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손헌수가 '쿵' 하면 김인석이 '짝' 하는 식이다. 별것 아닌 일상 이야기에도 주거니받거니 <개그콘서트>에서나 볼 법한 만담이 펼쳐진다. 촬영은 또 어떤가? 이정재×정우성급 투샷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다. 그것도 잠시. 눈만 마주쳤다 하면 웃기는 탓에 멀쩡한 컷이 없다. 아무튼 이 두 사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규율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개그계에서 선후배인 손헌수와 김인석이 친구가 된 사연은 조금 독특하다. 데뷔 직후 한창 잘나가던 손헌수가 우연히 대학로 소극장을 찾았다가 허드렛일을 하는 김인석을 만나면서부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김인석은 당시 승승장구하던 손헌수를 선망하고 있었고, 손헌수는 김인석의 성실하고 반듯한 면모가 마음에 들었다.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에게 끌려 단번에 친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벌써 20년째다.
이토록 솔직한 친구
손헌수 난 솔직히 네가 개그맨이 될 줄 몰랐어. 개그맨이 될 줄 알았다면 아마 친구하지 않았을 거야. 내 기준에 개그맨은 오정태·정종철 형님처럼 '웃기게' 생긴 사람이었거든. 근데 넌 너무 멀끔하게 잘생겼잖아. 솔직히 개그맨과는 어울리지 않는 관상이지. 근데 네가 데뷔한 후에는 다르게 보이더라고. 준비성도 철저하고 성실한 모습이 좋았어. 자유로운 영혼의 나와는 다르더라.
김인석 난 당시 이미 스타였던 너를 동경했었어. '허무 개그'로 한창 주가를 올렸고, 드라마 <야인시대>에도 나오고, 뮤지컬도 대박 나는 걸 보면서 '쟨 대체 뭐길래 하는 것마다 잘될까?' 했다니까. 그런데 널 보면 초년에 출세하는 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하하하.
손헌수 어릴 때 나는 뭐랄까…. 좀 붕 떠 있었지. 뭘 해도 됐었으니까. '나는 천재인가 봐' '개그에 천부적 재능이 있나 봐' 하면서 우쭐했었던 것 같아. 너한테도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열심히 안 해도 된다면서 말야. 미쳤지 내가.
김인석 개그맨 사이에선 그런 말이 있잖아. '니쥬 깔아준다'고. 다른 개그맨들 뒤에서 받쳐주는 역할 말야. 난 그게 너무 싫었어. 웃기고 싶은 열망이 있었달까? 그래서 나만의 공식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아. 이를테면 초반에 스토리를 펼쳐놓고 후에 그 스토리와 관련된 개그를 치는 거. 근데 넌 예능 공식이 없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데 그게 또 웃겨. 그건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생각해.
손헌수 개그 스타일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우리는 정말 다른데 어쩌다 친구가 됐을까?
김인석 그러니까 말이다. 우린 여자 취향도 다르잖아. 하하하.
손헌수 친한 여자 선배들만 봐도 그래. 너는 (왕)영은, (최)은경 누나랑 친하게 지내는 반면에 나는 (이)경실, (조)혜련 누나랑 친하잖아.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지. 처음 네가 영은 선배랑 MC를 하는데 너무 신기한 거야. '저게 가능해?' 했다니까.
김인석 난 네가 경실 누님이랑 친한 게 더 신기한데? 하하하. 그러고 보니 너랑도 벌써 20년째다. 우정도 우정인데 험난한 이 바닥에서 누구 하나 낙오하지 않고 잘 버틴 것도 대단해. 우리가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말야. 생각해보면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놈이 뭐라도 하는 것 같아. 사건 사고 한 번도 없이 말야.
손헌수 사건 사고…. 난 있었다…. 군대를 두 번 갔다 왔잖아. 훈련소를 두 번 갔고, 군 복무 기간만 4년 7개월이야 인마.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기도 해. 그 후로 정신을 좀 차렸거든. 근데 안 좋은 건 그때 그 일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날라리'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야. 실제로 나는 날라리가 아닌데 말야. 나이트에 놀러 가도 여자들과 잘 안 어울리잖아. 그냥 혼자 놀 뿐이지.
