'대신 '생리'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했다. 생리에 대한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아내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생리 자체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일이 어느 여성에게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응급실 신세를 질 정도로 힘든 고통이라는 것을 생리통을 겪어본 여성들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렇다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피임 장치 시술을 하는 여성이 많아졌다. 단순한 피임이 목적이 아니라 생리통, 배란통, 생리 전후 여러 증상을 겪는 월경전증후군(PMS) 등 자신의 신체 증상을 스스로 조절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레나'는 루프처럼 자궁 안에 삽입하는 것으로 일정 기간 임신을 막는 것은 물론 생리과다와 생리통 치료에 널리 이용되기도 한다. '임플라논'은 팔뚝 등 피하지방에 삽입하는 방식이다. 둘 다 본인이 원할 때 제거하면 임신이 가능하다. 임상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동안 여성들조차 생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혐오와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몸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스스로 선택해 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헤어 & 메이크업
'개강 여신'이라는 말이 있다. 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에 학교로 돌아왔을 때 몰라보게 예뻐진 여학생을 뜻하는 말이다. '개강 여신 되는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이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 메이크업에 짧은 머리, 안경을 쓰는 등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으로 등교하는 여학생이 늘고 있다. 파운데이션 프리도 유행처럼 번지며 집 밖으로 나서기 전 화장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여겨온 고정관념을 깨고 민낯을 공개하는 여성이 늘고있다. 여고생들도 SNS에 화장품을 폐기하는 사진을 올리며 메이크업 거부 운동에 나섰고 렌즈 대신 안경을 쓰는 아나운서도 등장했다. 노 메이크업으로 공식 석상에 서는 연예인도 많아졌다. 외국에서는 기네스 팰트로, 메간 폭스 등이 대표적이다.
영국의 걸 그룹 '리틀 믹스(Little Mix)'는 신곡 '스트립(Strip)'의 뮤직비디오에서 두꺼운 메이크업과 불편한 의상을 거부했다. 음악성 대신 외모로만 평가받는 아이돌 그룹의 현실을 '보디 페인팅'으로 새기고 다양한 인종과 개성 넘치는 여성을 등장시키는 한편, 노 메이크업의 강렬한 흑백 화면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지 10일 만에 조회 수 1,000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파운데이션을 바르지 않으니 피부가 건강해졌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니 시간이 여유로워져 일과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등 자신의 경험을 SNS에 공유하는 이도 많다. '내몸긍정주의'를 통해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되찾았다는 것이 여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의상
버진항공은 1984년 창립 이래 엄격한 복장 규정을 고수해왔다. 버진 레드를 회사의 고유색으로 내세우며 빨간색 유니폼과 구두를 착용하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 여승무원을 트레이드마크도 만들었다. 지난 3월부터 객실 승무원들이 민낯으로 일할 수 있고, 원한다면 바지를 입고 일할 수 있게 됐다. 꾸밈 노동을 강요하는 대표적 집단인 항공사들도 이제 자유로워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성의 복장이 변하고 있다. 불편하고 타이트한 의상 대신 편안한 의상이 각광받는다. 다리 라인을 강조하던 스키니 팬츠와 레깅스 대신 허리에 밴딩을 장착한 와이드 팬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와이드 팬츠를 입고부터 실제로 질염이나 소화불량 등이 사라졌다는 여성들의 후기가 많다. 높고 딱딱한 구두 대신 발이 편안한 운동화, 스니커즈를 신고 출근하는 여성도 늘었다. 사회적 관념대로, 혹은 예뻐 보이기 위해 감수했던 불편함을 내려놓고 편안함과 실용성을 선택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G마켓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3월까지 여성 고객이 구매한 신발 중 스니커즈와 슬립온의 비율이 31%, 운동화가 20%를 차지했고 힐이나 펌프스 등 구두를 구매한 비율은 10% 정도였다고. 이런 추세에 따라 구두가 주력 상품이던 브랜드 슈콤마보니 등에서 편안한 신발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니섹스 의상을 판매하는 쇼핑몰 '퓨즈서울'도 주목받고 있다. '퓨즈서울'을 운영하는 김수정 씨는 남동생의 트레이닝팬츠를 입어보고 여성용보다 훨씬 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여자 바지는 운동복마저 라인이 강조돼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고 불편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는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각종 교복 브랜드에서 타이트한 교복을 내놓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여고생들의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스쿨룩스'는 바지와 반바지 교복을 입은 여고생 화보를 선보였다.
