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지창욱, 주원. 이들의 공통점은 KBS2의 주말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스타의 발판을 다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반듯한 외모에 귀여운 이미지로 가족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현재 마지막 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KBS2 <같이 살래요>의 여회현도 선배들이 밟았던 수순을 정석대로 밟아가는 중이다. 잘생긴 외모로 극 중 유동근(‘박효섭’ 역)의 유일한 아들 ‘박재형’으로 나오는 그는 누나들 사이에서는 귀여운 투정을 하면서도 한창 ‘썸’을 타는 중인 상대 배우와는 귀여운 밀당을 하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있다.
여회현은 ‘아궁이의 손잡이’라는 뜻이에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는 의미죠.
제 이름을 좀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서 대중에게 각인되면 오히려 장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주말드라마의 프린스
매니저보다도 먼저 촬영 현장에 들어와서는 살갑게 인사한 뒤 어떤 옷을 입게 되는지 궁금해하고, 요즘 라면을 많이 먹어 살이 좀 쪘다며 턱선을 고민하는 여회현의 모습에 마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촌 동생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여회현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낯으로 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 말이다. 실제 촬영장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다.
“워낙 좋아요. 3월부터 시작해 벌써 6개월째 촬영인데,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추다 보니 다들 친해졌거든요. 그중 특히 (김)권이 형과 (금)새록 누나는 마주치는 시간이 많아 밖에서 따로 만나 맥주를 마시기도 할 정도로 친해졌어요. 또래들이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좀 더 친근하거나 이미지와 어울리는 예명을 사용하는 많은 연예인과 달리 여회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독특하고, 조금은 어려운 본명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데뷔 전 예명을 쓰는 것에 대해 회사와도 상의를 많이 했는데 저는 역시 제 이름이 좋아요. ‘아궁이의 손잡이’라는 뜻이에요.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라며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마음에 드는 좋은 이름을 두고 단순히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다른 이름을 갖는 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어 본명을 쓰기로 결정했죠.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제 이름을 좀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서 대중에게 각인되면 오히려 장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에서 배우로서의 욕심이 느껴졌다. 원래 꿈이 연예인이었냐고 묻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며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시작하게 됐다고 답했다.
“실은 중학교 때 공부가 싫었어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연기를 해보라고 권유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저와 맞았던 거죠. 연예인이 돼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막연하게 연기를 계속하게 됐고 대학교까지 진학했어요. 데뷔에 대한 생각도 없었는데 우연히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고 연예인이 된 거예요. 우연치 않게. 그런데 사실 다 우연의 연속인 거겠죠.”
여회현이 대중의 뇌리에 박힌 건 대구 사투리를 쓰는 인기남 ‘손진’으로 출연했던 KBS2 <란제리 소녀시대>에서다. 어린 시절을 광주에서 보내고 인생의 대부분을 파주에서 보낸 그에게 대구 사투리는 큰 숙제와도 같았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큰 관심과 예상을 뛰어넘는 비난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힘이 든다고.
“대구 사투리를 쓰는 것보다 차라리 영어나 러시아어를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대구와 부산, 경북과 경남 사투리가 모두 미세한 부분에서 다르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대중의 평가가 굉장히 디테일한 데 놀랐어요.”
여회현은 스스로를 정신력이 강하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악성 댓글을 봐야 한다면 차라리 뉴스를 안 본다고.
“그저 사는 것만으로도 힘들지 않나요? 남들이 하는 이야기까지 듣고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물론 좋은 댓글을 써주시는 분도 많고 도움이 되는 지적을 하는 분도 많아요. 그런 분들껜 정말 고마운 마음이죠. 그렇지만 그저 인신 공격뿐인 댓글은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고요. 그런 걸 전부 신경 쓰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상처가 돼요.”
솔직하고 호기심 넘치는
<같이 살래요>에서 밀당하는 ‘연다연’ 역의 박세완과 언제 키스를 하게 될 것인지로 시청자들을 조바심 나게 했던 일명 ‘재다 커플’. 시청자의 한 명으로서 궁금증을 참지 못해 “그래서 결국 키스는 하게 되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번 주에 합니다. 재형과 다연이가 결국 키스를 하게 됩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하셨을 것 같아요. 연기하는 저희도 답답했는걸요. 하지만 진한 키스는 아니에요. 두 캐릭터다운 귀여운 키스예요.”
