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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의 생각

사춘기 소년 소녀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청춘 스타’ 정우성은 이제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한다.

On March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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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엔 진중함이, 미소엔 소년의 순수함이 공존하는 정우성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춘 스타였다. 그가 영화 <비트>(1997)에서 달리는 모터사이클에 앉아 두 눈을 감고 양팔을 펼치는 장면이나 말보로 레드에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장면은 지금도 남자들의 로망을 실현한 장면으로 회자되곤 한다.

“영화 <비트>는 제게 큰 의미였지만 동시에 영화라는 것은 무섭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줬어요. 어린 친구들이 ‘형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라는 말도 많이 했으니까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괜히 제 손이 민망했어요. 그때부터 배우로서 책임 의식을 갖게 됐어요.”

그로부터 22년이 흐르고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사회적 사안에 대한 견해를 명확하게 말하는 배우, 어른으로 자리 잡았다. KBS 새 노조를 지지하며 공영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영화 <아수라>(2016) 팬 대관 행사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앞으로 나와!”라고 외쳤다. 제주도의 예민 난민 사태와 관련해 “난민과 함께해달라”고 말해 난민 유입 시 예상되는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듣는가 하면, 최근에는 JTBC 드라마 <SKY 캐슬>에 출연한 배우 염정아를 두고 “꽃은 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인터뷰 현장에선 최근 해당 드라마를 몰아 보기 시작했다는 정우성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배우 염정아의 연기를 칭찬하는 의미로 전달됐으나, 여배우를 ‘꽃’에 비유하는 것은 성차별적인 표현이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우성은 자신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면 반대 의견을 지닌 이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명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정우성이 2019년에 처음 선보인 영화 <증인>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한때 민변(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인)계의 파이터로 불렸지만 지금은 현실과 타협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는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는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 순호는 지우를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지우의 세계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아수라> <더 킹>(2017) 등 근래 유독 거칠고 강렬한 캐릭터를 맡아온 정우성의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시나리오를 고를 때부터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동안 제한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거나 자신을 감추는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디자인해야 했어요. 그런데 순호는 일상에 녹아 있는 캐릭터라 자연스럽게 대사를 하고 행동할 수 있었어요. 마치 공기 좋은 숲속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었죠.”

영화는 클라이언트가 법이고, 돈이 곧 정의가 되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때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쳤던 순호는 파킨슨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다 생긴 빚 때문에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원래라면 5년을 복역해야 할 사람을 집행유예로 나오게 한다. 그러던 중 살인 용의자의 국책 변호를 맡아 무죄를 입증하면 승진시켜준다는 로펌 대표의 말에 덜컥 의뢰를 수락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물질을 숭배하는 세상이에요. 물질을 좇다 보면 직업이 지녀야 할 본분을 잊고 정당성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의식이 형성돼요. 하지만 직업적인 책임과 의무는 물질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라는 직업이 그런 질문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변호사는 죄에 걸맞은 무게로,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게 처벌을 받게 하는 직업이잖아요. 높은 수임료를 받고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변호사의 직업적 윤리 의식이 정당한지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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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을 하나로 결정지으려고 해요.
그래서 100점이어야 완벽하다고 말하죠. 10점이어도, 1점이어도 행복한 거잖아요.
행복을 재는 순간부터 행복과 멀어져요.

정우성은 <증인>을 통해 배우 김향기와 17년 만에 재회했다. 그와 함께 제과 브랜드 CF를 찍었던 만 29개월의 김향기가 어느덧 예비 대학생이 됐다. 워낙 오랜만이라 감회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정우성이지만 지나간 세월에 놀랐다며 웃어 보였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나지 않아서 예전 사진을 봤는데 어렴풋이 이미지가 떠오르더군요. 그 아이가 향기라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예전에 여진구도 무릎에 앉혀 떡볶이를 먹인 적이 있는데, 그때도 떠올랐어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으면서 제 나이가 자각되더군요.”

