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찬성 ‘여성 자기결정권 존중’
현재 국내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강간·준강간· 근친상간·유전학적 질환 등을 제외한 낙태 행위는 전면 불가하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이들은 낙태죄가 태아를 품은 여성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는 법이며,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된 법이라고 주장한다. 낙태 행위가 가능한 경우에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강간에 의한 임신이어도 가해자를 고소하고 피해자임을 입증받아야 합법적으로 낙태를 할 수 있기 때문. 현행법상 낙태가 가능한 기간은 임신 24주까지로, 가해자가 강간죄를 부인해 소송이 길어지면 낙태 가능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찬성론자는 낙태죄가 여성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한다. 여성들이 불법 시술소로 향하고 가짜 유산 약을 구매해 복용하면서 위험에 빠진다는 것. 처벌 대상을 여성과 시술자에만 두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의 임신에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도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법상 남성이 낙태 시술 사실을 알고 방조하거나 낙태를 강요했을 때 ‘증거’가 있다면 처벌할 수 있다. 실상 생부인 남자는 처벌에서 배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낙태죄 폐지 찬성을 표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의 몸은 전쟁터다. 여성의 몸은 불법도 공공재도 아닌 인격체다. 국가가 출산을 늘리거나 줄이라고 강요하면서 여성의 몸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선택과 결정을 여성이 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지 반대 ‘태아 생명권 존중’
한편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태아의 생명권 존중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태아는 결국 사람으로 성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낙태는 한 인격을 희생하는 행위라는 것. 또한 낙태가 합법화되면 생명 경시 풍조를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남성이 임신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도 낙태를 선택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또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남성이 낙태를 강요할 수 있다며, 역으로 남성의 책임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여성의 건강에 대한 우려도 표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공적인 유산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 낙태 횟수가 증가할수록 유산 및 불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자연유산 유도약 미프진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지난 1988년 프랑스에서 개발돼 시판 허가된 미프진은 태아 성장에 필요한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한다. 현재 미국·영국·호주 등 해외 60여개 국에서 의사 처방을 거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 미허가된 불법약이지만 불법 암거래를 통해 유통과 투약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온라인에서 쉽게 거래처를 찾을 수 있으며, 판매가는 평균 40만~50만원이지만 임신 주수에 따라 60만~80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약효 및 부작용이 입증되지 않았고, 낙태가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프진 도입을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성 단체들은 해외에서 복용 중인 약인 동시에 유산 성공률이 95%를 상회하고 안전성이 확인된 약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세계보건기구에서 미프진을 필수약으로 지정했으며, 미프진 불법 거래를 막으려면 합법화를 통해 전문가의 진단 아래 안전하게 복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로 확산되는 낙태죄 폐지 운동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5개국은 낙태를 허용하고, 10개국은 금지하고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등 7개국은 의사와 상담하고 숙려 기간을 거친 뒤 낙태할 수 있다. 노르웨이, 캐나다 등 18개국은 제한 없이 본인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반면 아이슬란드, 영국 등 4개 국가에서는 조건부 낙태를 허용한다. 뉴질랜드, 아일랜드, 이스라엘, 칠레, 폴란드, 한국 6개국은 사회경제적 이유로 낙태할 수 없다.
세계적 흐름을 보면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아일랜드는 지난 5월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8조를 개정해, 낙태를 한 여성에게 최장 14년 징역을 구형했던 헌법 조항을 폐지했다.
의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정부는 불법 낙태 시술 의사에게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다는 시행규칙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단, 낙태 시술 의사 처벌 규정인 ‘형법 270조 1항’에 대해 헌재가 위헌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2년에도 있었다. 당시 헌재는 합헌 4 대 위헌 4 판결을 냈지만 정족수(재판관 6명 이상) 미달로 합헌이 결정됐다. 6년이 지난 현재, 법조계에서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논의가 초점이 될 거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낙태죄가 존속할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낙태죄 폐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낙태죄 폐지를 두고 여전히 양측 의견이 줄다리기처럼 팽팽한 상황이다.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우먼센스> 독자 50명에게 의견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