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사립 유치원 ‘갈등’
사태를 접한 당국은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세우며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강경한 태세로 대응했고, 학부모 단체들은 한유총의 집단 행동이 “반교육적 교육 농단 행위”라며 연일 성토했다. 결과적으로 한유총의 ‘벼랑 끝 전술’은 여론 악화와 더불어 검찰 고발, 감사, 법인 설립 취소 등 만신창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
한유총, 개학 연기 기습 발표
유치원 개학을 나흘 앞둔 지난 2월 28일, 사립 유치원 단체 한유총은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기습 발표했다. 한유총의 이번 일격은 ‘유치원 3법’과 ‘사유재산의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요구 조건들을 향후 정부와의 협상에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상징적인 선제공격이 필요하다는 내부 강경 세력의 의견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한유총은 기자회견 당일 개학 연기가 ‘준법 투쟁’이라고 주장하며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과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철회 ▲사립 유치원 사유재산 인정 ▲유치원 예산에서 시설 사용료 비용 처리 인정 ▲사립 유치원 원아 무상교육과 교사 처우 개선 ▲누리과정 폐지 등을 요구했다. 또한 사태의 발생 원인이 교육부의 대화 묵살과 사립 유치원에 대한 마녀사냥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오롯이 자신들이 행한 사태의 모든 책임을 교육부에 전가하는 태도를 취했다.
한유총은 개학 전날인 3월 3일, 또다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수위를 한층 높여 개학 연기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고 ‘폐원 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배수진을 치며 실력 행사를 굽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유총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긴급 합동회의에 대해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회 불안을 증폭하며 교육 공안 정국을 조성한 것에 매우 강한 유감을 표한다”면서 “개학일 결정은 유치원 원장의 고유 권한이고 개학 연기는 준법 투쟁”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아울러 “정부의 탄압이 계속되면 폐원 투쟁까지 벌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강경 대응과 학부모 분노
한유총에 일격을 당한 교육부는 긴급 돌봄 체제를 발동해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국공립 유치원과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과 협력해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계획으로 즉각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대응했다.
또한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은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 추진단 점검회의를 열고, 개학을 연기하는 유치원 명단을 공개하기로 결정해, 해당 유치원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검찰도 한유총의 개학 연기 발표 다음 날 즉시 “유아교육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며 엄정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신속히 밝혔다.
범정부 차원의 엄정 대처 주문도 잇따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개학 연기 사태와 관련해 긴급 관계 부처·지자체 합동회의를 별도로 열고 “아이들을 볼모로 잡겠다는 것은 교육기관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즉각 철회” 요구와 “개학 연기를 강행하는 사립 유치원에 대해 법령에 따라 엄정 대처하겠다”고 천명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은 개학일 다음 날 한유총의 설립 허가 취소를 공식화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단법인이 목적 외 사업을 하거나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했을 때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한 민법 38조를 한유총에 적용하겠다”면서 “취소 절차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이번 사태가 ‘아동 학대’ 수준의 범죄 행위라고 분노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교육권 침해를 넘어 유아교육법과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 학대 범죄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터넷 학부모 카페 등에서도 “개학 연기 철회와 상관없이 하루라도 개학 연기를 한 유치원을 제재해야 한다”며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뤘다.
한유총의 백기 투항
이번 사태의 핵심에는 ‘유치원 사유재산 인정’과 그에 따른 ‘시설 사용료’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사유재산성은 일부 인정할 부분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유치원 역시 비영리 교육기관인 ‘학교’인 만큼 시설 사용료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유총은 헌법 23조를 근거로 유아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시설비, 인건비, 급식비, 교재비, 관리비가 필요하다며 이 중 시설비, 즉 시설 사용료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유치원 설립자가 자발적으로 한 것인 만큼 헌법 23조의 보상요건인 ‘강제성’과 ‘기본권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또한 사립 초·중·고등학교 등 다른 학교급과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설명한다.
교육계에서는 시설 사용료 요구를 설립자 수익 문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설립자는 원장을 겸한 경우 원장 인건비 등으로, 그 외 가족을 유치원 경영에 참여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이익을 거둬왔다. 그러나 국가 관리 회계 시스템(에듀파인) 도입 등으로 회계가 투명해지면 이런 방식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진다. 이에 시설 사용료 명목으로 임대료 등을 받아 수익을 보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한유총 측 주장의 배경이란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유치원이 ‘학교’라는 근본적 인식 변화 없이는 당국과 사립 유치원 간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만큼 언제든지 똑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 결국 ‘사임’
사립 유치원의 개학 연기를 주도했던 이덕선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사장이 결국 사임했다. 정부의 ‘유치원 3법’ 저지의 기치를 내걸고 임기 3년의 이사장직에 취임한 지 정확히 3개월 만이고, 개학 연기 사태를 일으킨 지 7일 만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3월 11일 입장문을 통해 “사립 유치원의 운영 자율권 그리고 사유재산권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얻지 못해 송구하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이사장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그의 이번 사임 결정은 지난 3월 4일 유치원 ‘개학 연기 철회’를 발표하면서 “수일 내 거취 표명을 하겠다”는 약속의 결과로 보인다. 당시 그는 “금번 ‘개학 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특히, 사립 유치원에 유아를 맡겨주신 학부모께 고개 숙여 사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말 비상대책위원장 신분이었던 이 이사장은 그해 12월 11일 열린 한유총 임시대의원총회에서 단독 입후보해 찬반 투표 없이 제8대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한유총 측은 “정관상 이사장 후보가 1명이면 투표를 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이사장으로 확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선출 소감에서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가 아닌 잘못된 유아 정책과 싸우고 있다”며 “유아교육의 현실을 모른 채 여론 재판으로 몰아가는 것에 대해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고 부르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유치원 개학 연기 첫날인 지난 3월 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이사장에 대한 횡령·탈루 의혹을 신속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사립 유치원 비리를 폭로한 박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 이사장은 국회와 교육 당국으로부터 횡령, 세금 탈루 등 숱한 혐의를 지적받았고 일부 혐의로 작년 7월 검찰에 고발된 바 있다”며 사정 당국의 수사를 재촉했다. 박 의원은 감정가 약 43억원 규모의 숲 체험장 구입 과정에서 자녀와 얽힌 세금 탈루, 다운계약서 작성 의혹, 교재·교구 납품업체와의 리베이트 의혹 등 자신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이 이사장 관련 비리 의혹을 거론하고 아직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검찰과 과세 당국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