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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갓정민

박정민은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다. 그토록 변화무쌍한 박정민이기에, 그래서 그가 더 궁금했다.

On April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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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만큼 반짝반짝 빛났다. 묘한 매력의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캐릭터에 따라 천차만별로 바뀌었다. 그는 조국을 되찾으려는 독립운동가 (영화 <동주>)였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천재 피아니스트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였으며, 삶이 고달픈 래퍼(영화 <변산>)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영화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 단체 ‘사슴동산’의 교주를 절대 신으로 믿으며 자신의 삶을 내던진 미스터리한 인물 ‘정나한’으로 분했다.

“영화 어떠셨나요? 이번 영화에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부었어요. 어릴 때부터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했는데 <검은 사제들>을 연출하신 장재현 감독님의 새 작품이라는 이야기에 기대를 품었죠. 감독님을 만났는데 기대와는 다른 이미지와 유머 감각을 지니신 분이었어요. 의아함을 품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그때 느꼈죠. 아, 감독님은 ‘천재 오타쿠’구나. 그래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가볍게 출연을 결심한 듯 말했지만 당시 박정민은 바쁜 스케줄에 쉴 틈조차 없는 상태였다. 전작인 영화 <변산>의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다음 날 <사바하> 촬영에 들어갔다. 당연히 컨디션은 좋지 않았다.

“<변산>에서 무명 래퍼 ‘학수’를 소화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썼어요.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어 랩 가사를 직접 썼고, 랩을 직접 해야 하니까 연습을 했죠. 그러다 보니 촬영이 끝나면 녹음실에서 랩을 연습하거나 녹음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쉬는 시간엔 네 발로 기어 다닐 정도로 체력 소모가 심했는데, 이어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니 쉽지 않았죠. 결국 감독님이 일주일 휴가를 주면서 무조건 따뜻한 나라에서 쉬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곧바로 베트남 하노이로 떠났어요.”

휴식하고 돌아온 박정민은 그때부터 촬영장 곳곳을 ‘신난 강아지’처럼 뛰어다녔단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도 좋았지만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선배 배우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신이 났다.

“배우로서 풍부한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여태까지 그렇게 연기를 해왔고요. 대본에서 정나한은 어색할 정도로 움직임과 표정이 없는데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행동 등의 디테일을 더했는데 결과적으론 저의 상상력이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긴장감이 중요한 미스터리 장르에서는 엉성하게 애드리브를 준비하면 캐릭터 성격이나 감독님의 콘티, 편집 리듬을 깨뜨리더라고요. 그래서 불편해도 참아야 영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배웠죠.”

박정민은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노란 머리를 한 평범한 정비공인 정나한은 교주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갖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해야 될지라도 믿음이 우선인 인물. 박정민은 신에 대한 믿음, 인간의 욕망 등을 그린 장재현 감독의 세계관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다.

“사실 저는 모른다고 말하는 게 창피해서 질문하는 걸 어려워해요. 늘 작품을 할 때마다 혼자서 고민했고 무언가를 배우기도 했어요. <변산>에서는 랩을 배우고,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는 피아노를 배웠죠. 이번에는 종교에 대해 공부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에게 물어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모르는 게 생기면 질문했고, 감독님은 시원하게 답해주셨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 질문하는 법을 배운 셈이죠. 결과적으로 이런 깨우침이 다음 작품인 <사냥의 시간> <타짜: 원 아이드 잭>을 촬영할 때 도움이 됐어요.”

박정민은 이번 영화를 통해 신앙에 대해 생각했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유신론자인 그는 사람들이 신이라는 존재를 믿고 기도하는데, 왜 이렇게 부조리한 일이 많이 생길까라는 의문을 품어왔다. 신을 의심하고, 믿음을 의심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되돌아보면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사람이든, 현상이든 잘 믿는 편이 아니죠. 왜냐면 무엇이든 이면에 있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제게 무례한 말을 했다면 그 이면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만한 정당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런 의심들은 제가 더 깊이 생각하고 올바른 시선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줘요. 결국 의심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더 건강한 믿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또 그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자신 역시 모든 사람이 가진 돈에 대한 욕망이 있단다. 하루는 배우를 그만두고 ‘돈을 벌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또 하루는 ‘돈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 연기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생각한단다. 돈을 쫓아볼까 고민을 했다는 그의 말에 자연스레 그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렸다. 데뷔작 <파수꾼>은 독립영화였고, 이후 출연한 작품에서도 거대 자본이 투자된 대작은 거의 없다.