여회현이 키스신을 찍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연으로 출연했던 웹 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즌3>에서도 키스신을 찍은 적이 있다. 역시 풋풋하고 귀여운 키스였다. 스물네 살, 한창 연애도 하고 싶을 나이일 것이라 생각됐다.
“연애는 두 번 해봤어요. 또래에 비해 좀 늦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에 첫 연애를 했거든요. 그리고 데뷔하고 나서 좀 오래 만났던 친구가 있었어요. 지금은 헤어진 지도 꽤 됐네요.”
거침없이 말하는 연애담에 기자가 되레 놀라 괜찮으냐고 물으니 “저는 솔직하게 다 말해요. 연애 경험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연애 상대가 없느냐는 질문엔 “지금은 일이 재미있어요”라며 영리하게 대답하기도 했다.
“지금은 연기에 욕심이 나요. 막내, 순둥이 역할을 많이 했는데 악역처럼 인상이 강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사실 그런 역할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시청자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아쉬워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가 아닌 성숙하고 진중한, 갈등과 고뇌에 싸인 캐릭터도 하고 싶어요. 욕심이 많이 나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여회현은 <셰이프 오브 워터>라고 답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예전부터 좋아했다며 <판의 미로> <퍼시픽 림> 등 감독의 전작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러면서 영화의 주인공인 여배우가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아가씨>의 영국판 드라마에 나왔던 배우라며 그녀가 나온 영화 <내 사랑>도 꼭 볼 거라고 신나게 이야기했다. 이어서 <내 사랑>의 남자 주인공인 에단 호크의 연기가 정말 좋다며 그가 젊은 시절 출연한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등의 옛 영화 제목을 언급하고 있기도 했다. 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니 “마니악한 영화를 좋아해요. 조금 미스터리해서 해석이 필요한 영화도 좋아하고요. 요즘 영화든 예전 영화든 좋은 영화는 다 찾아보죠”라며 여회현은 즐거운 얼굴로 답했다. 그런 여회현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바로 브래드 피트라고한다. “<세븐>이라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는 그저 서 있기만 해도 완벽한 것 같아요. 그런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는 브래드 피트보다 톰 크루즈가 더 인상 깊었어요.”
여회현은 자신이 태어난 해에 개봉한 영화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런 그가 연기자로서 롤 모델로 삼는 이는 바로 이병헌이라고.
“이병헌 선배님의 눈빛은 배우로서 가장 큰 무기인 것 같아요. <달콤한 인생> <악마를 보았다>는 물론이고, 저는 <광해>에서 선배님이 보여준 카리스마 있는 역할과 개구쟁이 같은 역할을 넘나드는 눈빛이 정말 좋았어요. 배우로서 대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눈빛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촬영 전날 다음 작품을 위한 미팅이 있었다는 그에게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이냐고 물었다.
“아직은 계속 미팅 중이고 정해진 건 없어요. 그런데 무게 있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몸 쓰는 걸 좋아해 액션에도 욕심이 나요. <아저씨>의 원빈 선배님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욕심은 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쉴 때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으니 여회현은 게임을 한다고 했다. ‘배틀 그라운드’,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 워치’ 등 요즘 인기 있는 온라인 게임을 늘어놓으며 게임을 할 때면 함께 사는 친누나가 한심하게 쳐다보기도 한다고 귀엽게 말했다. 그리고 가끔은 어릴 때부터 친한 동네 친구들과 만나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고 말하며, 잔머리가 좋아 요즘 유행하는 방 탈출 콘셉트의 예능에 출연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하는 여회현은 딱 요즘 아이다웠다. 놀 땐 놀고 욕심 부릴 때는 욕심도 부릴 줄 아는 그런 아이 말이다. 그러면서도 고민이 많은 편이라 쓸데없는 걱정을 비워내며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하는 여회현에게서 밝아 보이면서도 실은 각자의 깊은 고민을 품고 있는 요즘 젊은 청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