1 통기성이 탁월한 어글리 스니커즈 힘멜 스니커즈 72만5천원 MCM. 2 착화감이 뛰어난 메탈릭 니트 스니커즈 29만 8천원 슈콤마보니.
치마 입은 남성들
여성들의 탈코르셋만큼이나 남성들의 탈맨박스도 이슈다. 맨박스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들이 짊어져야 할 남성다움과 남성성으로 인한 사회적 억압을 말한다. 예를 들면 '남자는 울면 안 된다' '남자는 강인해야 한다' '남자는 핑크색을 좋아하면 큰일 난다'는 식의 강요다. 이러한 남자다움을 거부하는 남성들의 탈맨박스도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치마를 입는 남성들이 있다.
1 2017년 영국, 치마 입고 등교한 남학생들
영국 잉글랜드에서 30여 명의 중학교 남학생이 치마를 입고 등교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반바지 착용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 당국에 저항하는 의미였다. 결국 학교는 방침을 바꿨다.
2 2015년 아르헨티나·터키, '남자라면 치마를 입어라' 시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탄하기 위한 남성들의 시위로 "여자가 불행한 사회에서는 남성도 행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같은 해에 터키에서도 있었는데, 한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탓에 성폭행을 당하고 죽었다는 여론에 대해 남성들이 치마를 입고 SNS에 인증을 한 것. 그들은 '나도 치마를 입었으니 성폭행해봐라'는 과격한 문구로 여론에 맞섰다.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해외 사례
1 일본 2019년 '쿠투(#kutoo) 운동'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하이힐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쿠투 운동을 처음 시작한 배우 이시카와 유미는 직장에서 하이힐 착용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청원 페이지를 개설했고, 1만 6,000건이 넘는 지지 서명을 받았다. 그는"남녀가 동일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2 영국 2016년 핑크 택스(PINK TAX) 반대 운동
성에 따라 다른 미용 요금에 반대하는 운동. 성능과 규격이 같은 제품인데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2배까지 비싸게 팔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는데 4,300명 이상이 서명했고 의회에 문제가 제기됐다. 그 후 성 중립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미용실이 생기기 시작했다.
3 미국 1968년 '자유의 쓰레기통 (Freedom Trash Can)' 퍼포먼스
1968년 '미스 아메리카' 대회장 밖에서 200여 명이 '자유의 쓰레기통(Freedom Trash Can)'이라고 이름 붙인 쓰레기통에 치마와 속옷, 가짜 속눈썹 등을 버린 퍼포먼스를 했다. '여성해방' 배너를 펼치고 '노 모어 미스아메리카'를 외친 장면이 화제됐다.
4 사우디아라비아 2019년 '니캅 밟기 운동'
이슬람권 여성의 엄격한 복장 규정에 반대하는 시위. '니캅'은 이슬람권 여성의 전통 복장 중 하나로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린다. 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의복 거부 운동은 예전에도 있었다. 이란에서는 2014년부터 히잡을 벗는 '나의 은밀한 자유(My Stealthy Freedom) 캠페인이 이어지고 있다.