“투자 금액이 높은 작품에서 섭외가 온 적도 있는데 일부러 배제한 건 아니에요. 그저 그때마다 재미있는 작품을 고른 것뿐이죠. 어떤 동료들은 제게 ‘야망을 갖고 상업 영화를 하라’는 말을 해요. 저 역시 배우로서 이름값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좀 더 유명하면 영화만 홍보하면 되는데, 배우까지 홍보해야 하니까 마케터분들에게 미안하거든요. 그렇지만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을 좇는다고 해서 유명세와 인기가 따라오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제가 잘하면 자연스럽게 생기겠죠. 그저 제가 꿈꿨던,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망치지 않고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저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사람이든, 현상이든 이면에 있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런 의심들은 제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더 건강한 믿음을 만들어줘요.

멋대로 사는 청춘

박정민은 스스로를 “제 멋대로 살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박정민은 어려서 부모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했고 성과도 좋았다. 명문 기숙학교인 공주 한일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는데 한 학기 만에 자퇴하고 이듬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입학했다. 영화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땐 꿈이 없고 하고 싶은 게 없으니 모든 것을 부모님의 뜻에 맡겼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시니 열심히 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에 지쳤고 그때쯤 관심 가는 분야가 생겼어요. 유일한 취미가 영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어느 날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 한예종에 가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고 끊어버렸어요. 집안과 학교가 발칵 뒤집혔죠.”

책상에 앉아 하는 공부에 지친 그에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필수 과목을 반영하지 않는 한예종의 입학 조건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또 8월에 진행되는 입학 시험에 합격한다면 수능까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또한 메리트였다. 주변에선 모두 그를 말렸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했다. 결국 선생님들은 그의 열정을 인정하고 단편영화를 찍어보라며 카메라를 쥐여줬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희열을 느꼈지만 입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수능까지 3개월이 남은 상태였는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 기간 동안 전보다 배로 열심히 해서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영화의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자퇴했어요. 다시 도전해 한예종에 합격했고 입학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박원상 선배님의 연극 연습실에 거의 매일 놀러 갔어요. 그러다가 극단의 스태프가 됐는데 어느 날 무대에 조명이 켜지는 순간 그곳에 내가 없다는 사실이 인지된 거예요. 굉장히 쓸쓸하더라고요. 무대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어요. 그래서 한 선배를 졸라 단편영화 <세상의 끝>에서 대사 없는 역할을 맡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 후 꽤 많은 노력을 해 연기과로 전과했죠.”

박정민은 대사 하나 없는 역할로 윤성현 감독의 눈에 띄었고, 영화 <파수꾼>(2011)에 출연하게 됐다. 그해 최고의 독립영화로 각광받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충무로의 샛별로 주목받았고 그로부터 5년간 무명 시절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이제는 배우로서 인정받고 이름도 얻었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한단다.

“저랑 내기하실래요? 삼청동 초입부터 끝까지 걸어가도 저를 알아보시는 분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혼자 밥도 먹고 술도 잘 마셔요. 오늘도 백팩을 메고 인터뷰 장소까지 혼자 왔어요. 한번은 이사 가려고 집을 내놨는데, 집을 보러 오신 분들이 문 밖으로 나설 때까지 저를 못 알아보시더군요. 제가 출연한 영화의 포스터들이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도 말이죠. ‘박정민’이라는 배우에게 결정적인 이미지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신인 때는 아쉬운 적도 있었는데 이젠 개의치 않아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대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제게 맞는 이미지가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드러낸 박정민은 책을 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한 매거진에 ‘언희’라는 필명으로 4년 동안 칼럼을 연재했고 2016년에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내놨다. 그의 소박하고 진솔한 면모는 글에서 더 빛을 발한다. 이 때문에 배우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박정민을 기다리는 팬도 상당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책을 쓸 계획을 갖고 있진 않단다.

“제가 쓴 글을 좋아해주신 분이 꽤 많지만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글을 쓰려는 마음은 없어요.”

자신의 의도와 달리 연예인의 인지도를 빌려 작가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모양새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날것이 아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은 매력적이지 않은 듯했다.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면 정체성이 있는 글을 써야 하는데, 단지 쓰기 위한 글을 쓰는 것도 싫어요. 그런 글은 써놓고도 보기 싫더라고요. 물론 요즘에도 감정의 배출구로 글을 쓰지만 타인에게 보여줄 정도는 아니에요. 나중에 제가 할 이야기가 생기면 조심스럽게 다시 써볼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진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담력이 부족해서 남들에게 보여줄 글을 쓰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거든요.”

박정민은 스스로를 ‘다크하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보다는 주변을 배려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따뜻한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바하>라는 영화의 제목은 ‘원하는 바를 이루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박정민이 자신에 대한 의심 대신 건강한 믿음을 갖고 영화의 제목처럼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길 기대한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04월호
2019년 04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