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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특별한 이나영

6년 만에 컴백한 배우 이나영은 질문에 꾸밈없이 소탈하게 답변했고 궁금한 것은 되물었다. 이나영과 함께한 평범하지만 특별한 오후.

On December 0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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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외모만큼 이나영의 결혼도 비현실적이었다. 갑작스럽게 결혼한 것도 놀라운데, 강원도 정선 계곡 인근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으로 결혼식을 진행한 것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대중에게서 멀어졌던 그녀는 얼마 후 출산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다시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영화 <하울링>(2012) 이후 6년 만에 영화 <뷰티풀 데이즈>로 컴백한 것이다.

“신비주의라고 하시는데, 저는 평범해요. 부부 생활도, 육아도 모든 것이 평범하죠. 특별한 이유 때문에 쉰 건 아니에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작품으로 자신 있게 연기하고 싶었어요.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부담도 생겼지만 그럴수록 애매한 것을 선택하느니 확실한 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신중하게 고르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6년의 공백을 깬 이유

<뷰티풀 데이즈>는 중국인 조선족 대학생 ‘젠첸(장동윤 분)’이 병든 ‘아버지(오광록 분)’의 부탁으로 오래전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이나영 분)’를 찾아 한국에 오면서 시작된다. 젠첸은 술집을 운영하며 한국인 ‘남자(서현우 분)’와 살아가는 엄마를 보고 실망하지만, 엄마의 일기를 통해 오랫동안 감춰졌던 과거를 알게 된다. 극에서 이나영은 젠첸의 엄마 역을 맡아 탈북 여성이 생존하기 위해 겪는 갖가지 고충을 덤덤하게 표현했다.

“사건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한 여성의 삶을 그린 영화예요. 대본을 재미있게 읽어서 어떤 고민도 하지 않고 출연하겠다고 결심했죠. 시나리오도 좋았지만 극한의 사건과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불편하지 않게 전개되는 이야기 방식도 좋았어요. 영화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는 이름이 없어요. 그저 ‘엄마’로 통하는데 이 점도 좋았고요. 중국에 사는 탈북 여성분들은 실제로 본명을 쓰지 않고 개명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이름이 없다는 점이 ‘이방인’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이나영이 캐스팅됐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지만 동시에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이나영 역시 자신이 하는 탈북 여성 연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역할이고 영화였는데, 대중에게 선보이려니 떨리고 무서웠어요.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됐죠. ‘이나영이 탈북 여성을 연기해?’라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주변에서 여성이 처한 상황이 극적이라 감정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런데 저도 제가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더군요. 여러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촬영을 준비하던 시기라 저 역시 화면에 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연기로 보여주자고 결심했어요. 저 잘 어울리지 않았나요?”

대본을 본 후 직접 시나리오를 쓴 윤재호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봤고, 감독을 만난 뒤엔 신뢰가 생겼다. 윤재호 감독은 2010년 연출한 단편 다큐멘터리 <약속>을 시작으로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 <마담B>(2016) <히치하이커>(2016)로 분단의 현실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생계를 위해 중국으로 월경한 북한 여성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마담B>는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대본을 받았을 때는 감독님을 몰랐어요. 나중에 다큐멘터리를 찍으신 분이고 장편 영화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감독님이 탈북 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했는데, 제작하신 다큐멘터리를 보고 답을 찾았어요. 촬영에 들어간 순간부터 윤재호 감독님에게 의지했고 디렉션을 따랐어요.”

이나영은 극에서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를 그린다. 북한을 탈출하고 중국인에게 팔려가고, 범죄 조직에 착취당하며 살인까지 저지른다. 어쩔 수 없이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대한민국으로 와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이나영은 표정과 의상을 통해 캐릭터의 변화를 꽤 명확하게 드러낸다.

