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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성의 행복론

톱스타를 마주하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1등에는 이유가 있다. 조인성도 그랬다.

On September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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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다. 현실 유지 혹은 도전. 전자는 손해 없는 안전한 선택이고 후자는 위험하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이다. 배우 조인성의 선택은 후자였다. 배우로서 수명이 정해져 있다면 기왕이면 도전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안시성>이었다.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위대한 승리로 전해지는 88일간의 안시성 전투를 그린 영화로, 조인성은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안시성을 지키는 성주 ‘양만춘’ 역을 맡아 전장에서는 냉정함을, 안시성 주민에게는 따뜻한 정을 나누는 ‘냉’과 ‘온’을 오가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안시성>은 젊은 사극이에요. 기존 사극에서 장군이라고 하면 <명량>의 최민식 선배나 <불멸의 이순신> 속 김명민 선배를 떠올리잖아요. 그 모습과 다른 리더를 보여주는 것, 편견을 깨는 것이 영화 <안시성>의 콘셉트였어요. 고대사가 주는 엄숙함과 무게감이 아닌, 신선하고 젊은 사극을 만들고 싶다는 감독님의 의도에 공감했어요. 새로운 건 즐거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주잖아요.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요.”

조인성 역시 편견 때문에 애초엔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 성주 역할이라는 말에 ‘나한테 왜 이러시나?’라고 생각했다고. 그뿐만 아니라 220억원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말에 부담감까지 느꼈다.

“두 번 정도 출연을 거절했어요. 굳이 위험한 걸 선택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비열한 거리>에 출연할 때도 조폭 같은 외모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요. <쌍화점>을 찍을 때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요. 저 자신부터 편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인성이 연기한 양만춘은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동의하지 않아 나라에서 반역자로 몰렸지만, 안시성에 침입한 당나라의 태종과 싸워 자신을 증명한 인물. 위인을 연기하는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영화 <명량>에 출연한 배우 최민식도 “딱 10분 만이라도 이순신 장군님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최민식 선배님 같은 분도 그러시는데 저는 오죽했을까요.(웃음) 제가 가진 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거 말곤 답이 없었어요. ‘어떤 리더를 원하는가’라는 생각부터 출발했어요. 낮은 자세에서 뜨겁게 민중의 일을 하는 리더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죠. 이게 올바른 리더의 정답이라곤 할 수 없지만 최대한 권위적이지 않고 우리 삶에 가까이 있는 성주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내 목숨을 걸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카리스마가 신께서 준 능력이라면 누군가에게 나를 건다는 건 그 사람의 기지를 보는 거잖아요. 기지 안엔 지혜, 혜안, 부드러움, 공감이 있겠죠. 거기서 전 공감을 선택했어요.”

조인성은 도경수, 이광수, 임주환, 김우빈 등 일명 ‘조인성 패밀리’를 이끄는 카리스마 역시 공감에서 나온 것이란 설명을 덧붙였다.

“동생들이 제 외형을 보고 저를 따르는 게 아니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에 어울리는 거예요. 과거엔 선후배 관계가 완벽한 상하 구조였다면 이제 달라진 것 같아요. 겉으로 굴복하는 것과 진짜 마음이 가서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다르잖아요. 구조에서 오는 지위 체계는 결국 진심 어린 우정이 되지 않더군요. 이 친구들이 저보다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은데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만나겠어요? 동생들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의견을 나누는 것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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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순신 장군과 달리 양만춘 장군은 남겨진 기록이 많지 않고 기존 작품에서 다뤄진 적이 없다는 것이 이점으로 작용했다. 조인성이 표현할 여지가 많았다.

“영화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양만춘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떤 모습을 투영해도 된다는 허용치가 컸죠.”

조인성은 양만춘이 반역자로 몰리면서도 안시성을 지키려고 했던 이유를 고민했다. 그 결과 양만춘은 안시성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행복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고, 안시성은 행복 지수가 높은 곳일 거라고 상상했다. 그렇다면 인간 조인성의 행복 지수는 어떨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될까요? 제가 다시 태어나도 지금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살 가능성은 낮아요.(웃음) 제 동생과 부모님이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드시고 건강해요. 아무 문제가 없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한 것 같아요. 행복은 기분과 다른 영역의 이야기예요. 기분이 좋지 않아도 내 안위에 문제가 없다면 행복한 거 아닌가요? 꼭 정상까지 올라가야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산 중턱에 있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면 그곳이 최선인 거죠.”

