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기도 전에 채현국 선생이 말했다. "쓸모없는 늙은이가 뭘 안다고. 길게 살았다고 찾아온 모양인데, 늙은이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져 있어요. 고로 내 말에 틀린 게 많을 거요. 그러니까 내 말을 기억하지 말 것, 듣고 버릴 것,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할 것. 당부합니다."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선생의 요즘 화두가 '변화'인 듯했다.
"우리나라가 1945년까지 식민지였습니다. 저항도 변변히 못 하고 짓밟힌, 형편없는 삶이었죠. 마치 고대 사회 같은 삶, 상상이나 갑니까? 젊은 사람들은 실감이 안 나겠지만 매 끼니를 먹기 위해 절구질, 맷돌질을 해야 했던 나라였어요. 숟가락이 없어 나무젓가락으로 먹었단 말이오. 강원도엔 전기가 1975년도에 들어왔으니 말 다했죠. 한데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급기야 그 변화가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이 변화가 선을 넘으면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단 말이오."
카랑카랑하다. 선명하고 뜨겁다. 인터뷰는 그렇게 전조 없이 훅 들어갔다.
단순하게 살아야 해요. 단순함을 놓치는 순간, 꼰대가 됩니다.
나도 단순하지 못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단순한 말을 이렇게 그럴싸하게 만들잖아요.
더 단순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순박해야 합니다.
늙은이라고 스스로 말하시는데, 실제로 세대 갈등이 심각합니다. 웹상에선 노인 혐오가 하나의 현상이 돼버렸습니다. 노인을 '꼰대' '~충'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세대 갈등'이라는 말이 불만을 표현하기 위한 감정적인 단어로 쓰이고 있어요. 이것이야말로 무의미합니다. 화합을 방해하는 혼란의 단어로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남을 멸시하면 자기가 망합니다. 책임 없이 노인을 비하하는 사람들도 모두 노인 예비 후보들입니다. 노인은 늙은 결과가 아니라 살아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노인들도 명심해야 합니다. 나쁜 습관을 가진 '꼰대'가 많아요. 지 잘한 것만 떠들잖아요. 스스로 멸시받을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대 갈등 외에 남녀 갈등도 심각합니다.
갈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같은 식물인 '갈'과 '등'조차도 서로 못살게 군다는 말입니다. 한데 이 사회현상은 금방 고쳐질 겁니다. 우습게 볼 일을 우습게 봐야지, 어디 여자를 우습게 봅니까? 사회 변혁의 과정입니다. 여성들이 경제력을 가지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불과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비하가 당연한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여성은 남성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마땅한 열등한 인간으로 생각돼왔어요. 그래서 오늘날의 미투가 더 강해져야 합니다. 잘못된 고정관념을 고치려면 더한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요? 여성이 열등하다는 생각이 뼛골까지 박힌 사람들입니다. 힘 좀 세고, 힘 좀 약한 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그걸 가지고 여성을 열등하게 보는 거 아닙니까. 이 갈등은 오히려 사회를 변혁시킵니다. 더 거세게 나아가야 합니다.
꼰대, 여혐, 남혐 등 갈등으로 인한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남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자세가 언제부터 생겼다고 생각하나요? 학교 다닌 뒤부터 생겼습니다. 학교에서 남을 존중하고 협력하는 걸 가르쳐야지, 같이 구슬치기 하는 단짝 놈과 경쟁시키고, 동학년 놈들과 경쟁시키고, 시험제도, 선발제도…. 상대를 혐오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쉽게 멸시하는 겁니다. 잘못된 것을 정당한 것처럼 둔갑시켜 매일 경쟁시킵니다.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꼰대'라는 단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도 '꼰대'라는 말을 나나 친구들한테 쓸 겁니다. "꼰대짓 하는 거 아니야?" 하고요. 꼰대라는 말의 어감이 훌륭하게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데 단순하게 욕설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나는 행동하는 가치관에 의미를 둡니다. 꼰대라고 불리는 어른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한데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 보세요. 나 같은 늙은이가 나설 데에 나서지 않으니 꼰대라고 불리는 겁니다. 창피한 줄 알아야지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단순하게 살아야 해요. 아무리 유식해도 단순함을 놓치는 순간, 꼰대가 됩니다. 나도 단순하지 못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들 보세요. 단순한 말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자꾸 그럴싸하게 말을 만들잖아요. 더 단순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순박해야 합니다.
