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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왕지원

커다란 눈으로 지그시 쳐다보는 순간, 그녀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귓가를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빠져들게 했다. 배우 왕지원과 나눈 소소한 이야기.

On October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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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블랑쉬, 팬츠 앤아더스토리즈.

제가 차가워 보이나요?

감정이 읽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마주하면 자연스레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배우 왕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표정이 읽히지 않아 바라보게 되고, 관찰하게 되는 사람. 몇 벌의 옷을 갈아입고 촬영하는 동안 왕지원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차분했다.

“오늘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30대가 되고 처음 찍는 화보이기도 하고 레드, 화이트, 블랙이란 콘셉트를 듣고 ‘내가 잘 소화할 수 있을까?’ ‘강해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어요.”

그녀가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은 드라마는 tvN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 사랑보다 일이 먼저인 커리어 우먼 ‘왕세령’ 역을 맡아 ‘차가운 도시 여자’를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왕지원 하면 ‘차도녀’ ‘도도함’ ‘까칠함’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제가 차가워 보이나요? 대부분 첫인상은 차가워 보인다고 하세요. 사실 이미지 때문에 속상한 마음도 있지요. 배우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젠 내려놓았어요.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를 저의 장점이라고 여겨요. 어떻게 하면 달라 보이게 연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녀는 차분했지만 열정적이었다.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서른을 앞뒀을 때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마치 서른 살이 되면 인생이 끝날 것처럼요. 그런데 지나보니까 20대 때와 비슷해요. 나이에 무관심해지죠. 오히려 주변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아, 30대가 된 이후의 가장 큰 관심사는 건강이에요.”

왕지원은 지난 2017년 말 MBC 드라마 <병원선>과 KBS2 예능 <발레교습소 백조클럽>에 동시에 출연했다. 왕복 10시간 동안 거제도와 서울을 오가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꽉 찬 스케줄에 발레 연습까지 했다.

“잘하고 싶어서 무리를 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으로 반응이 나타나는데, 촬영이 끝나고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아프더군요. 그렇게 4개월 동안 혹독하게 아팠어요.”

집 앞 슈퍼에 가는 것도 힘들었을 만큼 아팠던 왕지원은 그동안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것을 반성했다. 술을 멀리하고 건강에 좋은 영양제와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한 번씩 크게 아프대요. 그게 ‘난 아직도 젊어’라고 생각하고 잘못된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니까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래요. 나이에 맞게끔 생활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데 저는 그 점을 간과한 거죠.”

건강관리를 하면서 체질식을 시작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인체 내 장기들의 강약 배열 구조에 따라 제질을 8가지로 나누고, 각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는 식이요법인데 배우 배종옥, 예지원 등이 체질식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체질식을 하고 건강해졌어요. 저는 금양 체질이래요. 이 체질은 생선구이, 회, 쌀밥을 먹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건강을 끌어올리고 싶어서 4개월 동안 식단을 꼼꼼하게 지켰고, 이젠 감기도 걸리지 않을 정도로 회복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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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캘빈클라인, 운동화 프리미아타 by 한스타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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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리가든, 상의 캘빈클라인 퍼포먼스, 쇼츠 아디다스 오리지널, 슈즈 프리미아타 by 한스타일슈.

서른 살의 독립

왕지원은 지난해 부모님의 집에서 독립해 혼자만의 공간을 꾸렸다.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부딪히고 해쳐나가며 혼자만의 시간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한 번쯤 혼자 살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싱글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어요. 그런데 요리를 해보지 않아서 밥을 차려 먹는 게 어려워요. 요즘엔 나를 위해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 막 싱글 라이프의 맛을 안 그녀는 연예인들이 최애 프로그램으로 꼽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왕지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아닌, 실제 인간 왕지원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많은 분들이 제가 시크할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빈틈이 많은 허당이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릴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왕지원은 집에서 사색을 하며 마음속에 있는 것을 비우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피아노를 치고 발레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집 밖보다는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집순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요. ‘덕후’ 수준이죠.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집중해서 애니메이션을 봐요. 시리즈물도 보고, 새로 나온 것도 보고, 재미있던 작품을 다시 보기도 하죠.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제 인생 애니메이션이에요. 시리즈 중엔 <이누야샤>요. 여중생이 먼 과거로 시간을 이동해 이누야샤를 만나 모험을 하는 이야기인데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어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사람이 따라 할 수 없는 표정, 제스처를 하는 게 재미있어요. 어떤 때는 애니메이션 OST의 악보를 찾아 피아노를 치기도 하죠.”

