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후배들에게 졸업식 축사
“사람들이 저를 보면 ‘서울대 출신이 어떻게 대중음악을 하게 됐을까’ 궁금해 하면서, 대단한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의 말이다. 그가 키워낸 ‘방탄소년단’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그룹이다.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키워낸 이 괴물 같은 그룹의 성공에 대해 세계가 깜짝 놀랐고 정·재계에서 앞다투어 벤치마킹을 할 정도였다. 그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성공 비결에 대해 털어놓은 자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졸업식이었다. 그는 지난 2월 26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73회 서울대학교 전기 학위수여식에 자랑스러운 선배로 초대돼 축사를 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서울대에 입학하던 때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0년대 말, 당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서울대 법대를 진학했어요. 저 역시 1지망은 법대였죠. 그때는 열정이나 꿈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꿈에 기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원서 쓸 때가 됐는데 법대에 가기에는 점수가 아슬아슬한 거예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죠.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안전하게 (점수가 낮은 과로) 가느냐….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방 대표는 법대 대신 미학과를 선택했다. ‘뭔가 쿨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당연히 법대를 가리라 기대했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내 인생에 재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정한 길이었다. 그 결정은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적성에 맞았어요. 철학, 예술 관련 수업이 정말 재밌었죠. 워낙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인지 많은 사람이 어렵다는 수업이 제겐 흥미로웠죠.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을 잊고 살 정도로 학과 공부에 몰두했어요.”
하지만 그의 길은 결국 음악이었다. 그는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으며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중학교 때부터 밴드 생활을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공부에 몰두했고, 결국 다시 자신의 길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면서, “생각보다 (음악을 하게 된 이유가) 허무하다”며 웃었다. 당시 그는 “무엇에 홀린 것처럼” 음악을 시작했고 1997년부터는 JYP의 수석 작곡가로 일하며 숱한 히트곡을 남겼다. 2005년 독립해 지금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는데, 독립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JYP의 내부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당시에도 굉장히 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러고 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기로에 놓일 때마다 별 의미 없이 선택했던 것 같네요. 그 선택을 한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저는 큰 야망가나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아니에요.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어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해왔어요.”
타협하지 말고 분노하라
‘방탄소년단(이하 ‘BTS’)’을 선보인 건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8년 뒤인 2013년의 일이다. ‘BTS’가 데뷔 초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데뷔 후 3년간 차근차근 인지도와 실력을 쌓아가더니, 2016년에 발표한 <wings>로 초대박 히트를 치게 된다. ‘BTS’는 빌보드 차트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 필드’에서 열린 공연을 매진시켰으며, 최근에는 그래미 어워드 시상자로 초빙돼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BTS’의 성공을 바탕으로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커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야심은커녕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상하실 거예요.”
그렇다면 방시혁을 지금의 위치로 이끈 건 무엇일까? 그는 ‘화’, 즉 ‘분노’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그는 오랫동안 ‘분노’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2010년 MBC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 등장해 끊임없이 독설을 날렸다.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이에요. 오늘날의 저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있기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불만 많은 사람’일 겁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아요.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튀기 싫어서, 일 만들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죠. 저는 태생적으로 그렇게 못 해요.”
그는 자신의 성격이 음악 작업이나 회사를 운영하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됐다고 말한다. 그의 불만은 ‘적당히 끝내려는 관습’에 대한 분노였다.
“음악 산업계는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입니다. 속을 알면 알수록 분노하게 됐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이용당하고 불공정한 거래가 관행처럼 굳어지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어딜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웠어요. 케이팝 팬들이 ‘빠순이’로 비하되는 일도 비일비재하죠.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없고요. 왜 대중음악이 이런 대우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고 화가 났어요.”
방시혁은 “자신이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고 한다. 또 “나를 분노케 했던 음악 산업의 구조가 나로 인해 변화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분노는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한지 여러분이 정의를 내리고, 그런 상황에 여러분이 놓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취업 걱정, 노후 걱정 없는 공무원의 삶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포브스>에 나오는 전 세계 몇 대 부자들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 있어요. 명예와 권세를 누려야 행복한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좇아야겠지요. 문제는 남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꿈을 무작정 따르다가 결국은 좌절하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것은 여러분들의 리듬, 여러분들의 스웨그가 아닙니다.”
또한 방 대표는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가 자신과 같이 부조리와 몰상식에 맞서며 변화를 이끌어내길 당부했다.
“여러분들도 지금 큰 꿈이 없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요. 다만, 남이 만든 꿈을 따라 정진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부조리와 몰상식이 여러분의 노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분노의 화신’ 방시혁처럼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고 사회가 변화합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달려 있음을 기억해주세요. 소소한 일상의 싸움꾼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제게는 꿈 대신 분노가 있었어요. 납득할 수 없는 현실, 불행하게 하는 현실과 싸우고 분노하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제가 이제껏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면서,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싸워나갈 것”이라면서,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케이팝 밴드의 태생적 한계를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