수십 년째 신문을 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는 게 없어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사형 집행으로 무고한 사람 수 명이 죽었습니다. 내가 당시 신문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무법하게 재판한 걸 뻔히 아는데, 신문에 안 나오더군요. 그 이후로 신문을 안 봅니다. 광고 장사만 해대는 신문을 왜 봅니까? 그 바람에 만델라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온 걸 몰랐어요. 그 사람은 권력자, 정치가가 아니고 성인입니다. 그런 사람이 내 땅에 온 걸 몰랐으니 억울해서 잠시 신문을 다시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눈빛은 빛이 납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못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해요. 한데 요즘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기억력이 영 신통치 않거든. 기억력은 참 대단한 능력, 가치 있는 능력입니다. 다행인 건 내가 집중력은 좀 있어요. 전쟁 통에 학교를 열한 번 옮겨 다니면서 한글을 제대로 못 배웠어요. 눈치껏 대충 읽기를 한 2년 했나. 수업 시간에 괜히 바보 취급 안 당하려고 그림 같은 글자를 건너뛰지 않고 뚫어져라 봤단 말이에요. 그 덕분에 집중력이 생겼어요. 나중에 아버지한테 한글을 모르는 걸 들켜 그 자리에서 두어 시간 배웁니다. 다음 날부터 신이 나서 누나 방에 들어가 손에 잡히는 책을 전부 소리 내서 읽었지요. 그래서 나는 압니다. 세상에는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게 있다는 걸요.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끝없이 활동하십니다. 에너지는 어디서 나옵니까?
내가 삶에 대해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데가 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도발하고, 헛소리하고, 부글부글 끓지요. 그렇게 살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학교에 가면 사람들이 죄다 통조림이 됩니다. 생각하는 게 똑같아져요. 한데 나는 그때도 삐딱했습니다. '거 믿을 거 못 된다!' 하고요. 어른들이 거짓말한다는 걸 일찌감치 알았거든요.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지요. 이승만, 박정희 밑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대를 살았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잡혀갔을까 봐 집에 들어가기가 무시무시한 하루하루를 살았단 말이오. 그러니 속에서 천불이 나고 만불이 안 나겠어요? 어찌 맥없이 살겠어요? 겉으로 볼 때는 우물쭈물해 보이지만 속은 팔팔 끓고 있는 것이지요. 압박과 위협을 당하면 저항할 수밖에 없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우리 모두 깨우쳤을 거 아닙니까. 다들 속에서 천불이 났잖습니까. 여러 사람이 희생해야 아는구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야 이게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라는 걸 아는구나, 안타깝지요.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화두입니다.
삶 자체가 결정이고, 결정은 늘 모험입니다.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어떻게 압니까?
살면서 사고는 얼마든지 납니다. 인생이 그런 건데 뭐가 두렵습니까?
일상은 어떠신지요?
친구들이 많이 소천해서 덜 바쁩니다. 이제 친구들이 얼마 안 남았어요. 있어도 아주 멀리 있는 친구, 늙어서 자주 보지도 못하는 친구들이죠. 정말 늙은이로 삽니다. 남한테 폐 안 끼치려고 하루 만보 걸으며 건강관리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잘 걸었습니다. 대한민국 이사장 중에 차 없는 사람은 아마 나 혼잘 겁니다.
학교에서의 일상도 궁금합니다(선생은 양산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학교 건물 안에 거처가 있다).
경비실 뒤에 방이 있어 편합니다. 내 일이라는 게 학생들이 공부하고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선생님들 뵈면 인사하는 겁니다. 저녁엔 간혹 선생님들과 약주 한잔씩 합니다. 주로 젊은 사람 꼬여서 한잔씩 마시는데, 젊은 사람한테 듣고 배울 게 많아요. 되레 세대 갈등이 아니고 세대 교류죠. 늙은이들은 꼭 지켜야 할 게 없지 않습니까. 지켜야 할 게 있는 사람은 술 마시면 안 되지요. 낮에 학생들과 접촉할 일이 없으면 낮술도 간혹 하지요. 한두 잔밖에 못 먹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하루하루 별게 없어요. 그냥 노인의 일상입니다. 주책없는 노인네요. 학교에 나무와 풀도 많습니다.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나를 위해서예요. 교육을 위해서 있다는 건 가당치 않은 말이지요. 난 30년 넘게 이사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선생에게든 학생에게든 훈화한 적이 없어요. 자식에게도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행동해라, 한 적이 없지요. 헛소리죠. 꼰대가 되는 거죠. 그랬더니 우리 교장, 교감도 훈화를 안 해 조회할 일도 없어요. 조회 좋아하는 학생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에 대한 탐구도 하십니까?