그는 과거를 떠올리며 김향기를 동료라고 고쳐 불렀다. 인연의 연결 고리가 있었을 뿐 각자 다른 시대에서 다른 경험을 한 개체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려도 온전한 경험과 이해와 갈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바라보고 존중해야 한단다. 그는 배우로서 김향기라는 배우를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김향기라는 배우와 함께 연기한 건 처음이에요. 동료로서 지켜본 향기는 큰 배우였어요. <우아한 거짓말>(2014)과 <신과 함께>(2017, 2018)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빛이 깊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장에서 보니 성숙한 사고를 하는 친구더군요. 극 중 캐릭터와 같은 처지에 놓인 실제 인물과 가족들이 작품을 보고 상처를 받을까 봐 고민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역할이 사회에 노출됐을 때 생길 부수적인 작용까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지닌 성숙한 배우라고 생각했죠.”

정우성은 극에서 “아저씨는 좋은 사람인가요?”라는 김향기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다가 극 말미에 이르러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좋은 사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정우성은 자신 역시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서 그 점이 순호와 닮았다고 말했다.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시작이 아닐까요?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서 어떤 사람이 되려는지 되새기며 의미를 찾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지우가 순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해주는 장면에서 울컥했어요. 평가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그 말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스스로 자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자신이 판단하는 게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시 행복하게 살아왔느냐고 고쳐 물으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어요. 행복의 척도는 순간마다 노력을 했느냐의 차이고, 그 빈도수에 달렸으니까요. 다만 제가 선택한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하며 살아왔느냐고 한다면 소중한 것에 고마워하고 그것들을 지키면서 살려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는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한 모금 마실 때 행복한 감정이 밀려온다고 이야기했다. 또 인터뷰 전날 배우 주지훈에게 연락했더니 “어디 계시냐”는 답변이 돌아와 행복했단다. 모든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니라 선택에서 오는 것으로, 어떤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지가 중요하단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을 하나로 결정지으려고 해요. 그래서 100점이어야 완벽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10점이어도, 1점이어도 행복한 거잖아요. 100점을 만점으로 두고 행복을 재는 순간부터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아요. 어떤 것도 당연한 게 없다고 생각하며 살면 행복한 일이 많아져요. 요즘 말로 소확행이라고 하죠? 소확행의 횟수를 늘려가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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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인간 정우성의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청춘 스타’라는 수식어를 벗고 ‘정우성’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많은 의미를 전하는 그에게,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어떠냐고 물었다.

“‘청춘 스타’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싫진 않았지만 벗어던지려고 했어요. 스타라는 말이 주는 좋은 것들에 매몰됐다면 저는 어느 순간 사라졌을 거예요. 스타는 현상일 뿐이고 타인이 제게 주는 것이지 제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지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어떤 수식어도 저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저의 내면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게 결국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노력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 순간 저의 모습이 완성되겠죠.”

그는 정우성이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사회적 사안에 솔직하게 견해를 드러내는 것일 테다. 이런 성향은 그에게 안티팬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는 “의견이 충돌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의 간극이 줄어든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서 바람직하다고 느낄 때도 있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고 깨우칠 때도 있어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 게 세상이니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 의견이 정당하다고 여겨도 시대가 바뀌어 그 뜻을 바라지 않는다면 시비를 가리기보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고요. 세상 모든 대상이 저를 긍정적으로 이끌어줬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으로 남아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동안 정우성은 스스로에게 “내가 이걸 왜 해야 되지?”라는 질문을 한다. 자신의 소신을 드러내는 것이 배우 활동에 상호작용보다는 이해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단다. 그가 스스로 질문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과 맞물려 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밖에 나와 혼자 생활했어요. 학벌도 좋지 않고, 성장하면서 만들어지는 인맥도 없었죠. 그래서 제게 인생은 스스로 세상에 나를 증명해야 되는 과정이었어요.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제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든 것 같아요.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너 지금 잘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니 좋은 버릇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는 다시 배우의 책임 의식으로 돌아갔다. 한 배우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주어진 명성만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그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선 안 된다는 게 정우성의 생각이다.

“모든 것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25년 경력의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 활동할 때 주변의 시선에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는 거죠. 그래야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온전히 내 것을 끌고 가는 동력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증인>의 순호는 계속해서 자신의 타협이 정당한지에 대해 고민하는 캐릭터다. 정우성은 순호를 통해 스스로 선택에 대한 정당성을 찾는 사람인지 되돌아봤다고 말했다. 정우성은 지금 한 인간으로서 삶을 완성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2019년 03월호
2019년 03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