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네 살 중년 여배우 문희경과 스물여덟 청춘 딘딘의 관계는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다. 배우 선후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수 선후배도 아니다. 함께 무대에 오른 적도 없다. 공통분모는 하나다. 힙합. 지난해 방송된 jtbc예능 프로그램 <힙합의 민족>에서 처음 만났고, 대기실에서 몇 번 마주치다가 우연히 동석한 술자리에서 대화가 잘 통해 그냥 친구 하기로 했다. 딘딘은 문희경의 젊은 에너지에 마음을 열었고, 문희경은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딘딘의 반전 매력을 높이 샀다. 가까이서 지켜본 두 사람은 거리낌 없었다.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펼쳐진 <쇼미더머니 777>의 결과에 대한 난상 토론은 혼자 보기 아까운 명장면 중의 명장면. 이 두 사람에게 네 개의 키워드를 던졌다.
# 첫인상
'힙합'의 '힙' 자도 모른 채로 살아온 문희경과 예능인 같은 래퍼 딘딘은 TV 너머로 지켜보기만 할 뿐 이렇게 친구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문희경 제가 딘딘과 친구가 되고 이렇게 화보를 찍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처음 딘딘을 봤을 땐 래퍼라기보다는 뭐랄까… 개그맨 같았어요.(웃음) 애가 되게 웃기잖아요. "네가 랩을 한다고?"라고 되물었던 것 같아요. 딘딘과는 컬래버레이션을 하지 못했어요. 저는 치타, 송민호와 무대를 꾸몄고 딘딘은 김영임 선배, 주헌 선배와 함께 했죠. 딘딘과 같이 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쉬웠어요.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지켜본 딘딘은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친구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프로그램 PD와 함께하는 술자리가 생겼는데, 제가 그 자리에 딘딘을 불렀죠.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단박에 나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친해졌어요.
딘딘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 나갈 수 있겠어요?(웃음) 선생님은 당시 <힙합의 민족>에 출연한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젊은 분이었어요. 그래서 그나마 촐싹거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인 건 저의 무례한 행동도 귀엽게 봐주셨다는 거예요.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혼내실 수도 있는데…. 젊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오픈 마인드로 받아주시더라고요. 선생님은 지금도 너무 젊게 사시지만 지금보다 나이가 어렸다면 아마 더 친했을 것 같아요. 인생 조언도 해주고, 놀아주고, 밥도 사주는 친한 누나?
문희경 예의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귀여웠어요. 이 나이쯤 되면 후배들이 어려워해요. 전 같이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었으면 좋겠는데 말예요. 그런 면에서 딘딘은 좋았어요. 스스럼없이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후배를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사성도 밝았고요. 아까도 보세요. 오늘 촬영이 '연인 콘셉트'이냐면서 팔짱을 끼잖아요. 이러니 안 예뻐할 수 있겠어요?
딘딘 제가 집안에서도 막둥이라 그런가 봐요. 어린 동생들보다 형, 누나가 더 편해요. 나이 차가 많이 나면 날수록 더더욱 그렇고요. 형, 누나, 선배, 선생님들에겐 배울 점이 많아 좋아요. 그들이 살아온 시간,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들이 제겐 뼈와 살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 힙합
문희경의 매니저는 <힙합의 민족> 제작진에게 받은 출연 제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문희경 선생님이 랩을? 에이~' 이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기획안을 받았을 때 문희경은 "이건 대박"이라고 했다. 첫 녹화 2주 전에 급하게 결정된 출연이었다.
문희경 돌이켜보면 <힙합의 민족>에 출연할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난 시간 같아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있을 때 리프레시할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거든요. 여자, 엄마, 여배우로 살면서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랩으로 다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힙합은 제게 '자극제' '윤활유' 같은 역할을 했죠.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니!' 하는 놀라움과 자신감도 생겼고, 도전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졌죠. 희한한 게 저는 힙합에 힙 자도 몰랐던 사람인데 <힙합의 민족>에 출연한 뒤 힙합만 들어요.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 같은 힙합 프로그램도 챙겨 보게 됐고요. 진정한 힙합인이 된 것 같아요.
딘딘 저도 마찬가지예요. 힙합은 제게 하나의 돌파구죠. 랩을 할 때와 음악 작업을 할 땐 안 지쳐요. 방송을 위해 12시간 동안 촬영을 하면 지치고 힘든데 음악은 안 그래요. 오후에 시작해 정신 차리고 보면 다음 날 아침 6시인데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처럼 제가 예능인이나 개그맨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 사실 래퍼다'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앨범 작업을 하고 있어요.(웃음) 지난 연말에 미니 앨범이 나왔고 올해는(2019년) 정규 앨범을 낼 거고요. 올 연말에는 콘서트도 계획 중이에요.
문희경 래퍼들은 정말 연습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방송에서 가사 한 번 '절면' 끝이거든요. 어우, 상상하기도 싫네요. 저도 혹독하게 연습했어요. MC 스나이퍼한테 일대일 레슨도 받고, 그에게 졸라 넉살한테도 레슨 받았죠. 배우로 20년 넘게 살다 보니 연습이 일상이 된 것 같아요. 대사 연습, 노래 연습…. 노력의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연기 잘 봤어요"보다 "랩 잘 들었어요" 하는 사람이 더 많았거든요.