PART 02 /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나라 걸 그룹 멤버들의 다이어트 성공기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극한 체험 중의 최고봉이다. 걸 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는 살을 빼기 위해 식욕억제제를 먹고 우울증을 겪은 사실을 고백했고, '트와이스'의 모모는 일주일간 7kg 감량을 위해 물도 마시지 않고 침도 삼키지 않았단다. 다행히 요즘 걸 그룹의 의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짧은 치마와 하이힐을 벗고 운동화를 신은 편한 복장으로 무대에 서거나 섹시함과 청순함의 콘셉트를 거부한다. 걸 그룹 '드림캐처'는 구두를 벗어던진 채 공연했고, 'CLC'는 화장과 하이힐을 거부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발표했다. 전형적인 여성성에 도전하는 국내외 스타들도 점점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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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올리브 <밥블레스유>에서 수영복 입은 모습을 공개한 이영자. "몸매에 자신 없지만 그냥 입었다. 내 몸이니까, 사회적 편견에 그냥 버텨보려고 벗은 거다. 끊임없이 져도 사회가 갖고 있는 인식과 나의 자존심이 싸우고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린 슈트를 입고 생애 첫 패션 매거진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당당한 포즈와 호탕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8년 말 각 방송사의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할 때도 자연스러운 실루엣이 매력적인, 그만의 슈트차림으로 등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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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 자신만의 소신 있는 발언을 계속해온 이효리. 생얼과 꾸밈없는 스타일 공개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노 메이크업의 화보를 찍은 적도 있다. 이후 보정 작업도 하지 않았다. 피부 톤만 정리하고 찍자는 스태프의 말에 "그러면 의미가 없어. 로션만 바르고 찍을래"라고 말했다. 자신이 스타일링한 걸 그룹 '스피카'의 한 멤버에게는 "왜 그렇게 자신 없어 해. 너 가슴 없어도 지금 예뻐. 꼭 가슴이 커야 예쁜 건 아니잖아"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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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
대세 중의 대세 박나래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한 의상을 즐긴다. "몸에 열이 많아 노출을 좋아한다. 날씬한 사람만 노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실험적으로 입는다. 자신의 체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녀에게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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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버
한 스포츠 브랜드 광고에서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을 살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제 몸을 창피하다고 여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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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
2017년 영화 <악녀>로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드레스 대신 슈트를, 긴머리 대신 한쪽 옆머리를 짧게 친 반 삭발 헤어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여배우, 남배우 기준을 나누는 게 싫다. 막장 드라마는 여배우가 이끌고, 여배우 다섯이 미니시리즈에 나온다는 식의 반응이 싫다. 편을 가르지 않았으면 한다.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폭을 줄이지 않았으면 한다. 왜 배우를 성과 나이로 평가하는가." -
설리
평소에도 노브라 사진을 SNS에 당당하게 올리는 설리. 노브라를 지적하자 그녀는 "날 걱정하는가? 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시선 강간을 하는 사람들이 더 싫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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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올슨
국내에서 외화 사상 최단 기간에 1,000만 관객을 모아 화제가 된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개봉 초기에 여성 히어로의 복장에 대해 '스칼렛 위치' 역을 맡은 배우 엘리자베스 올슨이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영화에서 가슴골을 드러낸 히어로는 나뿐이다. 스칼렛 위치의 선정적인 의상은 결코 여성을 대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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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무'
'마마무'는 MBC <쇼! 음악중심>에서 트레이닝팬츠에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올라, '쟤가 걔야'를 열창했다. "살 못 빼면 데뷔 안 시킨다"는 소리를 들었던 화사는 자신의 주특기인 '먹방'으로 인기를 얻었다. 곱창, 간장게장, 김부각, 박대 등 그녀가 먹는 음식마다 화제다. 깡마른 체형임에도 먹지 않으며 다이어트하는 다른 걸 그룹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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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주
여성 아나운서로는 처음으로 안경을 끼고 아침 뉴스를 진행했다. 지상파 여성 아나운서들이 프로그램 속 코너를 진행할 때 안경을 착용한 예는 있었지만, 전체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의 안경 착용은 최초였다. 그녀는 "오랜 시간 고민하다 용기를 낸 결과다. 아침에 뉴스를 진행하려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수면 시간도 부족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모자라 가끔은 안경을 끼고 싶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편한 것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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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왓슨
실사판 영화 <미녀와 야수>에 주인공 '벨' 역으로 출연한 엠마 왓슨은 코르셋 입기를 거부했다. 진취적인 여성으로 그려진 벨이 여성의 몸을 제한하는 코르셋을 입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슴 노출이나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화 콘텐츠 속 탈코르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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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탈코일기>
SNS를 뒤집어놓은 화제의 만화로 2권까지 나왔다. 화장, 날씬한 몸매, 제모, 긴 머리 등 사회가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외모 코르셋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으로 제목 그대로 '코르셋'에서 탈피한 여성들의 일기다. 매력적인 거친 그림체, 탈코르셋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린 상징적인 이미지들이 독자를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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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롱롱데이즈>