“살아가는 여자, 살아가야 할 여자가 캐릭터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생존을 위해 탈북을 하고 범죄와 살인을 저질러요. 10대·20대에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 30대가 되니 어떤 사건·사고에도 놀라지 않게 돼요. 점점 무덤덤해지죠. 14년 만에 아들을 만났는데도 놀라거나 반가운 기색이 없어요. 그래서 이 여성의 삶을 눈동자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눈동자를 부각하는 클로즈업 촬영을 좋아해요. 사람을 볼 때도 눈을 유심히 보는 편이고요. 이 여자가 어떤 일을 겪으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떠올리며 눈에, 눈동자에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이나영의 패션이다. 예산이 적은 탓에 다양한 의상이 등장하진 않지만 연령대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10대 때는 꽃무늬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입고 양 갈래 머리를 했다면, 범죄 조직에게 착취당하며 술집에서 일하는 20대 때는 금발머리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피운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30대에는 버건디 가죽 코트를 입고 빨간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등장한다.

“작품을 결정할 때 제가 입을 룩을 상상하는 편인데, 의상을 고르는 게 어려웠어요. 예산이 적어 의상을 많이 살 수 없었거든요. 10대 연기를 할 때는 중국에 사시는 분들을 찾아봤는데 화려한 룩을 즐기시더라고요. 그런데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특유의 색을 덜어내려고 했어요.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구제 시장을 돌아다니며 의상을 찾으면 사진을 찍어 휴대폰으로 보내줬어요. 저는 하루 종일 휴대폰을 부여잡고 있었죠. 30대를 연기할 땐 술집 주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너무 수수해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군요. 염색도 일부러 허술하게 했어요. 자세히 보면 색이 고르지 않고 뿌리는 검정색이에요.”

그녀가 30대를 그리기 위해 빨간색을 선택한 것은 윤재호 감독의 의도와 맞닿아 있다. 감독이 공간별로 분위기와 색깔을 달리했다는 것. 중국 남편을 만날 땐 푸른빛, 과거 이야기는 붉은 조명, 현재는 빨간 재킷과 머리색으로 포인트를 줬다고.

“윤재호 감독님의 색감이 입혀져 영화에 개성이 생겼어요.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해요. 국내에 우리 영화 같은 색감의 영화가 많지 않아요. 한국 영화도 이만큼 개성적인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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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들은 저희가 영화 같은 결혼 생활을 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 그냥 삶이에요. 저는 남편과 절친한 친구처럼 지내요.

육아가 어려운 평범한 엄마예요

<뷰티풀 데이즈>는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담담하게 가족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 중심에 있는 이나영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대화가 없어도 밥상에 둘러앉아 된장찌개를 나눠 먹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엔딩 장면이 좋았어요. 다시 돌아온 엄마의 아들, 엄마의 새 남편과 자녀, 엄마가 한 상에 둘러앉아 조용히 된장찌개를 떠 먹어요. 그 모습이 따뜻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엄마의 ‘뷰티풀 데이즈’가 시작된 게 아닐까요? 상 위에 찌개를 하나 놓고 각자 숟가락으로 떠 먹는 모습이 감독님의 가족상이었던 것 같아요. 젠첸의 흰밥에 된장찌개를 부어주는 장면은 제가 낸 아이디어였어요. 실제로 저는 된장찌개를 밥에 부어 먹거든요.”

이나영의 가족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워낙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이나영과 원빈의 부부 생활을 궁금해하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이나영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이야기할 것이 없단다.

“저희 가족도 똑같이 밥을 해 먹고 함께 육아를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어느 분들은 저희가 영화 같은 결혼 생활을 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 그냥 삶이에요. 또 어느 분들은 저희 둘이 서로 대화를 하느냐고 묻는데, 저희 부부도 말 많아요. 저는 남편과 절친한 친구처럼 지내요. 다양한 곳을 다니진 않지만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면서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이나영 역시 영화에서처럼 한 아이의 엄마다. 보통 엄마들처럼 처음 겪는 육아가 어렵다고 느끼면서 하나씩 헤쳐가고 있다. 원빈 역시 여느 남편들과 마찬가지로 육아를 도와주고 있단다.

