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적어도 먹거리만큼은 슈퍼마켓을 통하지 않고 구할 대안이 많이 있다. 시장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그 외에도 직거래 매장과 단거리 유통 체제가 잘 잡혀 있다. 처음에는 번거롭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농장에서 바로 따 온 신선한 제철 식품의 맛을 한번 보면 도저히 슈퍼마켓으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필자의 동료이자, 두 살배기 딸아이의 엄마인 엘리즈는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직거래 협동조합에서 식료품을 구하기 시작했다. 엘리즈가 이용하는 협동조합의 이름은 ‘뤼슈 키디위(Ruche qui dit oui, 된다고 하는 벌집)’다. 지역 단위로 운영되는 이 단체는 인근 농민, 목축인들과 제휴해 현지 농축산물 직거래를 장려한다. 단체에 가입한 소비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제철 농축산물을 필요한 만큼 배급 받는다. 배급 시간은 대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라 퇴근길에 찾아 갈 수 있다.
소비자는 필요한 만큼 구매하고, 농민은 수확한 만큼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도 합리적이다.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할 때도 있다. 판매 가격의 80% 이상이 농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적게 팔아도 슈퍼마켓을 통해 파는 것보다 이익이다. 농민과 소비자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뤼슈 키디위는 판매가의 15% 정도를 받는다. 프랑스 농민 중 20%가 이런 직거래 단체를 통해 거래한다. 특히 중소 규모 단위의 농민일수록 이런 현지 직거래 판매 방식이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부분은 갓 수확한 제철 농산물이라는 것이고, 인근 농장에서 가져와 파는 것이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신선하다. 특히 직접 기르고 키운 농민이 와서 배급해주기 때문에 더욱 믿음이 간다. 게다가 회원들이 매주 만나므로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배급을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내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히 슈퍼마켓을 끊는 것인데, 이 단체 덕분에 실질적으로 내 꿈을 실현했다”고 말하며 엘리즈는 뿌듯한 표정으로 배급 받은 채소를 차에 실었다. 가을이라 호박과 버섯이 가득 찬 엘리즈의 차 안에서는 향긋한 가을 향이 진동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더라도 간혹 급히 필요한 재료가 생기기도 하고, 부득이 배급일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도 엘리즈는 슈퍼마켓에 가는 대신 직거래 장터를 이용한다. 그녀의 조언을 따라 한 번 찾아본 ‘오테라(O’Tera)’ 매장은 겉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슈퍼마켓처럼 생겼다. 그러나 이 매장에서 구매하는 모든 식료품은 인근 농민과 목축업자가 직접 실어 온 현지 농산물이다. 농산물 외에도 간단한 생활용품도 살 수 있어 쉽게 슈퍼마켓을 대신할 수 있다.
슈퍼마켓 소비를 근절하는 운동은 프랑스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활성화됐다. 까르푸의 나라 프랑스인 만큼,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형 유통업체가 모더니티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노년층일수록 슈퍼마켓에서 소비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슈퍼마켓의 폐해를 의식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사용과 인터넷의 발달은 의식 있는 소비자와 소규모 농민을 직접 연결해주고 있다. 뤼슈 키디위 같은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소비자가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을 대체하는 건강한 소비 습관은 앞으로도 더 확산될 예정이다.
글쓴이 송민주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학을 전공 중이다. <Portraits de Se′oul>의 저자이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서로 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