지금은 죽음을 마구 연장시키는 사회예요.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요. 유전자를 조작해 죽음을 조정하고 있어요. 인간 조작입니다. 뇌사가 아닌 정도, 폐와 심장이 뛰게만 하는 상태를 유지시킵니다. 합의 없이 법률상의 죽음을 연장시키고 있어요. 인간은 죽을 때 죽어야 하는 이치를 배워야 합니다. 생물은 태어날 때 끝이 있다는 걸 알지 않습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형이 자살을 했습니다. 자살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형이 자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는 삶과 다른 바 없이 삽니다. 나는 그걸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음에 익숙해졌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도 많이 했지요. 죽음, 두렵죠. 그러나 죽음이 두렵거나 혐오스러운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훈련돼 있어서 그래요. 어릴 때 어두운 곳에 가면 겁이 나고, 냄새 나는 곳이 싫고, 그래서 무섭다고 하잖아요. 변소에 가면 그 냄새와 어둠이 합쳐져 공포가 밀려옵니다. 거기서 길들여진 겁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결'입니다. 그럴싸하게 삶이 완결되는 것이죠. 죽음이 불안과 공포라면,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닙니까? 그 연장선에서 죽음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쉼'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릴 때는 죽음이 무섭더니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두려운 게 있습니까?
많지요. 어린 시절 몸도 약했고 학교에서 두들겨 맞기도 많이 맞아서 매사에 공포가 심했습니다. 나는 인간이 얼마나 끔찍한지 봤어요. 지금도 두려움과 공포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몸으로 느꼈으니까요. 한데 몸속에 들어앉은 이 공포를 이겼습니다. 공포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겐 있거든요.
'시대의 어른' '풍운아' '거리의 철학자' 등 수식어가 많습니다.
호의로 불러주시는 건데 저로서는 가당치 않게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옷이 남루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누가 나를 찾아오기보다는 내가 누구를 찾아가는 일이 많아요. 게다가 아무나 만나도 잘 떠듭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거리의 철학자'라고 하더군요. 또 철학과 나온 놈이 그 험한 탄광 사업을 해 크게 성공까지 하고 그 돈을 다 되돌려줬더니 '풍운아'라고 하더군요. 과장되게 나를 표현하는 것이 괜히 미안하고 두렵습니다. 저는 '진짜 어른'이 아닙니다. 사람을 존경한다는 건 '원수 계약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서 존경하던 놈한테 실망 안 하는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세요. 그래서 누가 날 존경한다고 하면, "내가 너한테 원수질 일이 없는데 원수 계약을 맺자고?" 합니다. 아닌 말로 존경할 일이 뭐가 있어요? 배 속에 똥밖에 안 차 있는데. 누에만도 못해요. 누에는 배 속에 비단이라도 있잖아요. '거짓말'이 무슨 말인지 압니까? 거지가 밥 빌어먹으려고 마구 하는 말이 거짓말이에요. 얻어먹으려니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존경한다는 말은 악의적입니다.
그럼에도 선생님 말씀에 기성세대가 귀 기울입니다.
저렇게 한평생 사는 놈도 있구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저렇게 살면 가족들이 얼마나 불안했을까, 알면서도 호의를 보여주죠. 특히 우리 마나님이 얼마나 골 아팠겠습니까? 저 별난 놈, 참 별나다 생각하다가도 저렇게 살아도 되겠다, 무언의 허락을 해준 겁니다. 마누라가 날 안 봐줬으면 이렇게 못 살겠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건달입니다. '건달'이란 수식어가 딱 접니다. 마누라가 동의를 안 해줬으면 건달로 못 살겠지요. 한 사람의 동의자가 있으니 믿고 살았죠. 아무래도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우리 마누라한테 장가간 일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늘 미안합니다.