딘딘 선생님을 옆에서 지켜보면 저에게 자극이 됐어요. '저 나이에도 저렇게 에너지 넘치게 살 수 있구나' 싶거든요. '연습벌레'세요. 대기실에 있으면 선생님이 가사 외우는 소리밖에 안 들려요. 아까 사진 찍는 제 옆에서 포즈 연습하시는 거 보셨죠? 얼마나 완벽주의이신지 몰라요.
# 청춘
스물여덟 청춘의 한가운데 있는 딘딘과 뜨거웠던 청춘을 보내고 잔잔한 중년을 맞은 문희경은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제다. 문희경은 딘딘의 열정을, 딘딘은 문희경의 연륜을 닮고 싶어 했다.
딘딘 제 20대는 찬란했어요. 캐나다 유학 중 스무 살에 한국에 와서 힙합 하겠다고 까불다가 급하게 군대를 갔고, 전역 후 <쇼미더머니>에 출연했고…. <진짜 사나이>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그 후 쉬지 않고 일했어요. 이제 곧 서른이고 20대의 끝자락을 화끈하게 즐겨보고 싶은데 성격상 그게 안 될 거 같아요.(웃음) 올해도, 내년에도 일해야죠, 일.
문희경 너무 예쁘지 않나요? 이렇게 열심히, 긍정적으로 사는 청년이 있다는 건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에요.(웃음) 딘딘을 보면 '그때 나는 어떠했었나' 싶어요. 까마득하다고 해야 할까요? 근데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치열하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20대를 보내고 있는 딘딘의 30대는 더 멋질 거라는 거예요. 무엇보다 딘딘은 착하잖아요. 이 바닥에서 착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결국 착한 사람을 선택하게 돼 있거든요.
딘딘 제가 서른이 되다니…. 다들 아직은 어린 거라고 말하는데 저한텐 되게 큰 숫자예요. 실감이 안 나요. 남자 인생은 서른부터 시작이라는데, 그게 진짜라면 지금까지 제가 산 건 뭔가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보다 더 힘든 세상이 펼쳐진다는 말일까 봐 두려워요. 제가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선생님처럼 나이 먹고 싶어요.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중년의 래퍼. 멋있지 않나요?
문희경 늙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친구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열린 마음과 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든 가수든 연예인은 혼자서 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어린 꼬마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고, 나이 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배울 점이 있어요.
# 인생
희한하다. 나이 차가 스물여섯 살이나 나는데도 대화가 종잡을 수 없이 톡톡 튄다. 이번엔 '인생'이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문희경 요즘엔 인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면, 요즘엔 '내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죠. 앞으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딘딘 제가 열심히 사는 이유도 사람이에요. 제가 잘되면 행복해질 사람이 많거든요. 부모님, 친구, 데뷔 때부터 지켜봐준 (이)현도 형, 졸음 참아가며 운전해주는 매니저…. 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예전엔 현도 형이 "딘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었는데 요즘엔 "딘딘이 너무 바빠 내 전화도 못 받아"라며 거들먹거린대요. 자랑인 거죠. 그런 말을 들으면 뿌듯해요. 더 열심히 할 거예요.
문희경 저는 딘딘이 일도 좋지만 연애도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활력소 중 하나가 사랑이잖아요. 젊을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연애이기도 하고요.
딘딘 3년 전 잠깐 연애한 후로는 못 하고 있네요. 연예인이란 직업 특성상 연애는 힘들 것 같아요. 아무나 만날 순 없고, 누군가를 만나려면 제가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스케줄 때문에 약속조차 쉽게 잡을 수 없거든요. 한 번 만나려면 2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그런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호감이 있더라도 그게 연애로 발전되지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아직 사랑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은 더더욱 먼 이야기고요. 결혼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는 집에 널부러져 몇 시간이고 TV 보는 걸 좋아하는데, 결혼해서도 그러면 안 되는 거라면서요.(웃음) 요즘엔 축구에 푹 빠져 있어요. (이)수근이 형, (김)종국이 형, (양)세찬이 형 등 몇몇 연예인이 소속된 축구팀에서 뛰고 있어요. 아직은 연애보다 축구가 더 재미있네요.
문희경 결혼하면 자신의 인생이 많이 없어지는 건 맞죠. 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면 더하고요. 이제 고3인 제 딸도 저를 인정하지 않아요. 밖에선 인정받는 배우일지 몰라도 집에선 '딸 밥해주는 엄마' 정도죠. <힙합의 민족>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도 제 딸은 "개나 소나 다 랩이냐"며 무시했어요. 딸 이야기를 랩으로 썼는데 그게 (송)민호와 함께 불렀던 '엄마야'였어요. '왜 불러, 내가 밥솥이니'라는 가사가 아주 후련했죠.(웃음) 엄마로서, 아내로서, 배우로서의 역할을 다 잘해낼 순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죠. 딘딘도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가수, 남편, 아빠, 아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친구 사이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문희경과 딘딘은 좋은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