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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라는 멋

작가 리사 콩던이 말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대단한 만족을 주며 많은 것에서 해방되는 과정이다.” 이정재가 그랬다. 그의 주변엔 편안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On March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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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변이 좋았다

차분했고, 깊었다. 오랜 시간 톱스타로 지내온 자의 아우라가 풍겼다. 특별하지만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이 모든 것이 '중후함'을 향해 있었다.
배우 이정재가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최근 <신과 함께>에 특별 출연해 많은 사랑을 받은 그가 영화 <대립군>(2017) 이후 2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를 선보인 것이다. 영화 <사바하>는 신흥 종교단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로, <검은 사제들>(2015)의 장재현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촘촘하게 엮은 미스터리로 장 감독만의 세계관을 펼쳐냈다는 평이다. 이정재는 극 중 '사슴동산'이라는 신흥 종교단체의 실체를 쫓는 박 목사 역을 맡았다. 영화 속 화자이자 관찰자이기도 한 박 목사는 전형적인 목사 캐릭터와는 다르다. 줄담배를 피우고 돈을 밝히는 속물로 나온다. 하지만 점차 많은 의문과 사건을 마주하며, 본격적으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인물이다. 이정재가 5년 만에 맡은 현대극이기도 하다.

짧게 줄이자면, '예고편은 그다지, 영화는 훌륭했다'.
역시 스릴러물은 효과, 사운드, 음악 등등 후반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촬영을 하면서는 이 장면이 어디에 어떻게 편집될까 궁금했는데, 후반 작업을 하는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와 영화를 본 뒤의 느낌이 달랐고, 더 완성도 있게 나왔어요. 만족합니다.


5년 만에 현대극으로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신세계> <관상>을 찍고 난 뒤 남성적인 역할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동안 조금 강한 캐릭터를 해왔으니까 그것과는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좋은 기회였죠.


다작을 하지 않는 배우다.
아, 그런가요? 다작을 하는 배우여야 하는데 말이죠.(그가 유쾌하게 웃었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코미디류를 하지 않는다.
제가 코믹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잘 안 먹히더라고요.


브로맨스를 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
너무 많지요. <흑수선> 때 잠깐 만난 적 있는 안성기 선배와도 해보고 싶고, 강동원 씨, 이병헌 씨와도 해보고 싶어요. 물론 '20년 지기' 정우성과도 하고 싶어요. '그 아저씨'와는 <태양은 없다>(1999) 이후 작품은 함께 못 하고 있어요(그는 정우성을 '그 아저씨'라고 특별히 애칭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고, 어느덧 20년이 지난 거죠. 작품을 언제 함께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시켜줘야 하지요.(웃음)


말 나온 김에, 20년 절친 정우성은 어떤 사람인가?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에요. 배려심이 깊고 책임감도 크죠. 무엇보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예요. 그 아저씨가 출연한 영화 <증인>도 현재 개봉 중이죠? 서로 장르가 너무 다르다 보니 경쟁이기보다는 상생입니다.(웃음)


'영업 비밀'을 들었다. 역할을 선택할 때 과거에 해봤던 비슷한 캐릭터는 거절한다고.
영업 비밀인데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맞아요, 웬만해선 맡았던 역할을 피해가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만큼 안 해본 역할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사실 남자 배우가 캐릭터를 변주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아요. 직업이라도 바꾸면 외모나 말투 등을 변형할 수 있어 캐릭터를 고를 때 직업에 신경 쓰는 편이죠. 단순히 못 해본 것에 대한 궁금증도, 욕구도 있어요. 안 해본 걸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어떤 역할의 섭외가 많이 오나?
아무래도 이정재라는 배우에겐 남성적인 걸 원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형사나 안기부 요원 같은 역할이 많이 들어와요. 독창성 있는 캐릭터면 형사 역도 마다치 않겠는데, 기시감(데자뷰)이 드는 시나리오도 많거든요. 게다가 거의 마약 소재고요.


그것 외에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가?
시나리오죠. 구성과 캐릭터가 살아 있는지, 연출자가 의도한 주제가 동시대 관객들과 소통이 되는지를 보죠. 개인적으로 현대극에 대한 조바심도 있었어요. 그중 <사바하>는 제게 전달된 시나리오 중 현대극이기도 하지만 가장 흥미 있고 신선하고 독특했어요. 더군다나 장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을 너무 재미있게 본 터라 믿음이 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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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영화는 본업이지만 취미다. 지금도 장르를 불문하고 하루에 한 편은 보는 편이다.
이는 지난 26년간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재라는 멋은 영원하다.