사모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어머니, 할머니도 고맙지만 제일 고마운 사람은 마누라입니다. 얼마 전 결혼 58주년이 됐어요. 한데 내가 깜빡했지 뭡니까. 특별한 말 한마디 안 하고 선물 하나 안 했는데 군소리 하나 없습니다. 나이 먹으면 더 섭섭한 법이거든요. 저 인간 저 꼴이니까 봐주자, 그랬을 거예요. 이게 내 삶입니다. 늘 이렇게 신세 지고 삽니다. 안 쫓겨난 게 기적이죠. 이게 내 실체예요. 내가 무슨 멘토입니까?
요즘 새롭게 시작한 일, 새로운 관심사가 있으십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시대의 변화입니다. 오랜 관심사이지만 요즘 들어 그 변화가 끔찍하게 다가옵니다. 첨단을 지나 최첨단에 와 있습니다. 나노, 뇌과학, 분자생물학…. 으리으리해서 좋다는 게 아니고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이 분야에 대해선 깜깜하지만, 이 변화가 선을 넘으면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018 대한민국 최대 이슈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경기 침체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일본은 침체 상태죠. 예고된 일입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문 대통령의 남북 화해'를 비난하기 위해 경기 침체를 이용하는 건 좋지 않단 겁니다. 2018년 최고의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남북 화해 가능성입니다. 트럼프라는 걸림돌 때문에 화해로 갈 수 있는 문턱에서 좌절되긴 했지만, 이제 한반도에 투쟁과 충돌의 길은 없습니다. 우리끼리의 화해, 공존입니다. 이게 최대 이슈입니다. 남이 훼방 못 놓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만이 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 혼자서는 못 합니다. 국민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정치인들과 인연이 있으십니까?
언젠가 아침에 문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어요. 아마도 내가 연장자니 예의 차리느라 직접 전화를 한 모양입니다. 목소리 듣자마자 "앞으로 전화하지 마슈, 좋은 대통령 할 겁니다" 하고 끊었습니다. 내가 건방져서가 아닙니다. 나는 자유롭게 막 떠들어대는 사람 아닙니까.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는 순간부터 어딘가에서 규제가 들어오고, 공격을 당하기도 할 겁니다. 학생 때부터 그랬습니다. 철학과 출신들은 정치 권력이 몰면 역적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나는 규제당하기 싫은 노인이올시다. 마음대로 떠들어대면서 평생 살았는데 말년에 규제를 왜 받습니까? 내 친구가 정치를 해도 나는 그 자리에 있을 땐 전화 한 통화도 안 합니다.
오는 5월이면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입니다. 문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변호사, 사회운동가는 권력 없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한데 대통령은 권력자 아닙니까? 이런 말이 선명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문 대통령은 권력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권력의 속성을 샅샅이 아는 사람도 권력은 위험한 겁니다. 칼이나 불이 늘 위험하듯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닌 말로, 나는 갑질하는 부자였어요. 권력은 가져보지 못했지만 권력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건지 압니다. 권력 앞에선 질서도 안 통해요. 탄광 회사를 운영할 땐, 봉급과 직위 상승이 권력입니다. 먼 산속에 탄광촌이 있잖아요. 폭력이 있으면 끝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조그만 세상에서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경험했어요. 사람들이 권력을 안다고 하는데, 모르는 말씀입니다. 권력의 위선이 얼마나 끔찍한지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조금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권력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모르긴 몰라도 문 대통령 아내도 정치판에 뛰어드는 걸 꽤나 반대했을 겁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아마 언론에 대통령 다음으로 많이 노출된 정치인이 이재명 지사일 겁니다.
나는 이재명뿐만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요. 의회 민주주의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다음 선거까지만 '미래'입니다. 그도 그중 하나죠.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한 해는 '갑질'이라는 단어가 화두였습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언론에서 이 맛있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어쩌면 상술입니다. 갑질. 가증스럽고 증오스러운 느낌의 단어죠? 그런 맛있는 말은 진짜 갑질을 들춰내기보다는 오히려 진실을 감추고 헷갈리게 만듭니다. 사회적 지위로 아무렇지 않게 인권을 유린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그 말 자체가 '얄미운 짓' 정도로만 느껴지지 않습니까? 윗사람이 잘난 체하는 정도로만 느껴지잖아요. 갑질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우리가 '갑질'이라는 말로 호도하고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회피하는 면이 있습니다.