김인석 그녀들이 안 놀아주는 거 아니고? 하하하. 근데 지금 여기서 나이트 얘기가 왜 나오냐? 하여튼 얘가 이렇게 뇌가 투명합니다. 넌 이런 게 문제야. 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니까. 내가 널 아슬아슬하게, 불안불안하게 생각하는 이유야.
손헌수 넌 뭐 안 불안한 줄 아나본데…. 술만 취하면 우는 거 정말 별로야. 마음이 여려서 그런 건지, 그냥 눈물이 많은 건지. 처음 몇 번은 보듬어주곤 했는데 너무 자주 우니까 별로더라. 하하하. 대체 뭐가 그렇게 슬픈 거야?
김인석 고마워서 울지. 취하면 감정이 증폭되잖아. 작은 것도 크게 느껴지고. 술만 마시면 그냥 다 고맙다. (박)수홍이 형님이 술 사주시는 것도, 사람들이 우리한테 잘해주는 것도, 내가 꿈이었던 개그맨이 됐다는 것도 그냥 다 감사해.
손헌수 네가 수홍이 형님 앞에서 그렇게 울면 괜히 나도 따라 울어야 하잖아. 이제 제발 울지 좀 마. 나는 눈물이 없다고!
김인석 알겠어 인마. 노력할게. 근데 잘될지 모르겠다. 하하하. 너는 가만히 보면 엄청 대담해. 나는 간이 작아서 무슨 일을 저지르는 편이 아니라 일단 저지르고 보는 네가 부럽기도 해. 남자라면 한 번쯤 저지르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런데 나는 아내도 있고(김인석은 2014년 방송인 안젤라 박과 결혼했다), 아이도 있고, 조만간 둘째가 나오기도 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손헌수 저지르는 성격이라 돈도 많이 까먹었잖아. 하하하. 영화 만들겠다고 가진 돈 다 쏟아 부었다가 적자였고, 사업하겠다고 없는 돈 다 끌어모아 판을 키웠다가 또 빚더미에 앉고…. 그런데 후회는 없어. 하고 싶은 건 다했으니까.
20년째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성향과 취향이 정 반대이기 때문이야.
서로에게 부족한 걸 채워주고, 동경하고 존중하는 사이. 그래서 난 네가 정말 좋아.
현대판 톰과 제리
김인석 근데 너 대체 영화는 왜 한 거냐?
손헌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코미디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이래 봬도 나름대로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고(2010년 손헌수가 연출한 영화 <통키는 살아있다>는 '제1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희극지왕을 수상했다). 극장에서 관객들이 빵 터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희열을 잊지 못해서 시나리오 작업중이야. 아직도 만들고 싶은 코미디 영화가 있어. 영화 제작사들과 이야기 중이긴 한데…. 나한테 연출을 맡기려고 하질 않아. 하하하. 그래서 고민 중이야. 그러는 넌 결혼하니까 좋냐? 힘들지?
김인석 부러우면서 괜히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 좀 봐. 물론 힘든 부분도 있지. 가장으로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고. 근데 나는 지금의 안정적인 삶이 좋아. 너도 알다시피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불안정한 면이 있잖아. 불안감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연예인도 있고 말야. 그런데 결혼 후 무거운 추가 생긴 것 같아. 흔들리지 않도록 양쪽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달까.
손헌수 그래도 좋아하는 등산 정도는 해도 되는 거 아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잘 만나지 못하고 말야. 우리 한창 만날 땐 서로 웃기겠다고 집에서 소품도 챙겨 오고 그랬는데…. 네가 무선 전화기 들고 와서 웃기는 거 보고 다음 날 나는 팬티만 입고 나갔잖아.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몰라. 그치?
김인석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네가 내 아이템 많이 뺏어가기도 했어. 그런 거 생각하면 결혼 후 자유가 없어졌다는 건 힘들지. 등산 동호회, 자전거 동호회를 직접 꾸릴 정도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 내가 결혼 후 그런 모임에 일절 나가지 못하는 걸 보면 넌 아마 결혼하기 싫을 거야. 그런데 난 오히려 결혼 전보다 지금이 더 좋아.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사는 게 진짜 사는 거 아니겠니?