그녀의 사적인 공간을 함께 쓰는 유일한 존재는 고양이다. 왕지원은 길에 사는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키웠는데, ‘길냥이’가 ‘개냥이’가 됐다며 고양이 자랑을 늘어놨다.

“이름은 ‘가을이’예요. 얼굴에 세 가지 색이 있는데 그 색이 낙엽과 닮았다면서 팬들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우리 가을이는 길에서 데려온 아이라 하악질도 많이 하고 음식을 숨겨두곤 했어요. 그런데 키우다 보니 개냥이로 바뀌었어요. 애교가 굉장히 많아요. 어느 날 아침 일찍 나갔다 밤늦게 돌아왔는데 신발장 앞에서 자고 있더군요. 저를 기다린 거예요. 잠을 자다 저를 보더니 다리에 얼굴을 비비더군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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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코스, 슈즈 스케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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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생각도 고민도 많은 요즘

왕지원은 촉망받는 발레리나였다. 5살에 발레를 시작해 세계 최고 발레학교 영국 로열 발레스쿨을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거쳐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러나 골반뼈가 떨어져나가는 큰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뒀다.

“한동안 동기들이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걸 보면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5년 정도는 공연 관람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발레를 계속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했을 법도 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단다.

“되돌아보면 마침표를 찍지 않고 도피성으로 발레를 그만뒀던 것 같아요. 제가 처한 상황이 싫었고, 동기들이 제 상황을 아는 것이 싫었어요. 겁쟁이였지만 더 이상 피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KBS2 <발레교습소 백조클럽>에 출연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춤을 췄죠.”

그동안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던 발레로부터 홀가분해지자 목표가 뚜렷해졌다. 자신이 선택해 걷고 있는 배우란 길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발레를 할 때까지만 해도 단순했는데 연기를 시작하면서 복잡해졌어요. 별것 아닌 일에도 예민해졌죠.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작품이 끝났는데 다음 작품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고 일할 땐 그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했어요. 그런데 최근 신혜선 씨를 보면서 주변을 돌보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어요.”

왕지원은 얼마 전 종영한 SBS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감독 ‘린킴’으로 분했다. 극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완벽한 인물로, 주인공인 ‘우서리(신혜선 분)’와 자주 호흡을 맞췄다.

“신혜선 씨는 에너지가 좋은 친구예요. 촬영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지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나눠주더군요. 마치 에너자이저 같았어요. 혜선 씨를 보면서 나도 촬영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이날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고민’ ‘스트레스’였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고민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지 궁금했다. 쌓이기만 한다면 과부하에 걸리진 않을까, 그녀가 걱정됐다.

“무언가를 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아요. 보통 사람을 만나고 취미 활동을 하지만 저하곤 맞지 않는 방법이에요. 저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 누군가를 만나도 제 마음속은 어지러운 상태니까 공허해지더라고요. 한없이 부딪히고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면 어느 순간 초연해져요. 그 과정을 반복하면 조금씩 단단해지는 제가 느껴져요. 혼자 비우고 채우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작성하기 위해 녹음 파일을 듣다 보니 왕지원이 참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를 또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타인이 아닌, 자신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왕지원. 그녀가 뜻밖의 삶을 살고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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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팬츠 모두 유돈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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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자라, 재킷 에콘, 슈즈 스케쳐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인터뷰
김지은
사진
목나정
스타일링
아라
헤어
유다
메이크업
고유경
2018년 10월호
2018년 10월호
에디터
하은정
인터뷰
김지은
사진
목나정
스타일링
아라
헤어
유다
메이크업
고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