부자의 갑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엔 돈 많다는 게 죄스럽게 느껴져 자랑을 못 했어요. 줄 걸 덜 줬거나 부당하기 때문에 남보다 돈이 많다는 의식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뻔뻔해졌어요. 돈이 많다는 게 유능한 것이 됐지요. 잘산다는 이유로 갑질하고, 부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돈으로 마구 휘두릅니다. 그게 질이 더 나쁜 갑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급한 게 돈입니다. 약 먹어야 되는데 돈 없으면 죽잖아요. 배고파서 쓰러지는 놈한테는 한 끼 5,000원이 세상에서 가장 긴급합니다. 그 긴급함을 생각하면 돈으로 갑질하는 놈은 그야말로 악질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한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왜 페미니즘 운동을 긍정적으로 보냐면, 약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문제가 아니고 약자의 문제예요. 여자이기 때문에 약자일 이유는 없어요. 성별로 보는 것부터가 똑바로 보는 게 아닙니다. 약자는 멸시의 대상, 압박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출산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려됩니다. 인구가 줄고 결혼을 안 합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표현하기로는 자기 존중, 개인주의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잘못된 이기심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모험을 하고 용기를 갖게 마련입니다. 낯선 사람과 합의해 사는 게 무모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건 본능입니다. 내 집에도 결혼 안 한 남자와 여자가 둘이나 있습니다. 지들은 알 겁니다. 본능을 뛰어넘을 만큼 얼마나 이기적이면 당연히 할 모험도 안 할까요. 이기심 때문에 모험하는 줄 아는데, 모험을 하지 않는 것도 이기심이에요. 삶 자체가 결정이고, 결정은 늘 모험입니다.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어떻게 압니까? 자식을 낳아 속 썩어보고 싸우고 난리가 나도 결혼은 해보는 게 좋아요. 이혼은 그다음 문제입니다. 살면서 사고는 얼마든지 납니다. 인생이 그런 건데 뭐가 두렵습니까?
요즘 사람들은 음식으로 힐링을 합니다.
먹는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둡니다. 먹는 게 약이죠.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한테 이만한 약이 없습니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약도, 힐링도 아닙니다.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라고들 합니다.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뭘, 살기 위해 먹어요. 석가모니는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습니다. 그렇게 먹어도 산다는 걸 우리에게 보여준 겁니다. 나 같은 사람은 하도 많이 먹어서 배가 이렇게나 나왔어요. 배 나온 사람이 이런 말하면 모순이지만, 난 먹기 위해 삽니다. 먹는 게 즐겁습니다.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습니다. 얼마나 좋아하면 당뇨인데도 이렇게 배가 나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진 겁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은 건방진 말입니다.
자기를 믿으세요. 그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그리 잘못되지 않아요.
자기도 못 믿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 내가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럭저럭 다 해결됩니다.
철학자. 사업가, 교육인 등 평생 돈, 지식, 명예를 향유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되돌아보니 어떠신지요?
저는 평생을 대체로 신나는 사람입니다. 무당처럼 신나는 사람요. 어리석은 짓, 실수를 천지로 하고 부끄럽고 창피한 일도 많이 했지만 대체적으로 신납니다.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남에게 해코지 안 하는 겁니다. 행여 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쁜 마음까지 먹고 한 일은 아닙니다. 남을 좋게는 못 해줘도 해코지는 안 하고 평생 살았습니다.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남 기죽이거나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해코지만 안 해도 인생은 살 만하지요.
늘 타인의 멘토 역할을 하셨습니다. 정작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친구, 학생, 선생님들에게 하도 물어서 사람들이 골 아파하는데 특히 학생들에게 많이 물어봅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는 게 제일 맛이 납니다. 답이 있으니까요. 나하고 비슷한 사람한테는 별로 얻어 갈 게 없어요. 안 비슷한 사람에게서 얻어 가는 게 있죠. 그래도 살아가면서 친구 중에 존경할 수 있는 스승도 있으니 운이 좋은 사람니다. 한 사람을 얘기하라고 하면 그 사람한테 실례가 될까 봐 겁이 나지만, 저는 임락경 목사(<비워야 산다> 저자, 자칭 '돌팔이 목사')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후배고 친구지만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임 목사가 강연하면 지금도 어디든 쫓아가서 몇 날 밤을 같이 지내며 듣고 배웁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십니까?