손헌수 부부들은 대체 어떻게 싸워?
김인석 "사네, 안 사네" 하면서 싸우지. 하하하.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강공원에서 사람들이 보는데도 집어 던지기도 했어. "너 갈 길 가"라고 소리치고 차에 탔는데 손이 떨리는 거야.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싶더라고. 그런데 아내가 창문을 두드렸어. 갈 데가 없대. 와이프 고향이 하와이잖아. 아내가 갈 곳이라곤 나, 우리 집뿐이었던 거야. 그때 너무 미안했어. 이 여자는 나 하나 보고 아무도 없는 여기에서 사는 건데…. 그 후론 잘 안 싸워.
손헌수 너… 그때 또 울었지? 하하하.
김인석 그러는 너는 왜 결혼을 안 하고 있어?
손헌수 나는 가정적이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 그래서 내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완벽하게 준비가 됐을 때 결혼하고 싶어.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일 때, 가정과 육아에 충실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완벽한 남자가 됐을 때 결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이런저런 사업도 하는 거고. 그리고 솔직히 아직까지 '이 여자다' 싶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 너처럼 사랑에 미쳐야 하는데….
김인석 나는 선도 많이 봤었지. 아버지가 연세가 있으시니까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러 여성분을 만났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결코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 덕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여자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것 같거든. 그런 의미에서 선보는 것 추천!
손헌수 초등학교 내내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어. 스무 살 때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에 빠졌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녀가 유흥업소 종사자였던 거야. 그때 상처가 컸나 봐. 그 후론… 사랑에 잘 안 빠지게 되더라. 일단 방어하고 본다고 해야 할까? 마음의 문을 여는 게 잘 안 돼.
김인석 어떤 여자를 만나고 싶은데?
손헌수 남편을 큰 인물로 만들 수 있는 지혜로운 여자. 나만 바라보는 예쁜 여자.
김인석 그런 여자가 너를 왜 만나겠냐? 하하하.
손헌수 결혼도 결혼인데 당분간은 일에 매진할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완전한 남자가 됐을 때 결혼하고 싶거든. 무엇보다 아직까진 자유가 좋아.
김인석 그 열정이 부러워. 그게 네 삶의 원동력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말리지 못하겠어. 그런데 가끔 "섬을 사겠다"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할 땐 좀 불안해. '대담함'과 '돌아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고 할까. 조금은 현실적이면 좋겠는데….
손헌수 안 그래도 수홍이 형도 같은 말을 하더라. 좀 변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지. 하하하. 그런데 몇 번 사업을 실패하고 보니까 조금은 현실감이 생긴 것 같아. 단호할 땐 단호하고,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접을 줄도 알고. 그랬더니 요즘엔 수홍이 형이 "변했다"고 하는 거야. 아 놔. 난 네가 조금은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 너의 삶? 어우, 재미없어. 하하하.
김인석 생각해보면 우리가 친한 이유가 이렇게 다르기 때문인 것 같아. 성격부터 취향까지,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네. 비슷한 거 하나를 고르자면…. 잘생김? 하하하. 착한 성격? 하하하.
손헌수 우리는 사실 착한 거 빼면 시체지. 우정, 사랑…. 모두 의리가 있잖아? 오래 만나지 못해도 어제 만난 것 같은 그런 거 말야. 오글거리기는 한데…. 연예인 중에 유일한 친구는 너야. 이렇게 10년만 더 친구해보자. 하하하. 50살이 됐을 때, 똑같은 포즈로 사진 찍고 그때의 이야기를 해보는 거야. 너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김인석 50살…. 그때의 우리는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 말고 다른 걸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요즘엔 새로운 직업을 고민해봐야 하나 싶기도 해.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환경을 생각하기도 하고 말야.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생각이 많다, 내가.
손헌수 너 지금 잘하고 있어. 천국에 가야 하는 유일한 직업이 개그맨이라잖아. 많은 사람을 웃기니까 말야. 우린 지금처럼만 하면 천국 갈 수 있어. 천국에서 만나자, 친구야. 하하하.
김인석 그래. 헌수야, 행복하자. 우리… 친구 아이가.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엔 서로를 위한 말뿐이다. 친구를 응원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잘됐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마음이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