식이장애(섭식장애, 폭식증) 이야기를 그린 일상 웹툰이다. 작가의 경험담이라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공감을 얻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칭찬이라 생각하지만, 예쁘다는 말조차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내가 못생기든 예쁘든 타인이 내 외모를 언급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안 하기'였다. 자신을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미워하지 않기. 다이어트하지 않기. 몸무게 재지 않기. 나에 대한 비하의 말 남들에게 하지 않기. 내가 바라는 완벽한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기보다는 무관심한 게 낫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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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픽션>
'희진' 역의 공효진이 겨드랑이 털을 제거하지 않는 여자로 등장한다. 알래스카에서는 누구나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희진은 하정우가 연기한 '주월'에게 묻는다. "겨털이 뭐가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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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CLC 'No'
"레드립 No, 이어링스 No, 하이힐 No, 핸드백 No." 화장과 획일화된 여성성 대신 개성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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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외모 때문에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낸 '강미래(임수향 분)'가 성형수술로 예뻐지지만 모태미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성괴'라는 말을 듣는 등 또다시 어려움을 겪는다. '도경석(차은우 분)'의 "남들 얼굴에 급 매기냐? 얼굴이 아니라 그 질 떨어진 마인드를 수술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자신도 다른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해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태 미녀 '현수아(조우리 분)'는 더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과 위선을 일삼는다.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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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마스크걸>
주인공 '김모미'는 낮에는 평범한 회사원, 밤에는 인터넷 성인 방송을 진행한다. 몸매는 출중하지만 못생긴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방송한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된 동료의 협박을 받아 동료를 살인하고 성형수술을 한 김모미는 연예계에 진출하려고 한다. 결국 교도소에 들어간 김모미와 엄마를 꼭 닮은 그의 딸 이야기까지. 외모지상주의, 인터넷 개인방송의 음란성, 비뚤어진 모성애, 학내 따돌림 등 한국 사회의 병폐를 드러낸 웹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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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먹왕 랄프 2>
여주인공 '바넬로피'는 영화 내내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디즈니 공주들의 드레스를 벗기고 티셔츠로 갈아입힌다. 편한 복장을 처음 입어본 공주들은 감탄한다. 영화 속 디즈니 공주들은 이제 더 이상 나약한 모습이 아니다.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입지도 않고 왕자를 기다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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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외모 왜뭐>
"내 몸은 너의 눈요깃거리가 아닙니다." 무례한 외모 지적에 대처하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탈코르셋을 고민하는 10대들을 위한 페미니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화장·다이어트·미디어·사이즈 등 여러 형태로 여성을 옥죄는 코르셋의 유형과 그 기저에 숨은 의도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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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ITZY(있지) '달라달라'
"외모만 보고 내가 날라리 같대요. So what? 신경 안 써. 난 지금 내가 좋아. 나는 나야." 당당한 메시지가 경쾌하다. 댄스 브레이크 등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걸크러시 매력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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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3 / INTERVIEW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
뷰티유튜버로 활동했던 배리나의 콘텐츠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다. 영상 속에서 그녀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들으며 한 메이크업을 정성스럽게 지운 후 이야기한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고. 뷰티유튜버인 그녀가 탈코르셋을 선언한 이 영상은 7,302,225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녀가 처음 외모지상주의에 상처를 받았던 나이는 10살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급격하게 살이 쪘고, 학교로 돌아간 후 같은 반 남자아이들에게 "돼지새끼야, 자살해"라는 말로 괴롭힘을 당했다. '나는 남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나를 싫어할까?'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던 그녀는 12살에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 이후 1일 1식, 간헐적 단식, 언푸드 다이어트, 디톡스 다이어트, 다이어트 한약, 퍼스널트레이닝 등 갖가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살을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울증, 대인기피증, 섭식장애 등에 시달리며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배리나는 메이크업을 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분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방송영상학 전공을 살려 뷰티 유튜버로 거듭났다. 하루 종일 뷰티 유튜버 영상을 봤고 한달에 수십만원어치의 화장품을 사들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탈코르셋을 선언하고 자유와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시선 때문에 화장을 하는 일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깨달았다. 이후 짙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머리를 짧게 자른 그녀는 '네가 남자냐?'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행복하다.
Q '나는 예쁘지 않습니다'란 영상을 올린 후, 반응이 어땠나요? 응원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악플도 많았어요. 사실 영상을 찍기 전에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탈코르셋을 할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죠. 그래서 탈코르셋을 영원히 할 수 없을 거라는 말도 했어요. 그런데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민낯을 보여주기 싫어서 가리고 다니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미디어에서 정해놓은 아름다움의 기준이 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고 여겼고요.
Q 그 이후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가장 크게 느껴진 것은 시간과 돈이 절약된다는 점이었어요. 한 달에 화장품을 사는데 30~40만원 정도의 금액을 사용했고 많이 썼을 때는 400만원까지 써봤어요. 그 지출이 줄어드니까 여유가 생겼죠. 또 저에게 투자하는 시간도 많아졌어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등 취미가 생겼죠.