“저도 육아가 어려운 평범한 엄마예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몰라서 주변에 묻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면 최선을 다하려고 하죠. 하지만 분명한 건 어려움 속에 행복과 뿌듯함이 있다는 거예요. 저희 부부는 아이를 편안하게 키우려고 해요. 자연의 풍경을 느끼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고 싶죠. 아들이 배우를 하고 싶다고 하면 말릴 순 없을 것 같고 응원해줄 거예요. 우리 아이가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났냐고요? 사실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흐를 때마다 아이 얼굴이 변한다고 하는데, 지금은 엄마와 아빠를 반씩 닮은 것 같아요.”

어느덧 3년 차 부부이지만 두 사람의 결혼식은 상당히 화제를 모았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스타들의 성대한 결혼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에 가까운 지인만 초대해 소박하게 스몰 웨딩을 치렀다. 이후 스몰 웨딩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저희 결혼식이 그렇게 이슈가 될지 몰랐어요. 저희는 그저 좋아하는 공간에서 기본에 충실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거든요. 국수를 먹고 싶어서 국수를 대접했던 거고요. 많은 분이 그런 결혼식을 꿈꾸기 때문에 예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요즘도 가끔 남편과 시댁이 있는 강원도 정선에 가요. 휴대폰에서 멀어질수록 새로운 느낌이 생기거든요. 도시는 어떠냐고요? 차가 많아서 그런지 삶이 시작되는 느낌이에요.”

여자의 인생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변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겪은 이나영의 인생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다. 또한 동반자이자 동료이기도 한 원빈은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했다.

“결혼했다고 특별히 변한 건 없어요. 배우로서 달라진 것도 없고요. 상황과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죠. 남편과 같은 직업을 가져 좋은 점은 많아요. 느낀 게 같으니까 서로 이해하는 게 많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엇이 힘든지 알고요. 저희가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건 어떠냐고요? 저희끼리 장난으로 ‘액션이나 다큐멘터리를 같이 해보면 어떨까?’라고 이야기하는데, 결국엔 ‘누가 보겠어?’라면서 그만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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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기준에 따라 달라져요

원빈은 이나영이 출연한 <뷰티풀 데이즈>의 시나리오를 읽고 “슬프다”고 말했고, 예고편을 보고는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이나영이 배우로서 느낄 고충을 미리 알고 공감하기도 했단다.

“출연을 결심하고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가슴에 많은 것을 안고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렵겠다면서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했어요. 촬영 중간중간 고민이 필요할 때 의견을 구하긴 했어요. 영화가 아직 개봉 전이라 남편에게 영화에 대한 소감을 듣진 못했어요. 우리 영화가 10만 관객이 넘어야 해서 극장에 가서 보라고 했거든요.(웃음)”

자연스레 화두는 원빈의 차기작으로 이어졌다. 원빈 역시 영화 <아저씨>(2010) 이후 공백기를 갖고 있기에 많은 사람이 그의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복귀작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도 왜 작품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아마 작품 활동이 늦어지더라도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이야기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을 하고 싶어 하던데, 아직 그런 작품이 많지 않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최근 다양한 시도를 하는 상업 영화가 늘어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복귀하지 않을까요?”

원빈 역시 극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이나영처럼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나영은 <뷰티풀 데이즈>는 ‘행복’과 연관된 작품이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결국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연기를 좋아하게 되면서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데뷔 초에는 배우 생활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려서부터 사진기 앞에 서면 눈물부터 흘렸대요. 그래서 우는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 대부분이에요. 지금도 가족들은 제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신기해해요. 그런데 2002년에 영화 <후아유>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연구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행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죠. 행복은 기준에 따라 달라져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물질이 행복이 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우면 감정이 행복의 조건이 되죠. 저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편이에요. 과거엔 행복이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군요. 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요. 오늘은 맛있는 단팥죽을 먹고 이렇게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눠서 행복하고요. 이것을 ‘소확행’이라고 부른다면서요? 오늘 처음 배운 말이에요. 제가 아직까지 연필과 수첩을 사용할 정도로 아날로그형이거든요.”

이나영은 복귀 후 “평소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답변을 들으면 “평범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며 “특별한 게 없어서 특별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평범함이 특별해지는 것, 그것이 이나영의 힘이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이든나인
2018년 12월호
2018년 12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이든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