보통이라면 조금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인데 조인성은 순응하는 법을 알았다. 괜한 욕심이 자신을 옥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 때문에 순응한 건 아니에요. 연예인이란 직업이 처한 환경을 생각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그래서 내 상황을 가볍게 생각할 순 없을까라는 고민을 했어요. 고현정 누나나 차태현 형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고요. 어머니께서 저를 보시곤 ‘네 소신대로 해’라고 하셨는데 그 순간 ‘아’ 하고 내려놓게 됐어요.”

그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순간 편안해진다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었다. 큰 역할, 주인공에 집착하지 않고 그로 인한 부담감도 내려놓으려 하고 있다.

“(정)우성이 형이나 (이)정재 형도 주인공이 아니지만 인상적인 캐릭터를 맡으시잖아요. 영화 <신과 함께>의 ‘염라 언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보려고 해요. 다만 지금 로맨스 연기는 한도 초과라고 생각해요. 더 이상 보여드릴 게 없는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40대 중반에 접어들면 불륜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성숙하고 섹시한 느낌으로 하면 괜찮을 것 같네요.”

조인성은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비주얼에 배우로서 커리어를 갖췄고 성격까지 좋다. 순간순간 재치 있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든 것은 물론, 곤란한 질문에도 분위기를 흐리지 않고 대응하는 법을 알았다. 인터뷰 중 기자의 커피잔이 바닥을 보이자 누구보다 먼저 “리필해줄까요?”라고 묻는 섬세함까지 지녔다.

“유머가 있어야 하는 세상이 온 것 같아요. 한때 제가 생각한 틀에 자신을 가둔 적이 있어요. ‘배우는 이래야 해, 이러면 안 돼’ 같은 생각을 했죠. 그런데 지금은 편한 게 좋아요.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야 덜 지치고 재미있죠. 서로 즐겁게 웃으면 그 순간이 행복하지 않나요?”

그의 철학은 최근 출연한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적재적소에 유머를 더한 토크로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태현이 형이랑 친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따로 조합을 꾸리는 것보다 이해관계가 맞아서 출연했죠. 사전 인터뷰를 하고 녹화 날도 정해야 하니까 출연이 쉽지 않았는데, 추석에 개봉하는 영화가 3편이라서 출연했어요. 태현이 형이 ‘네 개런티에 예능 출연도 들어가 있는 거야’라면서 판을 만들었어요.(웃음)”

조인성은 친한 동료 연예인의 ‘급섭외’로 MBC <무한도전>, KBS2 <1박 2일> <해피투게더>에 출연한 바 있다. 갑작스러운 부탁이라 메이크업이나 의상이 준비돼 있지 않음에도 흔쾌히 출연에 응하는 의리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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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불안했어요. 작품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저의 미래가 걱정됐죠. 이젠 하루하루 연기를 하면서 살면 그뿐이에요.

웃으면 그 순간이 행복하지 않나요?

“저는 불러주셨을 때 출연하는 게 연예인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고백하자면 갑자기 불려 나갔을 때 의외로 편해요. 내가 출연한다고 한 거니까 못 해도 되거든요. 출연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촬영 중간에 집에 가도 돼요.(웃음) ”

조인성은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집에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면서 TV를 보는데, 그때 예능 프로그램 스케줄이 짜여 있다고. 그러나 그는 예능 진출에 대해선 좀 더 먼 미래에 생각하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예능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마흔 살이 넘으면 생각해볼 것 같아요. 예능에 뛰어든다면 차태현 형이나 광수랑 함께하고 싶어요. 저도 믿을 구석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요.(웃음) 오랫동안 예능을 해온 두 사람이라면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오랜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영화 <안시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는 영화를 통해 대중이 양만춘과 고구려 역사를 알면 만족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조인성이란 배우는 연기를 하며 괜찮은 작품을 만들 때 오롯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단다.

“과거엔 배우로 살면서 늘 불안했어요. 작품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저의 미래가 걱정됐죠. 그런데 이젠 불안하지 않아요. 하루하루 연기를 하면서 살면 그뿐이에요. 대중에게 조인성의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조인성은 양만춘이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길 원했다. 인간 조인성 역시 자유로워 보였다. 그가 괴로움이 없을 수 있는 비결을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있는 것부터 정리하면 돼요. 내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보듯이 하면 돼요. 저 차가 내 차라고, 저 여자가 내 여자라고 도장을 찍는 순간 괴로워져요.”

CREDIT INFO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아이오케이컴퍼니
2018년 10월호
2018년 10월호
에디터
김지은
사진제공
아이오케이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