Q 노메이크업, 숏컷을 하면 탈코르셋인가요? 아니오. 탈코르셋은 사회적 여성성을 탈피하려는 운동이에요. 우리 사회는 '여자는' '남자는'이라는 조건으로 많은 제약을 두고 있어요. 쉽게 말해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라고 구분 짓는 것이죠. 여자는 가녀린 몸매에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어야 하고, 조신하게 행동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들이 모두 코르셋이에요. 우리는 왜 근육질의 여자는 사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할까요? 어려서부터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서 정해놓은 기준을 습득했기 때문이에요. 이 기준이 사라져야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살 수 있어요.
Q 예뻐서 메이크업을 하고, 예쁘니까 원피스를 입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그게 왜 예뻐 보이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우리는 왜 메이크업을 한 사람이, 날씬한 사람이 예쁘다고 생각할까요? '예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요? 원인 중 하나는 미디어예요. 그중에서도 아이돌 문화요. 아이돌 산업이 커지면서 아이돌 같은 외모와 몸매, 그녀들의 화장이나 옷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됐어요. 저도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야한 옷을 입는 것이 저의 자유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외모로 평가를 받고 있더군요. 누구나 '화장 좀 하고 다녀' '넌 살만 빼면 예쁠 것 같아' '눈만 성형수술을 해봐' '다 좋은데 몸매가 아쉽다' 같은 이야기를 들은 경험이 있잖아요. TV 속 여자 연예인들의 모습이 다양했다면, 민낯도 창피해하지 않았다면 화장을 꼭 해야 된다는 생각했을까요? 외모에 대한 기분은 남자보다 여자들에게 더 가혹해요. 남자 연예인들은 민낯이거나 뚱뚱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지 않잖아요.
Q 미디어 속 외모지상주의는 청소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최근 아이들이 즐겨보는 애니메이션 채널을 보면 캐릭터들이 획일적이에요. 여자 캐릭터는 모두 눈이 크고 긴 머리를 하고 있어요. 마른 체형이고 핑크나 퍼플 톤의 치마를 입었고요. 같은 채널에서 방영되는 광고에서 남자아이들은 과학자처럼 실험을 하거나 컴퓨터를 하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인형이나 화장품 놀이 세트를 가지고 놀아요.
Q 하지만 막상 탈코르셋을 시작하는 게 쉽진 않습니다. 어떤 것부터 실천해야 되나요? 저처럼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는 없어요. 탈코르셋 인증을 하면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또 직장 때문에 동참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고요.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다가 포기하는 분도 많아요. 한 번에 변화하지 않아도 돼요. 작은 것부터 하나씩 벗어놓으면 되죠. 이런 운동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Q 생각해보면 우리는 나를 꾸미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탈코르셋을 하면서 오히려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내 얼굴을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해요. '예쁘지 않으면 어때? 그래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가지는 거예요. 거울을 보며 남자들은 '이 정도면 나도 멋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여자들은 자신의 부족한 면만 본다고 하죠. 저도 예전엔 거울을 보면서 제 외모를 평가하고 제 자신을 비하했어요.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고 피부에 생긴 뾰루지만 크게 보였죠. 그런데 이제 저는 거울을 보지 않아요. 가끔씩 거울을 오랫동안 보면 '아,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Q 나는 지금 이대로 완벽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군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야 돼요. 누구나 결함은 있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잖아요. 완벽하지 않은 나도 나라고 받아들이는 거죠. 나는 지금 이대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우리는 왜 예뻐야 할까요? '예쁘다'라는 말 자체가 외모를 평가하는 말이에요. 우리 모두는 존재만으로 괜찮은 사람이에요.
Q 지금의 탈코르셋 운동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저는 다음 세대를 사는 여자들이 더 자유롭게 살기 바랍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예쁘지 않거나 조신하지 않다고 비난받지 않아도 되길 바라죠. 여자라는 이유로 감수했던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꿈꾸고요. 메이크업을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털이 많아도 제모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브래지어가 답답하면 벗어버리고, 다이어트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고요. 남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머리가 짧지 않아도 되고, 화장을 하고 네일아트를 해도 돼요. 언젠간 꾸밈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PART 04 / 이렇게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탈코르셋 운동은 현실에 얼마나 밀접하게 다가왔을까?
4월 3일부터 11일까지 9일간 <우먼센스> 독자 168명이 탈코르셋에 대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