일상이 행복합니다. 특별하게 행복할 게 없어도 행복합니다. (그때 선생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반갑게 안부를 물었다.) 지금 이렇게 오랜만에 전화 오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 특별히 강렬했던 인생의 순간이 있습니까?
역시 내가 외아들이라 그런지 첫째 아들을 낳았을 때가 얼른 떠오르네요. 그때 아주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손자를 낳았을 때도 참 행복했지요.
인생의 말년입니다. 어떤 생각이 종종 드십니까?
괴롭고 무섭고 야비해도 이 세상이 낫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습니다. 난 좋은 세상을 산 게 아닌데도 이렇습니다. 인생, 살 만합디다. 나는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사람이 못 돼요. 늘 충돌해왔지만 희한하게도 이 세상에 나와 생각이 같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참 신비로워요. 나쁜 놈 천지인 것 같은데 말이 통하는 거 보세요. 나 같은 사람도 많다는 겁니다.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생각도, 노력도 비슷하게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인생에는 아무리 고민해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지요. 그것 때문에 좌절하기도 할 겁니다. 한데 인생이 그런 게 아니고 그 순간에 잠시 거미줄에 묶여 있는 겁니다. 거미줄에 걸리는 게 인생이거든요. 그러니 안 좋은 일 앞에서 너무 절망할 필요도 없고 인생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카페에서 잔잔한 음률의 올드 팝송이 흘러나왔다.) 이것보세요, 신의 선물 같은 좋은 노래 아닙니까? 살다 보면 이런 게 많아요.
끝까지 놓지 않는 삶의 가치가 있으십니까?
생각하는 것. 생각만이 삶의 내용입니다. 사회에 길들지 말고 계속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세요. 노인들이 미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듣지 마세요. 미래는 젊은 사람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남이 말하는 대로, 사회에 길든 대로 살지 말고 어떻게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으로 살아보세요. 하다 보면 틀리고 또 틀릴 겁니다. 나는 팔십이 넘은 지금도 계속 틀리고 있습니다. 엉터리라도 본인만의 해답을 추구하면서 사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을 안 하면 죽을 때 허무합니다. 죽을 때 허무하지 않으려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생각을 기록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삶이 날아갑니다. 그리고 표현하세요. 이 시대는 표현한다고 해서 혼란스러워지지 않습니다. 활발할 뿐이죠. 시끄럽고 복잡한 것 같아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는 앞으로 5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 용기를 가지세요. 인간은 매사에 자꾸 꾀가 나잖아요. 그래서 단순하지 못한 겁니다. 자기의 꾀를 짓밟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부질없어요. 매 순간 도전하고 모험하세요. 마음가짐을 그렇게 바꾸세요. 그리고 자기를 믿으세요. 그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그리 잘못되지 않아요. 과학기술도 도전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 아닙니까. 결국 우리는 도전하는 사람에게 영향 받고 있습니다. 자기도 못 믿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 내가 괜찮은 사람이다, 그렇게 믿으면 그럭저럭 다 해결됩니다.
2008년 원로 언론인 임재경은 한 글에서 선생을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어주는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다."
채현국 선생은 스스로를 이렇게 말했다.
"암만 생각해도 한평생 건달로 살았다. 남에게 해코지하지 않는 건달.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다."
또한 자신의 책 말미에 이렇게 서술했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때로는 인간이 종교보다 더 큰 메시지를 준다. 인간은 위대하다.
채현국
1935년 대구에서 사업가 채기엽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방송국(KBS 전신) 공채 1기 연출직에 입사했다. 3개월 뒤 사표를 내고 아버지의 탄광 운영을 돕는다.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거부가 되지만 직원들에게 재산을 모두 분배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뒤에서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핍박받는 민주화 인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활동 자금을 지원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효암학원(효암고등학교, 개운중학교)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쓴맛이 사는 맛>(비아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