장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스릴러 장르에 처음 도전해 감정 표현 수위 등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어요. 장 감독과 호흡을 맞추는 데도 시간이 걸렸죠. 감독님이 좋아하는 말투와 템포 등은 제가 처음 접하는 연기 톤이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거의 모든 대사를 시연하면 휴대폰으로 촬영한 뒤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어요.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고요.(웃음) 기본적으로 위트가 있는 사람이고, 배우들과 소통을 잘하는 감독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작품마다 감독의 요구와 취향을 100% 맞추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 것을 앞세우면 모든 연기가 비슷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언뜻 보면 종교색이 짙은 영화라 시나리오를 보고 낯설지는 않았나?
일부이긴 하지만 뉴스를 보면 종교인들이 저지르는 범죄, 사건들을 접할 때가 있잖아요.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종교인이나 종교단체의 비리를 추적하는 목사 이야기였어요. 종교 영화라기보다는 범죄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용이 어렵거나 복잡하지도 않고요.


배우보다 이야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의미다.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그런 면이 강하죠. 이 영화는 미스터리하게 시작해 미스터리가 하나씩 풀리고 후반부엔 정리가 되죠. 주제가 명확합니다. 배우의 매력을 좇아가는 작품이 아니라 스토리와 구성의 재미로 보는 영화예요. 혹자는 의상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안 보여서 아쉽진 않았냐고 하는데, 글쎄요. 딱 그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나 싶어요. 누군가 현실성이 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배우들이 현실에서 있을 법한 모습으로 출연해야 스토리가 더 와 닿잖아요. 그런 면에선 의상이, 영화라는 장르의 매력과 역할의 수위를 적당히 살렸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는 만족해요.


'박 목사'라는 캐릭터를 스스로는 어떻게 해석했나?
짧게 정리하면, 신을 만나고 싶은 남자. "세상이 이렇게 험악한데 당신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나요? 왜 이들을 보살피지 않나요? 나 좀 만나주세요." 하는 역할이에요.


영화 작업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
과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만들다 보면 욕심이 생기죠. 애정하는 장면이고 필요한 내용이라고 다 넣으면 이야기가 많아지고 혼란스럽죠. 주제가 명확하지 않아지죠. 전체 맥락을 계산하지 않고 넣다 보면 편집이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도 있고요. 특히 이번 영화는 미스터리 장르라 사건을 하나씩 파헤쳐가는 과정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고 해결도 해야 하기에, 2시간 이내에 끝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전체적인 맥락에서 직접 연관이 없다면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작업이 늘 어려워요.


요즘 연기 잘하는 후배가 많다. 이 영화에도 싹수 보이는 충무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신인이지만 신인이 아닌 배우가 너무 많죠. 완벽하게 준비된 채 일하는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과 일하다 보면 배우고 느끼는 것도 많아요. 일하기도 수월하죠.(웃음) 저와 붙는 신이 거의 없었지만 박정민이라는 배우도 너무 훌륭하고, 저와 붙는 장면이 많은 이다윗이라는 친구 역시 보통이 아니죠. 그 친구의 연기는 참 독특해요. 전작인 <남한산성>(2017)을 봤는데, 분량은 적었지만 강렬했어요. 사극인데도 자기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내면서 연기하는 모습이 신선했죠. 그 친구가 연기하면 어떤 역할이든 새로워지는 것 같아요.


어느 현장에 가도 선배 배우다. 현장에서 어떤 스타일인가?
현장 분위기가 긴박해요. 찍어야 할 분량이 많고 즉석에서 상의할 것도 많죠. 배우들과 교류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나이가 그렇게 됐나 봐요. 현장에 나가면 '선배'라는 소리를 많이 듣게 돼죠. 그렇다 보니 공동 제작을 하거나 같이 영화와 관련된 뭔가를 해보자는 제의를 많이 받아요. 제 위치가 충무로의 중간 선배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필요하면 어떻게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이고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드라마가 넘쳐난다. 안방극장 컴백 계획은 없나?
계획은 없지만 늘 열려 있어요. 훌륭한 작가님이 너무 많잖아요. 소재가 다양한 건 물론이고 오히려 영화보다 더 좋은 드라마도 많더라고요. 사실 제가 드라마 마니아입니다. 최근에 <SKY 캐슬>에 푹 빠져 있었죠. 그 아저씨(정우성)도 <SKY 캐슬>의 팬이었는데, 저는 본방 사수, 그 아저씨는 몰아 보기를 했답니다.(웃음) 최근엔 넷플리스 드라마 <킹덤>과 SBS <해치>를 봤어요. 재미있더라고요.


<킹덤>은 공중파가 아닌 넷플리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방송된다. 플랫폼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럴수록 콘텐츠에 더 집착하게 되죠. 테크니컬은 다들 잘하시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조명이든 편집이든 잘하는 몇 분만 계셨죠. <신과 함께>라는 독특한 주제의 영화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더욱 이야기에 집중하고, 주제에 대한 전달력을 더 생각하게 돼요.


그에게 영화는 본업이지만 취미다. 지금도 장르를 불문하고 하루에 한 편은 보는 편이다. 이는 지난 26년간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재라는 멋은 영원하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03월호
2019년 03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CJ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